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
깊은 한숨이 텅 빈 가게 안을 무겁게 채웠다. 오늘따라 소독약 냄새가 유난히 코를 찔렀다.
내 이름은 강민준. 대한민국에서 가장 흔한 자영업이라는 치킨집, 피자집 다 마다하고 나만의 요리를 하겠다며 작은 파스타 가게 ‘민스키친’을 차린, 이제는 ‘망하기 직전’인 사장이다.
‘대체 뭐가 문제지?’
내 파스타는 정말 맛있었다. 미슐랭 셰프 밑에서 일했던 자부심이 있었다. 레시피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손님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맛은 있는데, 뭔가 좀 심심하네.”
“음… 그냥 파스타 맛.”
결국 가게는 파리만 날렸고, 다음 주 월세 마감일까지 해결하지 못하면 이곳을 떠나야 했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삐링-!
‘…뭐지?’
눈앞에 홀로그램처럼 반투명한 시스템창이 나타났다. 무슨 몰래카메라인가?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사라지지 않았다.

[당신은 ‘기억 설계자(Memory Architect)’ 시스템의 자격을 획득했습니다.]
[잠재된 능력에 눈을 뜨시겠습니까? (Y/N)]
황당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허공에 ‘Y’를 눌렀다.
그러자 가게의 모든 것이 수치화되어 보이기 시작했다.
[민스키친 (현재 상태)]
종합 체험 점수: 18 / 100
시각 만족도: 21 / 100 (평가: 형광등 아래의 차가운 분위기. 매력 없음.)
청각 만족도: 15 / 100 (평가: 의미 없는 최신가요 메들리. 소음에 가까움.)
후각 만족도: 12 / 100 (평가: 음식 냄새를 이기는 소독약과 하수구 냄새.)
촉각 만족도: 25 / 100 (평가: 얇고 힘없는 냅킨, 가벼운 식기.)
미각 만족도: 88 / 100 (평가: 맛은 훌륭하지만, 다른 감각이 경험을 방해함.)
“뭐, 뭐야 이게….”
미각 점수만 비정상적으로 높고, 나머지는 처참했다. 특히 후각은 거의 재앙 수준이었다.
그때, 가게 문이 덜컥 열리며 한 명의 손님이 들어왔다. 비싼 정장을 차려입은, 한눈에 봐도 까다로워 보이는 중년 남성이었다. 어쩌면… 마지막 손님일지도 모른다.
그 순간, 시스템창이 다시 번쩍였다.
[돌발 퀘스트 발생!]
[목표: ‘마지막 손님’의 종합 체험 점수를 70점 이상으로 끌어올려라!]
[성공 보상: 스킬 ‘시그니처 향기’ 잠금 해제]
[실패 패널티: 시스템 영구 삭제]
이건 기회다. 마지막 기회!
나는 미친 듯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손님이 메뉴를 고르는 사이 주방으로 달려가 오븐에 마늘빵 몇 조각을 넣었다. 레시피에도 없는 즉흥적인 행동이었다.

[‘갓 구운 마늘빵 향기’가 ‘소독약 냄새’를 덮기 시작합니다.]
[후각 만족도가 +20 상승합니다! (12→32)]
‘됐어!’
다음은 소리다. 시끄러운 최신가요를 끄고, 내 스마트폰에 있던 재즈 연주곡 플레이리스트를 가게 스피커에 연결했다. 은은하고 감미로운 선율이 가게를 채웠다.
[‘무성의한 소음’이 ‘분위기 있는 연주’로 변경됩니다.]
[청각 만족도가 +30 상승합니다! (15→45)]
손님의 미간이 살짝 펴지는 것이 보였다.
음식을 내어갈 때, 나는 평소 쓰던 얇은 휴지 냅킨 대신 개업식 날 선물 받고 아껴두었던 고급 린넨 냅킨과 묵직한 커트러리를 함께 세팅했다.
[고객의 손끝에 닿는 감촉이 개선됩니다.]
[촉각 만족도가 +15 상승합니다! (25→40)]
마지막으로, 조명. 너무 밝아 창백해 보이던 메인 형광등을 끄고, 테이블마다 놓여있던 작은 무드등을 켰다. 가게 안이 순식간에 따뜻하고 아늑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차가운 백색광이 따뜻한 감성 조명으로 변경됩니다.]
[시각 만족도가 +25 상승합니다! (21→46)]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그리고 마침내, 내 필살기인 ‘알리오 올리오’가 손님 앞에 놓였다.
손님이 파스타를 입에 넣는 순간, 나는 그의 머리 위에 떠오른 시스템창을 볼 수 있었다.
[손님의 ‘종합 체험 점수’가 실시간으로 갱신됩니다!]
[현재 점수: 72 / 100]
“……!”
[미각(88)이 다른 감각(평균 41)의 강력한 시너지를 받아, 잠재된 맛을 120% 발휘합니다!]
[종합 체험 점수가 폭발적으로 상승합니다!]
[현재 점수: 85 / 100]
남자는 조용히 파스타 한 접시를 모두 비웠다. 그리고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대로 걸어왔다.
“얼마죠?”
“만 이천 원입니다.”
그는 지갑에서 만 원짜리 두 장을 꺼내 내밀었다.
“거스름돈은 됐습니다. 음식이 아니라… 아주 좋은 ‘시간’을 대접받은 기분이군요.”
그 말을 남기고 그는 유유히 가게를 나갔다.
[돌발 퀘스트 성공!]
[보상: 스킬 ‘시그니처 향기’가 잠금 해제되었습니다!]
[‘시그니처 향기’: 당신의 가게를 대표하는 특별한 향기를 만들어 손님의 뇌리에 각인시킬 수 있습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남자가 줬던 2만 원을 바라봤다. 단순한 팁이 아니었다. 이것은 ‘기억’의 가치였다.
나는 텅 빈 가게를 둘러봤다. 이제 이곳은 더 이상 망해가는 파스타 가게가 아니다.
사람들의 뇌리에 ‘행복’을 새기는 나의 첫 번째 무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