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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경영소설] 망한 가게에는 중력이 없다: 1화. 국밥은 죄가 없다
  • 진익준 작가
  • 등록 2025-12-22 12:4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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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로 배우는 식당경영 >


인간은 동굴에서 살던 시절의 본능을 기억한다.

등 뒤는 막혀 있어야 하고, 시야는 트여 있어야 한다.

이 단순한 ‘생존 본능’을 거스르는 순간, 당신의 가게는 손님들에게 ‘위험 지역’으로 분류된다.




"국밥 나왔습니다."


주인 여자가 뚝배기를 내려놓았다. 보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구수한 돼지 냄새가 훅 끼쳐왔다. 나는 숟가락을 들기 전, 습관적으로 뚝배기의 위치를 1센티미터 정도 오른쪽으로 옮겼다. 테이블 중앙이 아니라, 내 몸쪽으로 살짝 당겨진 위치.


이 사소한 행위조차 공간 심리학이다. 인간은 자신의 영역(Personal Space) 안에 중요한 물건을 두어야 안심한다.


국물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었다.


‘...!’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맛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맛있어.’


잡내가 하나도 없다. 국물은 진득하니 입술이 쩍 달라붙을 정도로 깊고, 고기는 혀로 눌러도 으스러질 만큼 부드럽다. 이건 그냥 국밥이 아니다. 돈 맛이다. 제대로만 팔면 건물을 올릴 수 있는 맛이다.


"저기... 입에 안 맞으세요?"


내 표정이 심각해 보였는지 사장님이 울상으로 물었다.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정색하며 말했다.


"사장님."


"네, 네?"


"국밥은 죄가 없습니다."


나는 천장을 가리켰다.


"죄가 있다면 저 형광등과, 이 눈 시린 하얀 타일 바닥에 있죠."


사장님, 그러니까 정서은 씨는 여전히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식당은 청결이 생명이잖아요. 백종원 선생님도 청소가 기본이라고 하셨고..."


"청결과 '결벽'은 다릅니다. 사장님, 손님들이 국밥 먹을 때 무슨 모습일 것 같아요?"


나는 깍두기를 우적 씹으며 말을 이었다.


"입 크게 벌리고, 땀 흘리고, 콧물 훌쩍이고, 뚝배기 째 들고 마십니다. 아주 원초적이고 무방비한 상태가 되죠. 그런데 대낮처럼 환한 조명이 머리 위에서 쏟아진다? 내 추한 꼴을 동네방네 생중계하는 기분이 듭니다. 그러니 빨리 먹고 도망가고 싶은 겁니다."


서은 씨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제야 납득이 가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불을 끄라고 하신 거군요."


"네. 인간은 본능적으로 식사할 때 '동굴'을 찾습니다. 어둑하고, 등 뒤가 막혀 있고, 안전한 곳. 그래야 경계심을 풀고 맛에 집중하니까요."


나는 다시 국밥을 먹기 시작했다.


확실히 조명을 끄니 내 눈에만 보이는 '공간의 중력'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부족했다.


천장의 무게는 덜어냈지만, 바닥이 문제였다. 싸구려 유광 타일이 빛을 반사해 공간을 붕 뜨게 만들고 있었다. 마치 얼음판 위에 식탁을 올려둔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저 바닥을 어둡게 눌러줘야 손님이 오래 앉아 있을 텐데.’


당장 바닥 공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시각적 속임수(Trick)를 써야 한다.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구석에 쌓여 있는 박스들, 입구에 있는 우산꽂이... 쓸만한 게 보이지 않았다. 그때, 주방 입구에 걸려 있는 짙은 남색 노렌(가림막 천)이 눈에 들어왔다.


"사장님, 저 천 좀 잠깐 빌려주세요."


"저거요? 주방 가리는 건데..."


"잠깐이면 됩니다."


나는 노렌을 떼어와 내가 앉은 테이블 밑에 깔았다. 그리고 그 위에 테이블을 올렸다.


순간, 내 시야가 변했다.


쿵-


허공에 5센티미터쯤 떠 있던 테이블 다리가, 남색 천 위로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바닥에 딱 달라붙는 느낌.


그것은 내 눈에만 보이는 황금색 닻이었다.


'이거다.'


하얀 타일 바닥이라는 망망대해에, 남색 천이라는 작은 '섬'이 생긴 것이다. 시각적 무게 중심이 바닥으로 쏠리자 공간에 질서가 생겼다.


그때였다.


가게 문이 드르륵 열렸다.


"영업해?"


작업복을 입은 중년 남성 두 명이었다. 평소 같으면 휑한 가게 분위기에 "다음에 오자"며 나갔을 타이밍이다.


하지만 그들은 멈칫하더니, 내가 앉은 테이블 쪽을 힐끔 보았다. 어둑한 조명 아래, 바닥에 깔린 천 덕분에 묘하게 아늑해 보이는 내 자리.


"어? 불 꺼져 있는데?"


"아니야, 저기 사람 먹네. 분위기 괜찮은데? 들어가자."


그들은 자연스럽게 내 옆 테이블, 조명이 가장 아늑하게 떨어지는 구석 자리에 엉덩이를 붙였다.


서은 씨가 입을 틀어막았다. 점심시간 내내 한 명도 없던 손님이, 조명을 끄고 바닥을 깔자마자 들어온 것이다.


"주문받으세요, 사장님."


내가 씩 웃으며 말했다.


"이제부터 바빠질 겁니다. 중력이 작동하기 시작했거든요."


서은 씨가 허둥지둥 물병을 들고 달려갔다. 나는 남은 국물을 들이켰다.


전생에 나는 강남 청담동에서 평당 1억짜리 인테리어를 하던 사람이었다. 고작 국밥집 테이블 하나에 희열을 느끼다니, 인생 참 모를 일이다.


하지만 확실한 건 하나였다.


화려한 샹들리에든, 낡은 형광등이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원리는 똑같다는 것.


'머물고 싶게 만들어라. 그러면 지갑은 열린다.'


나는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냈다. 7년 전, 아직 잉크도 마르지 않은 촌스러운 명함.


[공간 디자인 사무소 '뉴-빌드' 막내 차이현]


이 국밥집은 내 재기의 발판이 될 것이다.


그리고 증명해 보일 것이다. 인테리어는 '예술'이 아니라, 치밀하게 계산된 '심리전'이라는 것을.



2화에서 계속......




[차이현의 경영 인사이트]


Q. 왜 손님들은 구석 자리부터 앉을까?


카페나 식당에 가면 텅 빈 중앙 자리를 두고 굳이 구석이나 창가, 벽 쪽 자리에 앉으려는 손님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를 공간 심리학에서는 '조망과 피신(Prospect-Refuge) 이론'으로 설명합니다.


1. 인간은 '등 뒤'를 보호받고 싶어 한다.


원시 시대부터 인간은 적에게 기습당하지 않기 위해 등 뒤가 막혀 있는 곳(피신처)을 선호했습니다. 동시에 전방은 적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시야가 트여 있는 곳(조망)을 원했죠. 이 두 가지가 충족될 때 인간은 최고의 편안함을 느낍니다.


2. 중앙 자리가 비는 이유


매장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테이블은 사방이 뚫려 있어 심리적으로 가장 불안한 자리입니다. 이런 자리는 회전율은 높을지 몰라도, 고객 만족도는 떨어집니다.


3. 솔루션: 가짜 벽(Partition)을 만들어라


중앙 자리를 채우고 싶다면 '가상의 보호막'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 테이블 사이에 높은 화분을 두어 시선을 차단하세요.

  • 펜던트 조명을 낮게 달아 빛의 장막을 치세요.

  • 옆 테이블과의 간격을 띄우고 그 사이에 파티션을 세우세요.


손님에게 "당신은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을 줄 때, 그 자리는 비로소 '명당'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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