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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연비 좋은 차를 샀더니, 주유비가 더 나올까? - 식당의 ‘제본스의 역설’
  • 진익준 논설위원
  • 등록 2025-10-16 14:3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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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가게를 병들게 하는 세 가지 ‘효율의 함정’
  • 진짜 효율화는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 당신은 ‘절약가’입니까, ‘사업가’입니까?

[글로벌 외식정보=진익준 논설위원]



1. ‘효율화’라는 달콤한 유혹


사장님들의 장부를 들여다볼 때마다 저는 하나의 거대한 싸움을 목격합니다. 천정부지로 솟는 인건비, 예측 불가능하게 요동치는 식자재비, 그리고 꿈쩍도 않는 임대료. 이 세 명의 거인과 매일같이 씨름하는 것이 바로 대한민국 외식업의 현주소일 겁니다. 그래서일까요? 요즘 사장님들 사이에서는 ‘운영 효율화’와 ‘비용 절감’이 마치 종교적 신념처럼 여겨집니다. 더 적은 인력으로, 더 저렴한 재료로, 더 빠른 시스템으로 기존의 매출을 유지하거나 조금이라도 더 남기는 것. 이것이 바로 ‘스마트한 경영’의 증표라고들 말합니다.


일리 있는 이야기입니다. 구멍가게도 아니고,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해서는 이 험난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겠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만약 사장님께서 큰맘 먹고 도입한 그 ‘스마트한 효율화’가, 그토록 줄이고 싶었던 비용을 오히려 늘리고, 심지어 가게의 근간을 흔드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오늘은 이 불편하고도 역설적인 진실, ‘제본스의 역설(Jevons Paradox)’이라는 렌즈를 통해 우리 식당의 효율화 신화를 한번 해부해 보려 합니다.



2. 석탄, 자동차, 그리고 우리 식당


이야기는 19세기 영국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경제학자 윌리엄 스탠리 제본스는 당대의 첨단 기술이었던 증기기관을 연구하다가 아주 기이한 현상을 발견합니다. 기술 발전으로 석탄 1톤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당연히 나라 전체의 석탄 소비량이 줄어들 것이라 모두가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석탄 소비량은 오히려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답은 간단했습니다. 석탄의 ‘사용 단가’가 저렴해지자, 이전에는 엄두도 못 내던 공장과 기차, 선박들이 너도나도 증기기관을 도입했고, 기존의 공장들은 기계를 더 오래, 더 많이 돌렸기 때문입니다. 효율성이 높아지자 오히려 총소비량이 늘어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본스의 역설’입니다. 현대적으로 비유해 볼까요? 큰맘 먹고 연비 좋은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샀습니다. 1리터로 20km를 가니 기름값 걱정이 줄었습니다. 그러자 어떻게 됩니까? 예전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했을 가까운 거리도 차를 몰고 나가고, 주말이면 더 멀리 교외로 드라이브를 떠납니다. 결국 한 달 주유비를 정산해 보니, 기름 많이 먹던 예전 차를 몰 때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많이 나오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집니다. 효율성이 심리적 장벽을 낮춰, 소비 행동 자체를 바꿔버린 것이죠.


자, 이 역설이 과연 석탄과 자동차에만 국한된 이야기일까요? 천만에요. 지금 이 순간, 우리 식당 안에서 이 제본스의 역설은 아주 교묘하고 치명적인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3. 우리 가게를 병들게 하는 세 가지 ‘효율의 함정’


사장님들이 ‘비용 절감’이라는 선한 의도로 도입한 조치들이 어떻게 우리 가게의 발목을 잡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키오스크’가 불러온 객단가의 비극입니다.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홀 인력을 줄이기 위해 키오스크를 도입하는 것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습니다. 인건비 절감이라는 확실한 ‘효율’이 눈앞에 보입니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숙련된 홀 직원은 단순히 주문만 받는 기계가 아닙니다. 그들은 손님의 표정을 읽고, “오늘은 이 메뉴가 좋은데, 사이드로 감자튀김도 곁들이시면 궁합이 환상입니다”라며 자연스럽게 추가 주문을 유도하는 ‘세일즈맨’입니다.


하지만 키오스크는 어떻습니까? 대부분의 손님은 복잡한 추가 주문 버튼을 누르기보다, 가장 익숙하고 저렴한 단품 메뉴를 누르고 서둘러 결제를 마칩니다. 키오스크의 차가운 화면 앞에서 추가 메뉴를 탐색할 여유를 갖는 손님은 많지 않습니다. 결국 인건비는 아꼈을지 몰라도, 테이블당 매출, 즉 ‘객단가’는 조용히 하락하기 시작합니다. 절감된 인건비보다 하락한 객단가로 인한 매출 감소가 더 크다면, 이것은 과연 성공적인 효율화일까요? 맥도날드 같은 글로벌 대기업들이 키오스크 화면에 그토록 화려한 추가 메뉴와 세트 업그레이드 버튼을 배치하는 것은, 이 역설을 피하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입니다.


둘째, ‘저렴한 식자재’의 배신입니다.


원가율 관리는 식당 경영의 기본입니다. 특히 요즘처럼 물가가 뛸 때는 100원이라도 저렴한 식자재를 찾으려는 노력이 당연합니다. 피자 가게 사장님이 기존보다 10% 저렴한 치즈를 찾았다고 가정해 봅시다. 당장 장부에는 이익이 늘어난 것처럼 보일 겁니다. 하지만 이 작은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채는 것은 우리 가게의 ‘진짜 주인’인 단골손님들입니다. “어, 예전엔 치즈가 더 고소하고 잘 늘어났는데….” 이 미묘한 차이가 재방문 의사를 꺾습니다.


결국 단골의 발길이 뜸해지자, 사장님은 떠나간 손님을 되찾기 위해 배달 앱 할인 쿠폰을 남발하고, SNS에 더 많은 광고비를 씁니다. 치즈에서 아낀 몇 푼의 돈이, 몇 배나 더 큰 마케팅 비용과 브랜드 가치 하락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것입니다. 미국의 프리미엄 버거 시장을 연 파이브 가이즈(Five Guys) 가 “우리 주방엔 냉동고가 없다”는 원칙을 고수하며 매일 신선한 감자와 패티를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은 식자재 비용은 단순한 ‘지출’이 아니라, 마케팅 비용을 줄여주는 가장 확실한 ‘투자’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셋째, ‘주방 자동화’의 명암입니다.


최근에는 육수를 자동으로 끓여주거나, 튀김을 알아서 건져주는 최첨단 주방 자동화 기기들도 많이 나왔습니다. 주방 인력의 의존도를 낮추고, 일정한 맛을 유지해 주니 이보다 더 좋은 효율화는 없어 보입니다. 일본의 유명 라멘 체인 이치란(一蘭) 은 독자적인 조리 시스템으로 장인 없이도 일정한 맛을 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이 역시 함정이 있습니다. 특정 메뉴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자동화는 메뉴의 유연성을 떨어뜨립니다. 계절에 맞는 새로운 메뉴를 시도하거나, 고객의 피드백을 반영해 레시피를 미세하게 조정하는 ‘손맛’의 영역이 사라집니다. 또한, 수천만 원짜리 기계의 본전을 뽑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장님은 자신도 모르게 그 기계로 만든 특정 메뉴만 할인 판매하는 행사를 반복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이는 다른 메뉴와의 판매 균형을 무너뜨리고, 가게의 전체적인 수익 구조를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기술은 훌륭한 ‘도구’가 되어야지, 가게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4. 진짜 효율화는 ‘가치’를 높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효율화를 포기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어리석은 효율화’에서 ‘현명한 효율화’로 관점을 전환해야 합니다. 진짜 효율화의 목표는 단순히 비용의 숫자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느끼는 ‘가치’와 사장님의 ‘순이익’을 동시에 높이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를 위한 몇 가지 제언을 드립니다. 키오스크를 도입했다면, 절약된 인력을 홀에서 내보낼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손님들에게 더 세심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음식에 대해 더 친절히 설명하는 ‘환대 전문가’로 재교육시키십시오. 기술이 인간의 시간을 벌어주면, 인간은 그 시간에 ‘인간적인 가치’를 더해야 합니다.

식자재 원가를 낮추고 싶다면, 단순히 싼 재료를 찾을 것이 아니라, 대량 구매를 통한 단가 협상, 제철 식재료 활용을 통한 메뉴 개편,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재고 관리 시스템 도입 등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방법을 먼저 고민해야 합니다.



5. 당신은 ‘절약가’입니까, ‘사업가’입니까?


이제 글을 맺겠습니다. 제본스의 역설은 우리에게 아주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그저 돈을 아끼는 ‘절약가’입니까, 아니면 돈을 벌기 위해 현명하게 투자하는 ‘사업가’입니까?


어리석은 효율화는 눈앞의 비용 숫자에만 집착하다가, 가게의 가장 중요한 자산인 고객의 만족과 신뢰를 잃게 만듭니다. 반면, 현명한 효율화는 절약된 자원을 고객 가치를 높이는 곳에 재투자하여 더 큰 이익의 선순환을 만들어냅니다.


부디 사장님의 장부에서 몇몇 비용 숫자를 줄이는 데 성공했다고 안심하지 마십시오. 그로 인해 당신의 가게가 고객의 마음속에서 차지하던 더 큰 가치를 잃고 있지는 않은지, 연비 좋은 차를 믿고 불필요한 질주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성찰하시길 바랍니다. 진정한 사업가의 계산기는 단순히 빼기만 하는 기계가 아니라, 더 큰 것을 얻기 위해 현명하게 더하고 곱하는 전략가여야 합니다.



늘 깨어 있는 당신을 뜨겁게 응원합니다 ~

인포마이너: ikjunj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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