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맛은 30%다. 서비스가 20%다. 나머지 50%는 무엇일까? 바로 ‘중력’이다.
손님은 입으로 밥을 먹기 전에, 엉덩이로 그 공간의 무게를 먼저 느낀다.
이것을 모르는 사장님들은 오늘도 멀쩡한 가게를 우주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
"어서 오세... 요?"
점심시간 12시 10분. 소위 ‘피크 타임’이라 불리는 시간이었지만, 가게 안은 적막강산이었다. 주인 여자는 행주를 쥔 채 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마치 외계인이라도 본 듯한 눈빛. 그도 그럴 것이, 이 텅 빈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온 손님은 내가 처음이었으니까.
"영업합니까?"
"아, 네! 당연하죠. 편한 자리에 앉으세요."
편한 자리라.
나는 헛웃음을 삼키며 가게 내부를 훑어보았다.
'미치겠군. 여기도 무중력 상태야.'
내 눈에는 보였다. 4인용 원목 테이블들이 바닥에 붙어 있지 않고, 지면에서 5센티미터쯤 붕 떠서 덜덜 떨리고 있는 모습이. 의자들은 금방이라도 천장으로 솟구칠 듯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물론 실제 물리법칙이 깨진 건 아니다. 내 눈에만 보이는 환각, 아니 ‘공간의 심리적 중력’이다.
이 가게, <서울 국밥>은 최악이었다.
맛이 없어서가 아니다. 인테리어가 너무 '가볍기' 때문이었다.
바닥은 눈이 시릴 정도로 하얀 유광 폴리싱 타일. 천장에는 그림자 하나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촘촘히 박힌 형광등. 벽면은 온통 하얀색 페인트.
마치 수술실에 들어온 것 같았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이런 곳을 피한다. 발밑이 불안하고 머리 위가 무거우니까. 들어왔다가도 무의식적으로 불안감을 느껴 "다음에 올게요"라며 뒷걸음질 치는 것이다.
"저기... 손님? 주문하시겠어요?"
주인 여자가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나는 메뉴판을 보는 척하며 툭 던졌다.
"사장님, 이 가게 들어오면 손님들이 자꾸 나가지 않습니까? 아니면 밥만 마시듯 먹고 후다닥 도망가거나."
"네? 아... 어떻게 아셨어요?"
그녀의 눈이 동그라해졌다.
"음식 맛은 괜찮은데, 이상하게 단골이 안 생기죠? 저녁 장사는 더 안 될 거고."
"저기, 혹시... 무당이세요?"
무당이라니. 나는 픽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디자이너입니다. 죽어가는 가게 숨통 틔워주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장을 가리켰다.
"사장님, 저 형광등부터 끕시다."
"네? 어두우면 손님들이 싫어하지 않을까요? 위생적으로 보이려고 일부러 제일 밝은 거로 달았는데..."
"그게 문제예요. 너무 밝아서 손님들이 발가벗겨진 기분이 든다고요. 밥을 먹는 게 아니라 취조당하는 기분일 겁니다."
나는 대답도 듣지 않고 벽면의 스위치를 내렸다.
탁-
가게 전체를 짓누르던 하얀 빛이 사라지고, 창밖에서 들어오는 자연광과 주방 쪽의 간접 조명만 남았다. 순간, 공중에 붕 떠서 덜덜 떨리던 테이블들이 '쿵' 소리를 내며(물론 내 눈에만 들리는 소리다) 바닥으로 5센티쯤 내려앉았다.
"어...?"
사장님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어때요? 갑자기 가게가 좀 차분해진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러네요. 뭔가... 아늑해졌어요. 그냥 불만 껐는데..."
"아직 멀었습니다. 지금 이 공간은 무게 중심이 엉망이에요. 바닥은 너무 가볍고 천장은 무거워요. 전형적인 '톱 헤비(Top-Heavy)' 구조죠. 인간은 이런 곳에서 본능적으로 공포를 느낍니다. 지진 나기 직전의 건물 같거든요."
나는 구석에 처박혀 있던 짙은 고동색 앞치마 뭉치를 가져와 하얀 테이블 위에 툭 던져놓았다. 그리고 입구 쪽에 있던 커다란 화분을 테이블 옆으로 질질 끌고 왔다.
시선이 흩어지던 텅 빈 공간에 묵직한 '고정점(Anchor)'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그제야 비로소, 둥둥 떠다니던 의자들이 바닥에 완전히 착지했다. 가게 안에 감돌던 미묘한 웅웅거림이 멈추고, 편안한 정적이 흘렀다.
"이제야 밥 먹을 맛이 나겠네. 순대국밥 하나 주세요. 특으로."
나는 얌전해진 의자를 빼내어 앉았다.
엉덩이에 닿는 무게감이 묵직했다.
이제 이 가게에는 돈이 붙을 것이다. 내가 중력을 만들어냈으니까.
다음 화에서 계속......
Q. 왜 사장님의 가게는 손님이 빨리 나갈까?
많은 자영업자가 '회전율'을 높이겠다며 밝은 조명과 가벼운 의자를 선택합니다. 하지만 이는 패스트푸드점에나 어울리는 전략입니다. 객단가를 높이고, 저녁 장사(술 손님)까지 잡고 싶다면 정반대로 가야 합니다.
1. 조명 다이어트를 하라 (Lighting Weight)
대낮처럼 환한 형광등은 공간의 분위기를 평면적으로 만듭니다. 손님은 시각적 피로를 느껴 빨리 나가고 싶어집니다. 천장 조명은 끄거나 줄이고, 테이블 위로 떨어지는 '펜던트 조명'이나 벽면을 비추는 '간접 조명'을 사용하세요. 빛의 높이를 낮추면, 손님의 마음도 차분하게 가라앉습니다.
2. 시선의 닻을 내려라 (Anchoring)
가게 문을 열었을 때 시선이 꽂힐 곳이 없다면 손님은 불안해합니다. 입구 정면이나 매장 중앙에 묵직한 오브제(큰 화분, 그림, 장식장 등)를 배치하세요. 이것이 시각적 닻(Anchor)이 되어 손님의 심리적 동선을 잡아줍니다.
3. 무거운 색은 아래로 (Visual Gravity)
바닥이 천장보다 밝으면 인간은 본능적인 불안(Top-heavy effect)을 느낍니다. 바닥 공사를 다시 할 수 없다면, 짙은 색의 테이블 매트를 깔거나 의자 다리에 어두운 양말(?)이라도 신기세요. 시각적 무게 중심을 바닥으로 끌어내려야 손님의 엉덩이가 무거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