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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르포] 힙스터의 저주, 성수동은 브루클린의 꿈을 꾸는가?
  • 진익준 논설위원
  • 등록 2025-09-18 17:3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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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령처럼 서 있는 하얀 성(城)

[글로벌 외식정보=진익준 논설위원]



프롤로그: 유령처럼 서 있는 하얀 성(城)


2025년 9월, 성수동의 터줏대감인 수제화 장인 최인수(가명, 68세) 씨는 매일 아침 자신의 낡은 공방 맞은편에 들어선 거대한 흰색 건물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40년간 가죽과 본드 냄새가 익숙했던 그의 코에, 이제는 값비싼 향수와 낯선 외국어들이 섞여 들어온다. 건물은 글로벌 명품 브랜드 디올(Dior)의 플래그십 스토어다.


꽃처럼 피어난 비현실적인 건물. 사람들은 그 앞에서 사진을 찍고 감탄하지만, 최 씨의 눈에는 그것이 거대한 묘비처럼 보일 때가 있다. 자신과 동료들이 평생을 바쳐 일궈온 이 동네, ‘성수동’이라는 이름의 영혼을 기리는 묘비. 화려하게 빛나는 저주처럼, 디올의 하얀 성은 묻고 있다. 과연 이 골목은 누구의 것이냐고.



PART 1. 가죽과 쇠의 노래가 흐르던 시절


10년 전 성수동은 지금과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골목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미싱 소리와 ‘타타타’ 구두 굽을 박는 망치 소리로 가득했다. 자동차 부품 공장의 프레스 기계가 땅을 울리고, 공기 중에는 쇠와 기름, 가죽이 뒤섞인 특유의 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다.


최인수 씨에게 그 시절은 “치열했지만 낭만 있던” 시간이었다. 대한민국 구두 산업의 메카라는 자부심, 곁에 기댈 수 있는 동료들이 있었다. 임대료 걱정 없이 오직 기술 하나에만 매달리면 되던 시절. 그러던 어느 날, 가난한 예술가들이 하나둘씩 텅 빈 공장으로 찾아들었다. 살인적인 도심의 월세를 감당하지 못한 그들에게, 층고 높고 빛 잘 드는 성수동의 낡은 공간은 완벽한 도피처이자 작업실이었다.


“처음엔 웬 젊은이들이 와서 쿵쾅거리나 했지. 근데 다들 눈이 반짝였어. 우리 같은 기술자랑 비슷했지. 돈은 없어도 자기 것 하나 만들겠다는 고집 같은 거.”


장인들의 노동과 예술가들의 영감이 조용히 공존하던 시절. 그들 사이로 개성 있는 작은 카페와 식당들이 생겨났다. 정부의 계획도, 대기업의 투자도 없었다. 모든 것은 물이 스며들듯 자생적으로, 그리고 유기적으로 이뤄졌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성수동 ‘르네상스’의 고요한 시작이었다.



PART 2. 축복인가, 재앙인가: ‘힙’이라는 양날의 검


변화는 한순간에 찾아왔다. ‘공장을 개조한 카페’라는 키워드가 SNS를 점령했고, 주말마다 골목은 ‘취향 탐험가’들로 미어터졌다. 방송과 잡지는 앞다투어 성수동을 ‘한국의 브루클린’이라 칭하며 새로운 성지의 탄생을 알렸다.


최 씨는 처음엔 동네에 활기가 도는 것 같아 좋았다고 했다. 하지만 축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3년 전, 그가 20년간 지켜온 공방의 월세가 두 배로 올랐다. 건물주는 “요즘 시세가 다 그렇다”는 말만 반복했다. 버티지 못한 동료들이 하나둘씩 경기도 외곽으로 짐을 쌌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하룻밤에 수십만 원을 쓰는 고급 레스토랑과 편집숍이 들어섰다.


이것은 정확히 20년 전 뉴욕 브루클린의 윌리엄스버그가 걸었던 길이다. 맨해튼을 피해 온 예술가들이 지역을 매력적으로 만들자, 월스트리트의 자본이 밀려들어와 예술가들을 다시 내쫓았던 그 과정. 한 도시재생 전문가는 이 현상을 ‘문화적 약탈’이라 정의했다. “지역의 정체성을 만든 원주민과 예술가들의 문화적 자본이 최고점에 이르렀을 때, 거대 상업 자본이 들어와 그 과실만 따 먹고 생태계 자체를 파괴하는 전형적인 젠트리피케이션의 수순입니다.”


‘힙’하다는 찬사는, 결국 원주민들에게는 사망선고와 다르지 않았다. 그들이 평생에 걸쳐 쌓아 올린 ‘진정성’이라는 무형의 자산이, 이제는 자신의 목을 조르는 칼날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PART 3. 영혼을 사냥하는 거대 자본


그리고 마침내 ‘디올’이 등장했다. 이는 이전의 상업화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디올은 단지 가방을 팔기 위해 성수동에 온 것이 아니다. 그들은 ‘성수동’이라는 브랜드가 가진 ‘날것의, 창의적인, 힙한’ 이미지를 사기 위해 왔다. 최 씨와 그의 동료들이 수십 년간 흘린 땀과 눈물로 쌓아 올린 무형의 가치를, 자신들의 브랜드 이미지에 흡수시키기 위해 이곳에 깃발을 꽂은 것이다.


이제 성수동의 낡은 공장들은 더 이상 삶의 터전이 아니다. 명품 브랜드의 ‘진정성’을 연출하기 위한 거대한 세트장이자, 소비를 위한 완벽한 배경이 되어가고 있다. 골목의 정체성이었던 망치 소리와 미싱 소리는 점점 잦아들고, 그 자리를 ‘인증샷’을 찍는 카메라 셔터 소리가 채우고 있다. ‘날것’의 매력은 자본의 힘으로 깔끔하게 박제되어 ‘만들어진 세련됨’으로 회귀하고 있다.



에필로그: 브루클린의 꿈은 누구의 꿈인가


최인수 씨는 최근 공방을 내놓았다.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임대료와, 더 이상 동료들이 없는 외로움 때문이다. 그는 “성수동이 잘 되는 건 좋은 일이지”라면서도, “근데 우리가 알던 그 성수동은 이제 죽었다”고 나지막이 말했다.


성수동은 브루클린의 꿈을 이뤘는가?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세계적인 브랜드들이 앞다투어 찾아오고, 땅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하지만 그 꿈의 대가는 혹독하다. 지역의 진짜 주인이었던 사람들은 밀려나고, 그들의 이야기는 지워지고 있다.


우리는 지금 아름답게 빛나는 도시의 유령을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세련되고 완벽하지만, 정작 그곳을 만들었던 영혼은 사라져버린 텅 빈 껍데기. 화려한 저주에 걸린 성수동은, 우리에게 도시의 발전과 재생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차갑게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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