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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3평, 나의 지옥이자 천국 (프롤로그)
  • 진익준 작가
  • 등록 2025-11-05 21:34:10
  • 수정 2025-11-05 22:3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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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금 1억, 신용대출 5천. 34살 김철수의 영혼까지 끌어모은 '달빛한잔'이 마침내 문을 열었다.



그의 모든 자부심은 '홀(Hall)'에 응축되어 있었다.


인스타그램에서 가장 '핫'한 디자이너를 수소문해 그렸다 지우기를 반복한 짙푸른 페인트 벽. 30년 된 여관을 뜯어낼 때 구했다는, 세월의 결이 만져지는 고목(古木) 바 테이블. 에디슨 전구의 필라멘트가 아련하게 빛나는 빈티지 조명. 김철수는 이 12평 남짓한 공간이 손님들의 '감성'을 완벽하게 저격하리라 확신했다.


"사장님, 감성 미쳤네요."


"여기서 찍으면 무조건 인생샷."


오픈 전, 지인들의 찬사는 그의 확신을 신앙으로 만들었다. 이 12평의 홀은 그의 꿈이자, 그의 성공 그 자체였다.


그 완벽한 무대 뒤편, 홀 면적의 3분의 1도 되지 않는 작은 공간이 있었다.


4.43평.


법정 최소 면적을 겨우 넘긴, 그의 주방이었다.


"사장님, 주방은... 솔직히 기계만 다 들어가면 됩니다. 요즘은 저기 45박스 냉동고랑 튀김기, 간택기(가스렌지)만 있으면 다 되죠."


인테리어 실장은 홀에 쓸 예산을 100만 원이라도 더 아끼려는 듯, 주방 도면을 쓱쓱 그려냈다. 빈틈에 냉동고를 욱여넣고, 남는 자리에 튀김기를 밀어 넣었다. 김철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보이지도 않을 공간, 작동만 잘 되면 그만이었다.



그것이 이 모든 비극의 씨앗이 될 줄은, 그는 꿈에도 알지 못했다.


가장 화려하게 빛나는 무대는, 보이지 않는 엔진의 힘으로 돌아가는 법이다. 그리고 그의 엔진은, 첫 시동이 걸리기도 전에 이미 결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1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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