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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감성 포차, 7시의 지옥도
  • 진익준 작가
  • 등록 2025-11-05 22:36:43
  • 수정 2025-11-05 22:3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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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랑-"



오픈 첫 주 토요일, 저녁 6시 30분. 마지막 남은 바 테이블까지 손님으로 찼다.


12평의 홀은 사람들의 기분 좋은 소음과 '달빛한잔'의 시그니처 음악, 그리고 김철수의 자부심으로 가득 찼다. 인스타그램에 올린 '오픈 이벤트' 사진이 제대로 '터진' 것이다.



"사장님! 대박!"



홀을 맡은 스무 살 알바생, 민수가 흥분된 목소리로 주방에 외쳤다. 김철수는 묵묵히 웃으며 화구 앞에서의 첫 '작품'을 준비했다. "그래, 성공이다. 이 감성이 먹힌 거야."


POS기에서 '칙-' 하고 첫 주문서가 출력되었다.


[3번 테이블: 닭볶음탕 1, 새로 소주 1]



"좋았어!"



김철수는 연습한 대로 냉장고에서 미리 소분해둔 닭과 야채를 꺼내 웍에 담았다. '지글지글' 소리가 경쾌하게 주방을 채웠다. 첫 요리는 완벽했다.


저녁 7시. 재앙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마치 닫혀 있던 댐의 수문이 열린 듯, POS기 주문서가 미친 듯이 출력되기 시작했다.



"칙- 칙- 칙-"

[1번 테이블: 닭볶음탕 1, 파전 1]

[5번 테이블: 오뎅탕 1, 감자튀김 1]

[3번 테이블: 소주 1 추가, 계란말이 1]

[바 테이블: 떡볶이 1]



"사장님! 주문 밀려요!" 민수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알아! 하고 있어!"



김철수의 동선이 처음으로 꼬이기 시작했다.


닭볶음탕(1번)을 화구에 올린 채, 파전(1번) 반죽을 꺼내야 했다. 파전 반죽은 하필이면 주방 가장 구석, 45박스 냉동고 옆 작은 선반 냉장고에 있었다.



"민수야, 잠깐!"


"네?"


"비켜봐!"



파전 반죽을 꺼내러 가는 김철수의 몸이, 5번 테이블의 오뎅탕을 준비하려던 민수의 동선과 완벽하게 겹쳤다. 4.43평의 주방에서 유일하게 '통로'라 불리던 70cm의 공간. 그곳이 김철수의 몸으로 완전히 막혀버렸다.



"사장님, 저 오뎅...!"


"알아! 잠깐만!"



김철수가 반죽을 꺼내 다시 화구 앞으로 돌아오는 데 걸린 시간, 고작 10초. 하지만 그 10초 동안 민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멈춰 서 있어야 했다. 그 사이 1번 화구의 닭볶음탕 국물이 살짝 끓어 넘쳤다.



"아, 씨..."



김철수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사장님, 감자튀김은요?"


"튀김기! 네가 해!"


"네? 저... 저 튀김기 한 번도..."


"그냥 넣고 버튼 눌러!"



다시 주문서가 출력됐다. '칙- 칙-' 소리가 이제는 공포 영화의 효과음처럼 들렸다.



"사장님! 1번 테이블 닭볶음탕 왜 안 나와요!"


"파전은요!"



김철수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닭볶음탕... 파전... 오뎅탕... 튀김... 계란말이...'

오뎅탕을 올리려면 닭볶음탕 웍을 내려야 하는데, 내려놓을 공간이 없었다. 파전을 부치려면 반죽을 그릇에 담아야 하는데, 그릇이 설거지통에 쌓여 있었다.



"민수야, 그릇!"


"사장님, 저 튀김...!"



바로 그때였다.


계란말이를 만들기 위해 달걀을 깨던 김철수와, 감자튀김 바스켓을 들고 겁먹은 채 뒤로 돌아서던 민수가 좁은 통로에서 정면으로 부딪혔다.



"아악!"



민수의 손에 들려 있던, 펄펄 끓는 기름을 머금은 바스켓이 공중에서 뒤집혔다.


'촤아아악-'


뜨거운 기름 몇 방울이 민수의 팔뚝에 튀었다.



"괜찮아? 민수야!"


"흐윽... 사장님... 저...!"



민수의 얼굴이 눈물과 땀, 공포로 일그러졌다.


그 순간, 4.43평의 주방은 모든 소리가 멈춘 듯 고요해졌다. '지글'거리던 닭볶음탕은 새까맣게 타는 냄새를 풍기고 있었고, POS기 주문서는 1미터가 넘게 바닥까지 늘어져 있었다. 홀의 소음은 여전히 시끄러웠지만, 이제 그 소리는 '즐거움'이 아니라 '짜증'으로 변해 있었다.


그날 밤.


모든 손님이 떠나고(정확히는, 음식을 받지 못하고 화를 내며 나가고), 민수는 응급실로 떠났다.



"사장님... 저... 내일부터 못 나오겠어요. 죄송해요. 여긴... 여긴 사람이 일할 데가 못 돼요."



텅 빈 홀, 여전히 아름다운 조명 아래. 김철수는 폐허가 된 4.43평 주방 바닥에 주저앉았다.


바닥은 쏟아진 닭고기 육수와 기름, 깨진 달걀 범벅이 되어 질척거렸다. 감성으로 가득 찼던 그의 가게는, 오픈 일주일 만에 지옥의 폐허가 되어 있었다.




[경영 인사이트 1] 사업의 성패는 '최악의 순간'에 결정된다. 외식업에서 그 순간은 '피크 타임(Peak Time)'이다. 평온할 땐 보이지 않던 시스템의 결함은, 가장 바쁜 순간 '병목 현상(Bottleneck)'이라는 이름으로 폭발한다. 당신의 주방 동선이 단 한 사람의 움직임으로 '올 스톱'된다면, 그것은 시스템이 아니라 시한폭탄을 운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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