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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턱'의 재발견: 당신의 식당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 진익준 논설위원
  • 등록 2025-09-22 08:19:29
  • 수정 2025-09-25 15:2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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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턱의 두 갈래 길: 높은 성벽과 낮은 뜰
  • 가장 위험한 문턱: 약속을 배신하는 문턱
  • 그래서, 우리 가게의 문턱은?

[글로벌 외식정보=진익준 논설위원]


우리는 흔히 식당을 '음식을 파는 곳'이라 정의합니다. 지극히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정의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게 전부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수많은 식당의 흥망성쇠는 오직 맛과 가격이라는 두 변수로만 설명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현실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미묘합니다.


저는 오늘,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서 오히려 그 중요성을 놓치고 있는 것, 바로 식당의 '문턱'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여기서 문턱이란 단순히 가게의 출입문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객이 음식을 맛보기 전까지 마주하는 모든 것 - 간판의 글씨체, 예약 안내 메시지의 톤, 문손잡이의 감촉, 입구에서 맞는 직원의 첫인사까지. 이 모든 것이 바로 식당의 문턱입니다.


그리고 이 문턱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고객에게 말을 걸고 있습니다. "여기는 이런 곳입니다. 우리는 이런 경험을 약속합니다. 당신은 우리가 찾는 바로 그 손님입니까?"라고 말이죠. 문턱은 단순한 경계가 아니라, 한 레스토랑의 정체성을 담은 강력한 '브랜딩 선언문'인 셈입니다.



문턱의 두 갈래 길: 높은 성벽과 낮은 뜰


모든 문턱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 레스토랑의 정체성에 따라 문턱은 전혀 다른 두 갈래의 길을 걷게 됩니다. 하나는 높은 성벽을 쌓아 그 가치를 증명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낮은 뜰을 가꿔 사람들을 기꺼이 머물게 하는 길입니다.


먼저 '높은 성벽'의 길을 걷는 이들을 볼까요? 대표적으로 하이엔드 스시 오마카세가 있습니다. 군더더기 없는 미니멀한 공간, 말이 없는 셰프의 고요한 집중력, 식재료 하나하나를 보물처럼 다루는 경건함. 이 모든 것이 하나의 문턱으로 작용하며 고객에게 이렇게 선언합니다. "이곳은 미식의 정점을 논하는 전문가의 공간입니다. 당신은 그저 저를 믿고 따라오시면 됩니다." 고객은 비싼 값을 치르며 셰프의 '권위'를 신뢰하고, 그가 내어주는 한 점 한 점에 온전히 집중하게 됩니다. 예약이 어렵고 가격이 비쌀수록 이 성벽은 더 높아지고, 그 안으로 들어간 고객의 자부심 역시 함께 높아집니다.


반면, 부산의 어느 이름난 돼지국밥집을 떠올려 봅시다. 살짝 낡았지만 정감 있는 간판, 문을 열면 훅 끼쳐오는 진한 육수 냄새, 무심한 듯 착착 음식을 내어주시는 이모님들의 활기. 이 식당의 '낮은 뜰'과 같은 문턱 역시 고객에게 분명하게 말을 겁니다. "여기는 겉치레 따위 없는 진짜배기 노포다. 우리는 수십 년간 정직한 국밥 하나로 승부해왔다." 만약 이 국밥집이 호텔 레스토랑처럼 정중하고 조용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고객들은 오히려 어색해하며 그 '진정성'을 의심할 겁니다.


중요한 것은 문턱의 높낮이가 아닙니다. 그 문턱이 우리 식당의 정체성을 얼마나 일관되고 매력적으로 선언하고 있느냐입니다. '낮은 문턱'이 '문턱 없음'을 의미하는 것도 결코 아닙니다. 정체성 없이 그저 오고 가는 사람들을 바라만 보는 식당이야말로 진짜 '문턱 없는 식당'이며, 이런 곳은 고객의 기억에 어떤 흔적도 남기지 못합니다.


가장 위험한 문턱: 약속을 배신하는 문턱


그렇다면 가장 위험한 문턱은 무엇일까요? 바로 고객과의 약속을 배신하는 '어긋난 문턱'입니다.

예를 들어, SNS에는 젊고 트렌디한 감성의 공간이라고 홍보해 놓고, 막상 입구에 들어서니 어둡고 권위적인 분위기에 나이 든 지배인이 손님을 아래위로 훑어본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고객은 당황하고, 속았다는 느낌을 받으며, 음식 맛을 보기도 전에 마음의 문을 닫아버릴 겁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고급 유기농 재료와 건강한 조리법을 내세우는 식당인데, 매장 입구에 값싼 식자재 박스가 지저분하게 쌓여있다면 어떻습니까? 그 식당이 하는 그 어떤 건강의 약속도 고객의 마음에 가닿지 않을 겁니다.


이처럼 문턱이 선언한 '약속'과 실제 가게의 '경험'이 어긋날 때, 브랜드는 신뢰를 잃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몇몇 고객을 잃는 문제가 아니라, 식당의 존재 이유 자체가 흔들리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 가게의 문턱은?


자, 이제 우리 자신의 가게를 돌아볼 시간입니다. 사장님들의 가게는 고객에게 어떤 첫인상을 주고 있습니까? 어떤 경험을 약속하고 있습니까? 다음 세 가지 질문을 통해 우리 가게의 문턱을 한번 진단해 보시길 바랍니다.


  1. 우리의 핵심 정체성은 무엇인가? (예: 편안한 동네 사랑방, 진정한 맛의 전문가, 신나는 미식 놀이터 등)

  2. 우리의 문턱은 그 정체성을 첫눈에 보여주는가? (간판, 입구, 메뉴, 직원 유니폼, 예약 방식 등)

  3. 문턱이 약속한 경험은 가게 안에서 일관되게 유지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 곧 우리 가게만의 강력한 브랜딩 전략을 세우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결국, 레스토랑의 문턱이란 우리가 고객에게 건네는 첫인사이자,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의 첫 문장입니다. 그리고 이 첫 문장이 얼마나 매력적인가에 따라, 고객은 기꺼이 다음 챕터를 넘겨볼 것인지, 아니면 미련 없이 책을 덮어버릴 것인지를 결정합니다. 당신의 레스토랑은 지금, 고객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까?




ikjunji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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