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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설계하는 레스토랑: 고객의 뇌를 사로잡는 ‘몰입의 기술’
  • 진익준 논설위원
  • 등록 2025-10-11 10:07:08
  • 수정 2025-10-11 10: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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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외식정보=진익준 논설위원]



시간을 설계하는 레스토랑: 고객의 뇌를 사로잡는 ‘몰입의 기술’


여러분은 혹시 누군가와 즐겁게 식사하다가 “어머,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하고 놀란 경험이 있으신가요?
반대로, 어색하고 지루한 식사 자리에서 1분이 1시간처럼 느껴졌던 기억은요?
우리는 모두 시간의 상대성을 일상 속에서 체험하며 살아갑니다.

물리학자들은 ‘시간은 환상’이라고 말하지만, 우리에게 시간은 분명 실재하는 경험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바로 이 ‘경험’이라는 지점에서 우리는 아주 흥미로운 질문에 도달하게 됩니다.
만약 이 시간의 흐름을 레스토랑이라는 공간 안에서 의도적으로 설계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뇌가 인식하는 시간, 그리고 ‘잘 설계된 경험’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우리의 뇌는 심박수나 감정 상태, 그리고 처리해야 할 정보의 양에 따라 시간을 ‘늘였다 줄였다’ 합니다.
몰입하거나 즐거운 일을 할 때 시간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도 그 때문이죠.


이 사실은 레스토랑 경영자에게 아주 중요한 힌트를 던집니다.
고객이 지불하는 돈이 단지 음식값만이 아니라면, 우리가 팔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이 바로 ‘잘 설계된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레스토랑은 단순히 음식을 파는 곳을 넘어, 고객의 시간을 훔치는 ‘몰입형 경험의 무대’가 되어야 합니다.
성공적인 레스토랑 경영자는 셰프이자 연출가이며, 고객의 뇌를 속이는 유쾌한 시간 마술사입니다.



현실을 지우는 완벽한 무대: 하이퍼 이머시브 다이닝


이 시간 마술이 극단으로 가면 어떤 모습일까요?
스페인 이비자의 ‘서블리모션(Sublimotion)’이 그 정점에 있습니다.
1인당 식사 비용이 수백만 원에 달하지만, 그곳은 식당이라기보다 거대한 미디어아트 공연장에 가깝습니다.


테이블과 벽면 전체가 스크린으로 둘러싸여 있고, 고객은 VR 기기를 착용합니다.
음식이 나올 때마다 공간은 바닷속, 우주, 혹은 미래 도시로 변신합니다.
온도와 향기, 조명까지 감각 전부가 통제됩니다.
이곳에서는 시계를 볼 이유도, 스마트폰을 꺼낼 틈도 없습니다.
현실이 삭제되고, 오직 눈앞의 환상만이 존재합니다.
시간이 사라지는 경험, 그것을 돈으로 사는 것이죠.


조금 더 현실적인 예로 ‘르 쁘띠 셰프(Le Petit Chef)’가 있습니다.
테이블 위에 3D 프로젝션으로 작은 요리사가 나타나 접시 위에서 요리를 하는 스토리를 보여줍니다.
지루한 ‘기다림’이 가장 기대되는 ‘공연’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아이들은 넋을 잃고, 어른들은 동심으로 돌아갑니다.
‘시간의 재해석’을 통해 기다림조차 즐거운 콘텐츠로 만든 셈입니다.


또 다른 사례, 몰디브의 ‘이타 언더씨 레스토랑(Ithaa Undersea Restaurant)’.
수심 5미터 아래에서 식사를 하는 그곳은, 마치 해양 다큐멘터리 속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을 줍니다.
이곳의 고객에게 중요한 건 ‘몇 시에 먹었는가’가 아닙니다.
“바닷속에서 식사했다”는 시간을 초월한 사건만이 남습니다.



우리 곁의 시간 마술사들: 국내의 몰입형 공간 전략


“그건 기술과 돈이 많아야 가능한 이야기잖아요?”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시간 마술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 ‘컨셉의 힘’과 ‘디테일의 일관성’에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흥미로운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상하이의 공연형 레스토랑 ‘테이스트 오브 차이나(Taste of China)’는 빛과 영상으로 중국의 자연과 문화를 표현합니다.


식사는 하나의 공연이 됩니다.

서울에서도 이미 비슷한 감각의 공간들이 많습니다.
익선동의 복고풍 한식주점, 성수동의 낡은 공장을 개조한 감성 카페.
그 안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일상을 잊습니다.


인테리어, 소품, 음악, 메뉴판의 서체까지 모든 것이 한 방향을 향할 때, 고객의 뇌는 현실을 ‘잠시 끈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가장 정교한 시간 설계는 하이엔드 다이닝의 ‘오마카세’나 ‘셰프스 테이블’에서 드러납니다.
셰프의 손끝에서 완성되는 한 접시의 서사를 고객은 숨죽이며 지켜봅니다.
요리 과정이 곧 공연이고, 고객은 관객이자 참여자입니다.
2~3시간의 식사는 완벽한 기승전결을 가진 한 편의 드라마가 됩니다.



당신의 레스토랑을 위한 ‘시간 설계’의 기술

이제 질문을 바꿔볼까요.
당신의 레스토랑은 고객의 시간을 어떻게 흘러가게 만들고 있습니까?


• 스토리의 완결성
당신의 레스토랑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나요?
‘할머니의 손맛’이라면 공간은 따뜻해야 하고, 식기는 투박해야 하며, 잔잔한 옛 노래가 어울립니다.
모든 요소가 하나의 이야기로 정렬될 때, 고객은 문을 여는 순간 ‘다른 시공간’으로 들어섭니다.


• 감각의 일관성
후각은 기억을 자극하는 가장 강력한 열쇠입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마늘과 올리브 오일 향 대신 소독약 냄새가 난다면, 몰입은 깨집니다.
음악, 조명, 질감, 심지어 직원의 언어까지 모두 ‘하나의 감정선’으로 통일되어야 합니다.


• 방해 요소의 제거
불친절한 서비스, 삐걱거리는 의자, 난해한 메뉴판.
이 모든 건 고객을 ‘현실로 끌어내는 잡음’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의 디테일까지 완벽하게 다듬어야 합니다.


마무리: 시간을 훔치는 공간


현대인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돈이 아니라 시간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시간’을 특별한 경험과 맞바꾸려 합니다.
이제 레스토랑의 경쟁 상대는 옆집 식당이 아니라, 고객의 시간을 빼앗는 넷플릭스와 콘서트일지도 모릅니다.


음식으로 고객의 배를 채우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이제는 공간과 경험으로 고객의 시간을 채우는 시대입니다.
고객이 당신의 레스토랑에서 보낸 1시간을 10분처럼 느끼게 만들 수 있다면,
그들은 다시 그 마법 같은 시간을 경험하기 위해 돌아올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오늘날 가장 세련된 레스토랑 경영의 기술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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