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외식정보=안형상 기자]

2025년 12월15일, 서울 양재동 aT센터 강당.
연말의 분주한 일정 속에서도 전국 각지에서 모인 200여 명의 청년 지도자들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이들 앞에 선 인물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홍문표 사장이었다. 이날 그의 특강은 단순한 농업 강연을 넘어, 기후위기 시대 대한민국이 선택해야 할 생존 전략을 집약한 국가 선언에 가까웠다.
홍 사장은 평소 “농업을 산업으로만 보면 나라가 흔들린다”고 말해온 인물이다. 국회의원 시절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강조해 온 그의 소신은 명확하다. 농업은 복지가 아니라 안보이며, 식량은 상품이 아니라 국가 무기라는 인식이다. 이날 강연 역시 그 철학의 연장선에 있었다.
식량을 잃는 순간, 국가는 협상력을 잃는다
홍 사장은 연설의 시작부터 단호했다.
“식량은 무기입니다. 국방과 농업만큼은 여야 정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는 식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가 고착화될수록 국가는 위기 상황에서 가장 먼저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기후위기, 전쟁, 국제 분쟁이 일상화된 시대에 식량 자급 능력은 곧 국가의 협상력이자 생존선이다. 그는 “돈만 있으면 식량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은 이미 무너졌다”고 강조하며, 농업을 국가 전략 산업으로 재정의해야 할 시점이 도래했음을 분명히 했다.
보조금 환상이 만든 실패의 악순환
홍 사장은 청년 귀농·귀촌 정책에 대해서도 냉정한 진단을 내렸다. 그는 평소 “농업을 쉽게 설명하는 정책이 가장 위험하다”고 말해왔다. 이날 역시 준비 없는 귀농이 개인의 삶뿐 아니라 국가 재정에도 부담이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도시 생활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한 선택, 보조금에 대한 막연한 기대 속 귀농은 대부분 지속되지 못한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농업은 낭만이 아니라 생존의 기술이며, 철저한 준비 없이는 버틸 수 없는 산업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그가 제시한 기준은 단순했다.
최소 1년 이상 버틸 수 있는 자금, 다품목 재배 기술, 그리고 기후·병해충·노동을 감내할 정신적 준비.
이 세 가지가 없다면 어떤 정책도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과는 북으로, 김은 사라지고, 배추값은 폭등한다
홍문표 사장은 기후위기를 더 이상 미래의 위험으로 보지 않았다. 이미 농업 현장은 변화의 한가운데 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사과 산지는 빠르게 북상하고, 해수 온도 상승으로 김 종자는 폐사하며, 고랭지 배추 생산 차질은 서민 물가를 직격하고 있다.
이 모든 현상은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된다.
식량은 시장 논리로만 해결할 수 없는 국가 문제라는 점이다.
그는 식량 자급률을 국가 전략 차원에서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 적응형 신품종 개발, 권역별 저온 저장 인프라 구축, 국가 주도의 통계 기반 농업 시스템은 그가 제시한 현실적 대안이다. 특히 생산의 일정 부분은 국가가 계획하고 보장하고, 나머지는 시장에 맡기는 구조를 통해 가격 폭등과 폭락을 동시에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동화가 아니라 ‘통제 가능한 농업’이 답이다
이날 강연에서는 스마트팜에 대한 현실적인 평가도 이어졌다. 홍 사장은 평소 “기술은 수단이지 해답이 아니다”라는 말을 자주 해왔다. 스마트팜 역시 만능 해법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전북 김제에서 토마토를 재배하는 하랑영농조합법인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스마트팜은 완전 자동화 농장이 아니라, 환경은 기술로 관리하되 재배와 수확은 여전히 사람의 경험과 판단에 의존한다.
그러나 동시에 기후위기 시대 스마트팜의 전략적 가치는 분명했다. 여름 고온을 극복하는 냉방 시스템, 겨울철 생산성을 높이는 보광 기술, 연중 안정 생산 구조는 대형 유통망 직납과 수출을 가능하게 한다. 여기에 브랜드 전략과 유통 계약이 결합되며 농업은 생산을 넘어 시장을 지배하는 산업으로 확장되고 있었다.

농민이 존중받지 못하는 나라는 지속될 수 없다
홍문표사장은 북유럽 사례를 언급하며 국가의 역할을 분명히 했다. 오랜 기간 농업에 종사한 농민에게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는 구조는 단순한 복지가 아니라 농촌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국가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그는 대기업 중심의 농업 확장을 경계하며, 고령 농민과 스마트농업이 공존하는 구조 없이는 농업의 지속 가능성도 없다고 강조했다. 농업은 효율 이전에 존중의 문제라는 그의 철학이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208개국으로 뻗은 식문화, 이제 전략이 필요하다
홍문표사장의 시선은 세계로 향했다. 이미 K-푸드는 전 세계 208개국에 진출해 있으며, 다음 50년 대한민국의 핵심 성장 동력이 될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태권도 네트워크를 활용한 K-푸드 확산, 재외공관의 역할 전환, 국가 정체성을 강화하는 전략까지 제시하며 식문화 외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책 대상이 아닌 정책 주체로
연설의 마지막은 청년 정책이었다. 홍 사장은 막대한 청년 예산이 여러 부처에 흩어져 비효율적으로 집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청년을 보호의 대상이 아닌 책임의 주체로 세워야 한다고 강조하며, 전담 기구 신설과 함께 예산권·정책 결정권을 실질적으로 청년에게 이양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특강은 농업 강연이 아니었다.
기후위기 시대 대한민국이 선택해야 할 생존 전략에 대한 선언문이었다.
농업을 살리는 일은 곧 식량을 지키는 일이며, 식량을 지키는 일은 대한민국을 지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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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형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