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외식정보=진익준 논설위원]
어느 유망한 떡볶이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야심 차게 준비한 신메뉴 시식회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이름하여 '로제 크림 퐁듀 떡볶이'. 화려한 플레이팅에 부드러운 소스, SNS를 겨냥한 감각적인 비주얼까지. 본사 임원들의 얼굴에는 확신이 가득했습니다. "이거 대박 납니다. 20대 여성 고객층을 완벽하게 사로잡을 겁니다." 전국 가맹점주들에게 신메뉴 출시 공문이 내려갔고, 막대한 비용을 들인 통합 마케팅이 시작되었습니다.
석 달 뒤, 저는 경기도의 한 가맹점을 방문했다가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그 화려했던 '로제 크림 퐁듀 떡볶이'가 냉장고 한구석에서 처치 곤란한 애물단지가 되어 있었습니다. 점주님의 깊은 한숨과 함께 이런 말이 들려왔습니다. "본사 사람들은 우리 가게에 와보긴 했을까요? 여긴 대학가라 학생들이 주머니 사정 생각해서 기본 메뉴만 찾는데… 저 비싼 신메뉴를 누가 사 먹겠어요. 재고만 쌓이고 죽겠습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본사의 데이터 분석도, 마케팅 전략도 나름의 논리를 갖추고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왜 현장에서는 이토록 처참한 실패로 귀결되었을까요? 이 흔하디흔한 실패담 속에는, 한국 프랜차이즈 산업의 본질적인 숙제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바로 본사와 가맹점 사이에 놓인 높고 견고한 벽, '사일로(Silo)'의 문제입니다.
저는 프랜차이즈 본사와 가맹점의 관계를 종종 '중앙정부와 지방 제후'의 관계에 비유하곤 합니다. 수도에 앉아 전국 지도를 보며 거시적인 국가 전략을 짜는 중앙정부(본사), 그리고 각자의 영지에서 매일 백성(고객)을 마주하며 궂은일을 도맡는 지방 제후(가맹점주). 이 구조는 효율적으로 보이지만, 태생적으로 비극적인 단절을 품고 있습니다.
중앙정부의 눈에는 통계와 평균값만이 보입니다. "전국 20대 여성 인구의 로제 소스 선호도 73%". 이런 데이터는 얼마나 아름답고 명쾌합니까. 이 숫자만 보면 ‘로제 떡볶이’는 실패할 수 없는 필승 카드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지방 제후의 현실은 다릅니다. 대학가 상권의 제후에게는 '주머니 가벼운 학생'이 보이고, 오피스 상권의 제후에게는 '빠른 점심을 원하는 직장인'이 보이며, 주택가 상권의 제후에게는 '아이들 간식을 찾는 주부'가 보입니다. 그들에게 '전국 평균'이라는 말은 다른 나라 이야기처럼 공허할 뿐입니다.
본사는 '숫자의 언어'를 사용하고, 가맹점은 '경험의 언어'를 사용합니다. 본사가 KPI와 ROI를 이야기할 때, 가맹점주는 옆 가게의 신메뉴와 단골손님의 표정을 이야기합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데 소통이 원활할 리 없습니다. 본사의 지시는 현실과 동떨어진 '탁상공론'으로 치부되고, 가맹점의 목소리는 전체를 보지 못하는 '지역 이기주의'로 왜곡됩니다. 이 견고한 사일로 안에서, 브랜드의 경쟁력은 조용히 썩어가는 것입니다.
그럼 이 답답한 현실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까요? "더 자주 만나서 소통합시다", "열린 마음으로 대화합시다"와 같은 낭만적인 구호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낡은 비포장도로 위에서 마차를 몰며 소통하자고 외쳐봐야 소용없습니다. 먼저, 중앙과 지방을 잇는 매끄러운 '디지털 고속도로'를 깔아야 합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국내 스타트업이 개발한 동명의 앱 서비스를 주목합니다. 내로라하는 브랜드들이 이 시스템을 도입해 본사와 가맹점 간의 소통 방식을 혁신하고 있습니다. 과거 슈퍼바이저가 종이 체크리스트를 들고 가맹점을 방문해 점검하고, 그 결과가 언제 본사에 보고될지 알 수 없었던 '마차 시대'는 끝났습니다.
이제 슈퍼바이저는 태블릿으로 현장을 점검하고, 그 내용은 실시간으로 본사와 가맹점주에게 공유됩니다. 본사의 새로운 정책이나 프로모션 공지는 모든 가맹점주에게 앱을 통해 투명하고 신속하게 전달됩니다. 가맹점주는 앱을 통해 현장의 문제점이나 개선 아이디어를 공식적으로 건의하고, 그 처리 과정을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업무 효율화를 넘어선 의미를 갖습니다. 모든 소통이 기록되고 공유되는 시스템은 본사와 가맹점 사이에 '투명성'과 '책임감'이라는 새로운 관계를 설정합니다. 본사는 더 이상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잊어버릴 수 없으며, 가맹점주 역시 근거 없는 불만 대신 논리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목소리를 내게 됩니다. 소통의 고속도로가 깔리자 비로소 중앙과 지방이 같은 정보를 놓고 대화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훌륭한 소통 시스템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고속도로를 깔았다고 해도, 중앙정부가 여전히 지방 제후를 통치의 대상으로만 여긴다면 근본적인 관계는 변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상생을 위해서는 본사가 스스로의 역할을 '지시하는 통치자'에서 '지원하는 파트너'로 재정의해야 합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스타벅스의 사례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스타벅스는 전 세계 수만 개의 매장을 운영하지만, 획일적인 정책을 강요하기보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각 매장을 위한 '맞춤형 컨설턴트' 역할을 수행합니다. 그들의 AI 플랫폼 '딥 브루(Deep Brew)'는 각 매장의 위치, 시간대별 고객 흐름, 날씨, 지역 행사 등 수많은 데이터를 분석합니다.
이를 통해 스타벅스 본사는 강남역 매장에는 "오전 8시 15분에 오트 밀크 라떼 주문이 폭주하니, 해당 시간에 인력과 재료를 집중하라"고 조언하고, 대학가 매장에는 "시험 기간 오후에 프라푸치노 판매량이 급증하니, 관련 프로모션을 준비하라"는 식의 초개인화된 전략을 제시합니다.
이는 본사가 가진 막강한 데이터 분석력을 무기 삼아, 각 가맹점이 자신의 영지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도록 돕는 '데이터 기반 파트너십'의 전형입니다. 본사가 더 이상 "우리 정책을 따르라"고 명령하는 대신, "당신의 성공을 위해 우리가 가진 최고의 정보를 제공하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정리해 봅시다. 수많은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본사와 가맹점 간의 갈등으로 신음하는 이유는, 그 관계가 여전히 중앙집권적 왕국 모델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첫걸음은 플랫폼을 통해 소통의 고속도로를 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스타벅스처럼 데이터를 무기로 각 가맹점의 성공을 지원하는 파트너로 진화해야 합니다.
대표님의 브랜드는 여전히 수도의 성벽 안에서 지방의 현실을 외면하는 중앙집권적 왕국에 머물러 있습니까? 아니면 각 지방이 가진 고유의 강점을 존중하고 함께 성장하는 강력한 연방 국가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그 선택에 브랜드의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