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로고

Top
기사 메일전송
보이지 않는 메뉴: 고객의 지갑을 여는 '향기'의 심리학
  • 진익준 논설위원
  • 등록 2025-09-27 12:08:38
기사수정
  • 뇌는 코를 편애한다: 논리를 건너뛰는 감각의 비밀
  • 향기로 고객을 유혹하는 선수들: 그들은 무엇이 다른가?
  • 당신의 ‘보이지 않는 메뉴’를 지금 당장 점검하라

[글로벌 외식정보=진익준 논설위원]


“사장님, 당신의 레스토랑은 어떤 향기로 기억되고 있습니까?” 



뜬금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보통 ‘어떤 맛’이나 ‘어떤 인테리어’로 기억될지를 고민하니까요. 수억 원을 들여 최고의 주방 장비를 들이고, 유명 디자이너에게 맡겨 감각적인 공간을 만듭니다. 메뉴판의 사진 하나, 의자의 질감 하나까지 완벽을 기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모든 노력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거나 혹은 몇 배로 증폭시킬 수 있는, 그러나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거대한 ‘코끼리’가 우리 레스토랑 한가운데에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바로 ‘향기’라는 이름의 코끼리입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속담은 이제 외식업계의 금과옥조가 되었죠. 하지만 이는 절반의 진실일 뿐입니다. 진정한 미식가들은 코부터 킁킁거립니다. 와인잔을 받으면 눈으로 색을 보고 바로 코로 향을 맡죠. 갓 나온 스테이크 접시에서도, 뚜껑을 연 뚝배기에서도 가장 먼저 우리를 반기는 것은 김과 함께 피어오르는 ‘향’입니다. 뇌과학자들은 우리가 ‘맛’이라고 인지하는 감각의 80%가 사실은 ‘후각’에서 온다고 주장합니다. 충격적이지 않습니까? 우리는 혀가 아니라 코로 음식을 즐기고 있었던 겁니다.


이쯤 되면 "아, 음식 냄새가 중요하구나" 정도로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제가 오늘 이야기하려는 것은 단순히 음식에서 나는 냄새, 그 이상입니다. 고객이 매장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계산을 하고 나갈 때까지, 그의 뇌를 은밀하게 지배하는 ‘공간의 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는 사장님들이 직접 설계하고 통제할 수 있는, 그러나 대부분 방치하고 있는 강력한 마케팅 도구, 바로 ‘보이지 않는 메뉴’입니다.


뇌는 코를 편애한다: 논리를 건너뛰는 감각의 비밀


왜 유독 후각이 중요할까요? 여기에는 해부학적인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의 오감 중 시각, 청각, 촉각, 미각은 뇌의 ‘시상’이라는 관문(thalamus)을 거쳐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는 ‘대뇌피질’로 전달됩니다. 쉽게 말해, "이 그림은 파란색이군", "이 음악은 조용하네"처럼 일단 분석하고 판단하는 과정을 거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후각은 다릅니다. 코로 들어온 향기 정보는 이 모든 과정을 건너뛰고 뇌의 가장 원초적인 영역인 ‘변연계(Limbic System)’로 직행합니다. 변연계가 어디냐고요? 인간의 감정, 기억, 본능을 관장하는, 말하자면 우리 뇌의 ‘비밀의 화원’ 같은 곳입니다. 이곳에는 감정의 스위치인 ‘편도체’와 기억의 저장소인 ‘해마’가 있습니다. 향기가 논리적인 필터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우리의 감정과 기억에 방아쇠를 당기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는 주인공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 냄새를 맡는 순간, 어린 시절의 기억이 통째로 되살아나는 유명한 장면이 나옵니다. 이처럼 특정 향기가 과거의 기억과 감정을 강렬하게 되살리는 현상을 ‘프루스트 현상’이라고 부릅니다. 여러분도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비 갠 뒤의 흙냄새에 문득 떠오르는 시골 할머니 댁의 풍경, 갓 볶은 원두 향에 소환되는 대학 시절 단골 카페의 추억처럼 말이죠.


이것이 레스토랑 비즈니스에 시사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고객에게 긍정적인 향기 경험을 제공한다는 것은, 단순히 좋은 냄새를 풍기는 것을 넘어, 우리 레스토랑을 그의 뇌리 속에 ‘행복하고 즐거운 기억’으로 박제하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향기로 고객을 유혹하는 선수들: 그들은 무엇이 다른가?


말이 나온 김에 ‘선수’들의 사례를 좀 살펴볼까요? 쇼핑몰 푸드코트를 걷다 보면 이상하게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가게가 있습니다. 바로 시나몬롤 전문점 ‘시나본(Cinnabon)’입니다. 그 달콤하고 끈적한 계피 향은 거의 마법적인 인력을 발휘하죠. 이게 우연일까요? 천만에요. 시나본은 일부러 환기 시스템을 조작해 향기가 최대한 멀리, 강력하게 퍼져나가도록 설계합니다. 오븐을 매장 전면에 배치하는 것은 기본이고요. 그들은 빵을 파는 것이 아니라, ‘시나몬 향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욕망’을 판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겁니다.


국내에도 영리한 선수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긴 웨이팅으로 악명 높은 ‘런던 베이글 뮤지엄’이나 ‘아우어베이커리’를 떠올려 보시죠. 매장 문을 열기도 전에 풍겨 나오는, 고소한 버터와 갓 구운 빵이 뒤섞인 향기는 기다림의 지루함을 기대감으로 바꾸는 일등 공신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무엇인지 알고, 그 향기를 고객 경험의 가장 첫 단계에 배치하는 영리함을 보여줍니다.


파인 다이닝의 세계로 가면 이야기는 더욱 흥미로워집니다. 이곳의 셰프들은 향을 더욱 섬세하고 지적인 방식으로 활용합니다. 음식을 내오기 전, 은은한 숯불 향이나 훈연에 사용한 짚 향을 공간에 채워 넣어 다음 요리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킵니다. 인공적인 디퓨저 대신, 계절감을 담은 생화나 허브, 나무를 활용해 자연스럽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죠. 이는 "우리는 당신의 모든 감각을 만족시킬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라는 무언의 메시지입니다. 음식의 맛을 해치지 않으면서, 공간의 품격을 높이고 브랜드의 철학을 전달하는 고도의 전략인 셈입니다.


당신의 ‘보이지 않는 메뉴’를 지금 당장 점검하라


자, 이제 다시 우리 레스토랑으로 돌아와 봅시다. 이 글을 읽는 사장님들의 머릿속에는 몇 가지 질문이 떠오를 겁니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하라는 건가?", "우리 가게는 고깃집이라 냄새가 많이 나는데?", "디퓨저 하나 놓으면 되는 건가?"


진정하십시오. 모든 위대한 여정은 한 걸음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향기 마케팅의 첫걸음은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입니다. 아무리 좋은 향도 화장실의 불쾌한 냄새나 주방 후드의 기름 쩐내를 이길 수는 없습니다. 완벽한 환기 시스템과 청결 유지는 향기 전략의 제1원칙이자 가장 중요한 기본입니다.


기본이 되었다면, 이제 우리 가게의 ‘핵심 향’이 무엇인지 정의해야 합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라면 마늘과 바질, 올리브 오일의 신선한 향, 정갈한 한식당이라면 밥 짓는 구수한 향과 뭉근하게 끓여낸 육수 향이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고객이 이 핵심 향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도록 동선을 설계하고, 오픈 키친 등을 활용해 후각적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인공적인 향을 사용하고 싶다면, 브랜드의 정체성과 철저히 일치시켜야 합니다. 숲속 산장 컨셉의 식당에서 바다향이 나거나, 모던하고 시크한 레스토랑에서 라벤더 향이 난다면 고객은 무의식적인 부조화를 느끼게 됩니다. 과유불급의 원칙도 잊지 마십시오. 향기는 배경음악처럼 은은하게 존재감을 드러내야지, 주인공 행세를 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 칼럼을 마칠 시간입니다. 오늘 저녁, 당신의 레스토랑 문을 닫기 전 잠시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쉬어 보십시오. 그 공기 속에는 어떤 향기가 담겨 있습니까? 그 향기는 고객의 뇌리에 행복한 기억을 새기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저 무색무취의 공간으로 남거나 심지어 불쾌한 인상을 주고 있지는 않습니까?


메뉴판에 적힌 ‘보이는 메뉴’에 대한 고민의 10분의 1만이라도, 이 ‘보이지 않는 메뉴’에 투자해 보십시오. 아마 당신은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강력한 고객 충성도를 얻게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고객은 당신의 음식을 맛보기 전에, 이미 코로 당신의 레스토랑을 사랑하게 될 테니까요.



ikjunjin@naver.com


TAG
0
회원로그인

댓글 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사이드 기본배너-유니세프
사이드 기본배너-국민신문고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