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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기술을 이기는 레스토랑의 비밀
  • 진익준 논설위원
  • 등록 2025-09-12 08:5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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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원을 ‘경험 큐레이터’로 만드는 기술 활용법

[글로벌 외식정보=진익준 논설위워 ]



15세기 구텐베르크가 금속 활자를 발명했을 때, 평생 손으로 성경을 필사해 온 수도사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아마도 ‘이제 우리의 역할은 끝났다’며 절망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역사는 다르게 흘러갔죠. 인쇄술은 필경사의 일자리를 빼앗았지만, 그 대신 작가, 편집자, 출판인이라는 새로운 전문가들을 탄생시켰고 인류의 지성을 폭발적으로 성장시켰습니다.


2025년 오늘, 대한민국 외식업계의 풍경이 꼭 그와 같습니다. 서빙 로봇과 키오스크가 ‘스마트폰’처럼 당연해진 시대, 많은 사장님들이 기술 도입 자체를 경쟁력이라 믿고 있습니다. 글쎄요, 저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모두가 같은 기술을 쓰는 시대에, 기술은 더 이상 경쟁력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이제 막 보급된 ‘인쇄기’와 같을 뿐입니다. 진짜 질문은 이것입니다. “사장님은 그 새로운 인쇄기로 무엇을 찍어내실 겁니까? 남들과 똑같은 전단지를 대량 생산할 것입니까, 아니면 세상에 없던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실 겁니까?”


AI 시대, 기술을 이기는 레스토랑의 비밀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기술을 활용해 ‘사람’의 가치를 극대화하고, 우리 직원들을 대체 불가능한 ‘경험 큐레이터(Experience Curator)’로 만드는 데 있습니다.



손님은 더 이상 ‘음식’만 사지 않는다


시대가 변하면 고객이 돈을 지불하는 가치도 변합니다. 과거에 우리는 그저 배를 채우기 위해 식당에 갔습니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단순히 ‘음식’이라는 제품을 넘어, 그 음식을 즐기는 전 과정, 즉 ‘식사 경험’이라는 서비스를 구매합니다.


이는 마치 스페셜티 커피의 세계와 같습니다. 우리는 집에서 원두를 갈아 커피를 마실 수도 있지만, 기꺼이 더 비싼 돈을 내고 바리스타가 있는 카페에 갑니다. 왜일까요? 그곳에는 원두의 산지와 특징을 설명해주고, 나의 취향에 맞는 추출 방식을 추천하며, 커피 한 잔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는 ‘전문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리스타는 커피를 내리는 기술자를 넘어, 우리의 커피 경험 전체를 풍성하게 만드는 큐레이터의 역할을 합니다.


이제 레스토랑의 직원도 마찬가지가 되어야 합니다.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나르는 ‘서버(Server)’의 시대는 저물고 있습니다. 그 역할은 머지않아 기술이 더 잘 해낼 것입니다. 미래의 고객이 기꺼이 지갑을 열게 할 대상은, 우리 가게의 철학과 메뉴의 스토리를 꿰뚫고, 고객의 미묘한 취향과 그날의 분위기까지 읽어내어 최고의 미식 경험을 설계하고 안내하는 전문가, 바로 ‘경험 큐레이터’입니다.



진정한 기술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람을 돕는다


그렇다면 이 유능한 ‘경험 큐레이터’는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역설적이게도, 그 해답은 다시 ‘기술’에 있습니다. 단, 지금까지 우리가 주목했던 로봇이나 키오스크 같은 ‘손님 눈에 보이는 기술’이 아닙니다. 직원들의 역량을 극대화하기 위해 무대 뒤에서 묵묵히 작동하는 ‘보이지 않는 기술’입니다.


가령, AI 기반의 고객 관리 시스템(CRM)을 상상해 보십시오. 단골손님 김 부장님이 네 번째 방문을 했을 때, 경험 큐레이터의 태블릿에 조용히 알림이 뜹니다.


[김영수 고객님(4회차 방문). 지난번 립아이 스테이크와 멜롯 와인에 만족. 동석자는 해산물 알레르기 가능성 있음.]


큐레이터는 이 정보를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다가갑니다. “김 부장님, 다시 찾아주셔서 정말 기쁩니다. 지난번처럼 멜롯 와인 먼저 준비해 드릴까요? 오늘 페어링하기 좋은 새로운 메뉴가 있는데, 소개해 드려도 괜찮을까요?”


이것이 바로 기술이 만들어내는 ‘인간적인 서비스’의 극치입니다. 기술은 직원이 기억력의 한계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고객과의 교감과 창의적인 제안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최고의 조수가 됩니다. AI는 재고 관리, 수요 예측, 주방 동선 최적화 같은 복잡한 ‘과학’의 영역을 처리하고, 사람은 그 위에서 ‘예술’의 경지를 펼치는 것이죠.



‘경험 큐레이터’는 어떻게 육성되는가?


물론 이런 시스템을 갖춘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모든 직원이 큐레이터가 되지는 않습니다. 이는 경영 철학의 전면적인 전환을 요구합니다.


첫째, ‘채용’의 기준이 바뀝니다. 우리는 더 이상 손 빠른 직원이 아니라, 공감 능력이 뛰어나고, 스토리를 즐기며,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둘째, ‘교육’의 내용이 달라집니다. POS기 사용법 대신 우리 가게 와인 리스트의 역사를 가르치고, 정해진 응대 매뉴얼을 암기시키는 대신 고객의 숨은 니즈를 파악하는 롤플레잉을 해야 합니다.


셋째, ‘권한과 보상’이 뒤따라야 합니다. 큐레이터는 현장에서 자신의 판단으로 고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 합니다. 사소한 문제 해결을 위해 일일이 매니저의 허락을 구해야 한다면 진정한 전문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전문성과 기여도에 걸맞은 합당한 보상 체계는 당연한 전제입니다.



미래의 맛집은 ‘레시피’가 아닌 ‘사람’으로 결정된다


다시 구텐베르크의 인쇄기 이야기로 돌아가 봅시다. 인쇄술의 등장은 단순히 책을 빨리 만드는 기술 혁신을 넘어, 지식과 사상을 독점하던 소수 성직자의 시대를 끝내고, 보통 사람들에게 생각의 자유를 안겨준 거대한 문명의 전환이었습니다.


AI와 로봇 기술이 외식업에 가져올 변화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겁니다. 기술은 우리를 단순 반복적인 노동에서 해방시켜, 인간 고유의 영역인 ‘창의성’과 ‘공감 능력’에 더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고 있습니다. 이 기회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기술로 사람을 대체하며 원가 절감에만 매달릴 것인가, 아니면 기술을 발판 삼아 사람의 가치를 극대화하여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경험을 창조할 것인가.


미래의 맛집은 최고의 레시피가 아니라 최고의 ‘경험 큐레이터’를 보유한 곳이 될 것입니다. 지금, 사장님의 직원은 그저 음식을 나르고 있습니까, 아니면 고객의 잊지 못할 경험을 큐레이팅하고 있습니까? 그 질문에 대한 답에 당신 가게의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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