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외식정보=진익준 논설위원]
지난 몇 년간 ‘편리함’은 우리 시대의 신(神)이었습니다. 스마트폰 터치 몇 번이면 온 세상의 음식이 문 앞까지 배달되는 기적이 일상화됐습니다. 우리는 소파라는 옥좌에 앉아 배달 앱이라는 왕국을 다스리는 군주가 되었죠. 식당들은 이 새로운 종교, 즉 ‘편리함교(敎)’에 합류하기 위해 앞다퉈 배달 서비스를 도입했습니다. 그런데 2025년, 이 견고해 보였던 믿음의 제국에 균열이 생기고 있습니다. 기이한 반란이 시작된 겁니다. 사람들은 이제 기꺼이 소파를 박차고 일어나, 일부러 찾아가기 어렵고, 예약하기 힘들고, 심지어 간판도 없는 ‘불편한’ 식당으로 순례를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신처럼 떠받들던 편리함을 버리고, 우리는 왜 사서 고생하는 이 고행길에 오르는 것일까요? 여기에는 팬데믹이 우리에게 남긴 깊은 상처와, 그 상처가 역설적으로 만들어낸 새로운 욕망이 숨어 있습니다.

팬데믹 기간 동안 우리는 생존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집 안에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식욕은 채웠지만, 감각은 굶주렸습니다. 맛은 보았지만, 분위기는 느끼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배달 음식으로 허기를 달랬지만, 그와 동시에 ‘경험의 허기’는 점점 더 커져만 갔습니다. 식당의 웅성거림, 잔이 부딪치는 소리, 낯선 공간의 공기, 그곳까지 찾아가는 설렘. 이 모든 감각적 경험이 거세된 식사는 그저 ‘사료’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생각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요구받습니다. 인간은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해 외식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돈과 시간을 들여 하나의 ‘경험’을 소비하는 것입니다. 심리학에는 ‘노력 정당화(Effort Justification)’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어떤 일에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을 쏟을수록, 그 결과물을 더 가치 있게 여기는 심리적 경향을 말합니다. 한 달을 기다려 겨우 예약에 성공하고, 낯선 골목길을 헤매다 마침내 찾아낸 식당에서의 저녁 식사는, 그 노력의 과정 자체가 음식 맛을 증폭시키는 최고의 조미료가 됩니다. ‘이렇게 힘들게 왔는데, 당연히 맛있어야지!’라는 뇌의 자기 합리화가 시작되는 겁니다.
마치 케이블카를 타고 오른 산 정상과, 땀 흘려 직접 오른 산 정상에서 보는 풍경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과 같습니다. 풍경은 같아도 감동의 깊이가 다른 이유는 바로 ‘과정’이라는 서사가 더해졌기 때문입니다. 편리함의 시대는 우리에게서 바로 이 서사를 빼앗아 갔고, 이제 우리는 그 서사를 되찾기 위해 기꺼이 ‘불편함’이라는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의 관점이라면 단점이었을 요소들이, 이제는 가장 강력한 마케팅 무기가 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긍정적 불편함’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첫째, ‘숨어있는 공간’의 매력입니다. 앞선 칼럼에서 예시로 들었던 ‘묵정 서울’의 찾기 힘든 입구는 이제 단점이 아니라 ‘필터(Filter)’로서 기능합니다. ‘아무나 쉽게 찾아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는, 그곳을 찾아낸 고객에게 ‘나는 특별한 장소를 발견한 사람’이라는 은밀한 자부심을 심어줍니다. 간판 없는 식당, 주택가 깊숙이 자리 잡은 카페들이 인기를 끄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곳을 찾아가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미션’이 되고, 그 미션을 완수한 고객은 해당 공간에 대한 강력한 애착을 형성합니다.
둘째, ‘기다림의 미학’입니다. 예약이 어려운 식당들은 그 기다리는 시간 동안 고객의 머릿속에서 스스로 ‘전설’이 되어갑니다. 기다림은 기대감을 숙성시키는 최고의 인큐베이터입니다. 물론, 그 기다림을 상쇄할 만한 압도적인 맛과 경험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핵심은, 과거에는 무조건 단축해야 할 비용으로 여겨졌던 ‘시간’이, 이제는 가치를 증폭시키는 투자 자본으로 변모했다는 점입니다.
셋째, ‘거리의 재발견’입니다. 도심을 벗어나 외딴곳에 위치한 레스토랑들이 성공하는 현상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그곳까지 가는 여정 자체가 데이트이자 여행이 됩니다. 길 위에서 나누는 대화, 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 그리고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의 안도감. 이 모든 것이 식사 경험의 일부가 됩니다. 레스토랑은 더 이상 도심의 편리한 ‘점’이 아니라, 시간을 들여 찾아가야 할 ‘목적지’로서 기능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목적지향적 경험’ 트렌드에 기름을 부은 것은 단연 소셜미디어입니다. 과거의 우리는 음식 사진 하나를 찍어 올리는 데 만족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이야기’ 전체를 공유하고 싶어 합니다.
“한 달간의 예약 전쟁 끝에 드디어 입성!”이라는 문구와 함께 예약 성공 화면을 캡처해 올리고, “이 문을 찾으려고 얼마나 헤맸는지!”라며 숨겨진 출입구 사진을 포스팅합니다. 식당으로 향하는 낯선 골목길과 독특한 계단, 그리고 마침내 마주한 공간의 첫인상까지. 이 모든 과정이 하나의 잘 짜인 콘텐츠가 됩니다. 고객은 이제 당신의 레스토랑에서 밥만 먹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SNS에 올릴 한 편의 영화를 찍고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그 영화의 주인공인 자신을 가장 돋보이게 해 줄 ‘불편하고도 특별한’ 촬영 세트장을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경영자 입장에선 얼마나 신나는 일입니까. 과거에는 약점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찾기 힘든 위치, 낡은 계단, 좁은 복도)을 고객들이 앞다퉈 홍보해주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외식업의 성공 방정식이 바뀌었습니다. 과거의 공식이 ‘Location, Location, Location’(입지)이었다면, 이제 새로운 공식은 ‘Destination, Destination, Destination’(목적지)입니다. 고객 동선에서 모든 장애물을 제거해주려는 과잉 친절을 멈춰야 합니다. 대신, 고객이 기꺼이 넘고 싶어 할 만한, 그리고 넘었을 때 큰 성취감을 느낄 만한 ‘아름다운 허들’을 설계해야 합니다.
지금 당신의 가게를 둘러보십시오. 당신이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무엇입니까? 구석진 골목길? 그것은 ‘나만 아는 아지트’가 될 잠재력입니다. 낡고 오래된 건물? 그것은 ‘역사와 이야기가 담긴 헤리티지’입니다. 복잡하고 비효율적인 동선? 그것은 ‘탐험의 즐거움’을 선사할 최고의 무대입니다.
고객들은 이제 케이블카에 질렸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정상에 오르는 등반의 기쁨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자, 이제 당신의 가게를 어떤 멋진 산으로 만드시겠습니까? 그 산을 오르는 길에 어떤 아름다운 풍경과 아찔한 스릴을 숨겨두시겠습니까? 그 고민의 깊이가 당신의 브랜드를 새로운 시대의 전설로 만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