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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서는 가게에는 특별한 '설계도'가 있었습니다
  • 진익준 논설위원
  • 등록 2025-09-18 17:3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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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망하는 가게는 우연에 기대고, 흥하는 가게는 경험을 설계합니다

[글로벌 외식정보=진익준 논설위원 ]


가게를 준비하는 분들을 만나면 으레 '오픈빨'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왠지 모를 기대감과 불안함이 뒤섞인 그 단어 속에서, 저는 성공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태롭게 우연에 기대고 있는지를 보곤 합니다. '제발 손님들이 우리 가게를 발견해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도와도 같죠.


하지만 제가 컨설팅 현장에서 오랫동안 지켜본, 자신만의 색깔로 사랑받는 공간들은 결코 우연히 탄생하지 않았습니다. 그곳엔 언제나 손님의 마음을 향한 치밀하고 다정한 '설계도'가 존재했습니다. 오늘은 그저 '맛집'을 넘어 누군가의 '인생 공간'을 만드는 세 가지 설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첫 번째 설계: 누구의 '인생 공간'이 될 것인가


좋은 공간은 '모두'를 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단 '한 사람'을 위해 존재할 때 가장 강력하게 빛납니다. 우리는 그 한 사람을 마음속에 그려보는 것으로 설계를 시작해야 합니다. 단순히 '20대 여성' 같은 통계적 분류가 아닙니다. 그 사람의 아침과 저녁, 좋아하는 음악과 책, 주말을 보내는 방식과 내면에 품은 작은 소망까지 상상해보는 것이죠.


가령 이런 사람을 떠올려보는 겁니다.



  • '망원동의 작은 작업실에서 홀로 그림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 그녀는 소란스러움보다 고요함을 사랑하고, 커피 한 잔을 마시더라도 그 시간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되기를 바란다.'



이 한 사람을 위한 공간을 상상하면, 모든 것이 명확해집니다. 테이블은 넓게 배치해야 할 것이고, 스피커에서는 시끄러운 음악 대신 잔잔한 연주곡이 흘러나와야겠죠. 메뉴판에는 화려한 이름 대신, 그 메뉴가 만들어진 소박한 이야기가 담겨야 할 겁니다.


모두를 만족시키려는 욕심을 버리고, 단 한 사람의 마음에 깊이 가닿겠다는 다정한 목표를 세울 때, 신기하게도 그 사람과 닮은 수많은 사람들이 공간을 찾아오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비로소 '나와 같은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라는 깊은 안도감과 소속감을 느끼게 됩니다.



두 번째 설계: 찍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순간을 만드는 법


요즘 우리에게 '경험했다'는 말은 '기록했다'는 말과 거의 동의어입니다. 스마트폰을 들어 사진을 찍는 행위는, "나는 지금 이렇게 멋진 순간을 보내고 있어"라고 말하는 가장 즐거운 자기표현이죠.


그렇다면 좋은 공간은, 바로 이 '자랑하고 싶은 순간'을 자연스럽게 만들어주는 곳이어야 합니다. 가게 전체를 스튜디오처럼 꾸밀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손님의 시선이 머무는 단 한 곳, 마음이 이끌리는 단 하나의 장면에 집중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 오후의 햇살이 가장 예쁘게 들어오는 창가 자리의 낡은 나무 의자.


  • 우리가 직접 만든 디저트 위에 살포시 올라가는 제철 과일의 선명한 색감.


  • 가게의 이야기가 담긴 문장이 새겨진 냅킨 한 장.


이런 사소하지만 진심이 담긴 디테일이 고객의 손을 카메라로 이끕니다. 그들이 남긴 사진 한 장 한 장이 모여 우리 공간의 이야기를 완성하고, 새로운 손님을 불러오는 가장 진솔한 안내서가 되어줍니다. 우리는 그저 손님들이 자신의 멋진 순간을 발견하고 기록할 수 있도록, 다정한 무대를 마련해두기만 하면 됩니다.



세 번째 설계: 첫 손님이 오기 전에, 온기가 있는 공간으로


새롭게 문을 연 텅 빈 공간에는 어색한 긴장감이 흐릅니다. 첫 손님은 그 긴장감을 온몸으로 느끼며 조심스럽게 문을 열게 되죠. 이 첫 만남의 어색함을 기분 좋은 설렘으로 바꿀 수는 없을까요?


저는 정식으로 문을 열기 며칠 전, 우리가 상상했던 바로 그 '한 사람'과 닮아있는 지인들을 공간에 초대해 '미리 온기 채우기'를 해보라고 권합니다. 거창한 파티가 아닙니다. 그저 편안하게 공간을 즐기고, 우리가 준비한 음식과 이야기를 나누는 작은 모임이죠.


이 과정을 통해 공간은 비로소 생기를 얻습니다.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벽에 스며들고, 커피 향이 공기 중에 자연스럽게 녹아듭니다. 그리고 이 작은 모임의 사진과 이야기는 SNS를 통해 미리 흘러나가, 우리 공간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이곳은 이미 사랑받고 있는 따뜻한 곳'이라는 기분 좋은 신호를 보내줍니다.


아무도 찾지 않은 낯선 공간이 아닌, 누군가의 즐거운 시간이 이미 머물다 간 온기 있는 공간. 첫 손님을 맞이하는 우리의 가장 사려 깊은 준비일 것입니다.


결국 좋은 공간을 만드는 일은, 한 사람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그 사람이 어떤 순간에 위로를 받고, 어떤 장면에서 기쁨을 느끼며, 누구와 함께일 때 가장 행복한지를 상상하는 것이죠.


당신의 공간이 단순히 음식을 파는 가게를 넘어, 누군가의 평범한 하루를 특별하게 만들고, 가장 빛나는 순간을 담아내는 '인생의 한 장면'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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