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로고

Top
기사 메일전송
10화: 사장님, 오늘의 월급은 얼마인가요? (에필로그)
  • 진익준 논설위원
  • 등록 2025-11-01 12:25:22
기사수정

[글로벌 외식정보=진익준 논설위원]




‘강혁이네 고기 연구소’의 금요일 저녁은 여전히 분주했다. 하지만 예전처럼 정신없이 접시만 나르던 전쟁터 같은 풍경은 아니었다. 그곳은 이제 유쾌한 실험과 발견의 소리로 가득 찬, 생동감 넘치는 연구실이었다.


“소장님! 3번 테이블 연구원분들, ‘매콤 마요 소스’ 개발에 성공하셨답니다!”


“오, 진짜? 그거 물건인데. 레시피 공유해달라고 정중히 요청해봐!”


아르바이트생 민수는 이제 나를 ‘사장님’ 대신 ‘소장님’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손님을 ‘연구원’이라 불렀고, 가게 한쪽 벽에는 ‘이달의 우수 연구 보고서(Best Recipe)’라는 이름으로 손님들이 개발한 독창적인 볶음밥과 소스 레시피를 사진과 함께 붙여놓았다. 선정된 연구원에게는 다음 방문 시 사용할 수 있는 ‘연구비 지원(식사권)’을 증정했다. 손님들은 자신의 레시피가 벽에 걸리는 것을 큰 영광으로 여겼고, 기꺼이 우리 연구소의 객원 연구원이 되어주었다.


그때, 교복과 과잠을 섞어 입은 앳된 얼굴의 신입생 무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딱 봐도 ‘김철수’들이었다. 그들은 망설임 없이 자리를 잡고, 메뉴판을 보며 자기들만의 작전 회의를 시작했다.


“야, 오늘은 내가 개발한 ‘된장술밥 라면’ 끓여준다. 일단 삼겹살로 기름 코팅 쫙 하고….”


“선배, 저는 오늘 볶음밥에 치즈 토핑 추가해서 ‘치즈 폭탄 리조또’ 만들 건데요?”


나는 그들의 활기찬 대화를 들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더 이상 내 가게는 ‘가성비’만으로 평가받는 곳이 아니었다. 이곳은 그들에게 친구들과 모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보고, 그 과정을 공유하며 즐기는 하나의 ‘아지트’이자 ‘놀이터’가 되어 있었다.


문득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길 건너편, ‘샤브의 정원’은 여전히 화려한 불빛을 뿜어내며 성업 중이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 거대한 항공모함을 보며 위축되거나 질투하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 다른 바다를 항해하고 있었다. 저곳이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한 크루즈 여행이라면, 내 가게는 언제든 편하게 찾아와 낚시를 드리우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아늑한 항구였다. 우리는 경쟁자가 아니라, 이 동네의 외식 생태계를 함께 풍요롭게 만드는 공존의 파트너였다.


“소장님, 저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어, 그래. 민수야, 고생했다. 조심히 들어가.”


마감을 혼자 하며 가게를 둘러보았다. 벽에 붙은 수많은 ‘연구 보고서’들, 손님들이 남기고 간 유쾌한 낙서들. 이 모든 것이 지난 1년간 내가 걸어온 치열한 시간의 훈장이었다. 나는 더 이상 매출액 숫자에 내 기분과 자존감을 저당 잡히지 않았다.


노트북을 켜고 월말 정산을 했다. 매출액은 과거 ‘무조건 퍼주는 고깃집’ 시절과 비슷하거나 조금 낮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가장 마지막 칸에 찍힌 숫자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월 순이익: 4,550,000원.


나는 그 숫자에서, 이번 달 내가 가져갈 월급 300만 원과 가게의 미래를 위한 투자금 155만 원을 분리했다. 마이너스 177만 원에서 시작했던 나의 첫 손익계산서는, 이제 제법 단단하고 건강한 숫자로 채워져 있었다.


나는 가게 문을 잠그고, 익숙한 골목길로 향했다. 그 끝에는 여전히, 희미하지만 따뜻한 불빛을 내뿜는 유진의 심야식당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와요, 강 소장님.”


그녀는 나를 보며 처음으로 환하게 웃었다. 그녀의 가게는 여전히 소박했지만, 그 어떤 화려한 레스토랑보다 깊은 내공이 느껴졌다. 나는 그녀가 내어준 뜨끈한 어묵탕 한 그릇을 비우고 나서, 지갑에서 빳빳한 오만 원권 몇 장을 꺼내 카운터 위에 올려놓았다.


“이게 뭡니까?”


“그때, 제가 처음 왔던 날 먹었던 밥값과 술값입니다. 그리고… 수업료입니다.”


유진은 돈을 보지 않고, 그저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진짜 해답은 찾았습니까? 제가 알려준 것들 말고, 강혁이라는 사람이 직접 찾은 진짜 해답 말입니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녀가 알려준 4가지 유형, 상권 분석, 손익 계산법. 그 모든 것이 나를 살린 나침반이었다. 하지만 그 나침반이 가리킨 최종 목적지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조금 다른 것이었다.


“네. 찾았습니다.”


나는 차분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는 성공하는 장사의 비법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진짜로 찾아야 했던 건, ‘내가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장사’의 방법이었습니다. 저는 모든 손님을 만족시킬 수 없고, 세상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사장님이 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정의한 단 한 명의 고객, ‘김철수’를 이 동네에서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 줄 자신은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보며 저 역시 가장 행복한 사장님이 될 수 있다는 것도요.”


나의 대답에, 유진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계산을 하려는 내 손을 지그시 막으며 말했다.


“그 대답을 들었으니, 수업료는 받지 않겠습니다. 그건 제가 아니라, 강 소장님 스스로 찾아낸 해답이니까요.”


그녀는 문득 먼 곳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덧붙였다.


“저도 예전에는 아주 크고, 아주 유명한 식당을 했었습니다. 손님은 매일같이 줄을 섰고, 돈도 많이 벌었죠. 그런데 이상하게, 하루하루가 불행했습니다. 내가 누굴 위해 이 힘든 일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거든요.”


그녀의 눈빛에 스쳐 지나가는 옅은 쓸쓸함 속에서, 나는 그녀가 걸어왔을 길의 무게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가게를 나와 밤의 찬 공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더 이상 차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은 새로운 시작을 앞둔 자의 폐부를 가득 채우는, 상쾌하고 시원한 공기였다. 나는 내 가게를 향해 걸었다. 저 멀리, ‘강혁이네 고기 연구소’라는 간판이 나를 위해 따뜻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무조건 퍼주기만 하던’ 어리석은 사장이 아니었다.


나는 나만의 약속을 지키고, 나의 연구원들과 함께 성장하며, 내 노동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하는, 이 구역의 자랑스러운 연구소장이었다. 그리고 나의 진짜 레벨업은, 어쩌면 바로 오늘부터 시작일지도 몰랐다.



끝......




레스토랑의 경영과 마케팅을 연구하고 희망을 스토리텔링합니다.
골목길 컨설턴트: ikjunjin@gmail.com


TAG
0
회원로그인

댓글 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사이드 기본배너-유니세프
사이드 기본배너-국민신문고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