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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게는 왜 ‘고수 맛집’ 혹은 ‘비누 맛집’이 될까? 후각의 유전학으로 본 고객 경험 설계
  • 진익준 논설위원
  • 등록 2025-09-28 10:2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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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의 코는 내 코와 다르다: 후각 수용체의 배신
  • 유전자가 만들어낸 희비극: 트러플, 돼지고기, 그리고 아스파라거스
  • ‘평균의 함정’을 넘어 ‘초개인화’로

[글로벌 외식정보=진익준 논설위원]


"사장님, 혹시 고수 좋아하십니까?"



느닷없이 웬 고수 타령이냐고요? 잠시만 제 이야기를 들어보시죠. 여기 두 명의 손님이 있습니다. 한 명은 쌀국수에 고수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는 그 향긋함에 황홀해하며 ‘인생 맛집’이라 칭송합니다. 반면, 다른 한 명은 음식에 들어간 고수 잎 하나에 기겁하며 “음식에서 비누 맛이 난다”고 혹평을 쏟아냅니다. 사장님 입장에서는 참으로 난감한 상황입니다. 똑같은 음식을 냈을 뿐인데, 한쪽에서는 극찬이, 다른 쪽에서는 악평이 돌아오니 말입니다. 우리는 보통 이런 상황을 ‘개인의 취향’ 혹은 ‘입맛 차이’라는 편리한 말로 뭉뚱그려 버립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만약 이 차이가 단순히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그들의 코가 세상을 다르게 보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누군가에게는 향긋한 허브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끔찍한 화장품으로 느껴지는 것이 그들의 유전자 지도에 새겨진 운명 같은 것이라면요? 오늘은 바로 이 지독하고 편협한 ‘유전자의 독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그리고 이 독재를 이해하는 것이 어떻게 우리 레스토랑의 고객 경험 설계를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지에 대해 논해보고자 합니다.


당신의 코는 내 코와 다르다: 후각 수용체의 배신


지난 칼럼에서 저는 후각이 어떻게 우리의 감정과 기억을 지배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오늘은 그보다 더 근원적인 질문으로 들어가 보려 합니다. 우리는 과연 같은 냄새를 맡고 있는 걸까요? 정답부터 말씀드리면, ‘아니오’입니다. 충격적이게도, 당신과 저는 같은 공간에 앉아 같은 음식을 앞에 두고도 전혀 다른 향의 세계를 경험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 범인은 바로 ‘후각 수용체(Olfactory Receptor, OR)’라는 놈입니다. 우리 코 점막에는 약 400종류의 후각 수용체가 빼곡히 들어차 있습니다. 이들은 공기 중의 냄새 분자(열쇠)와 결합하는 ‘자물쇠’ 역할을 하죠. 어떤 냄새 분자가 어떤 수용체와 결합하느냐에 따라 그 조합이 뇌로 전달되어 “아, 이것은 사과 향이구나” 하고 인식하게 됩니다. 문제는 이 400여 종의 후각 수용체를 만드는 설계도, 즉 유전자가 사람마다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는 점입니다. 무려 30%까지 다르다고 하니, 제 코에 있는 자물쇠 중 상당수가 당신의 코에는 없거나, 모양이 전혀 다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자, 이제 고수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요? 과학자들은 고수의 독특한 향을 내는 여러 알데하이드 성분 중 하나를 감지하는 ‘OR6A2’라는 특정 후각 수용체 유전자를 발견했습니다. 이 유전자에 특정 변이를 가진 사람들은 고수에서 비누나 화장품, 심하게는 노린재 냄새를 느끼게 됩니다. 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유전자가 그렇게 느끼도록 명령하는 겁니다. 그러니 이분들에게 “고수는 원래 향긋한 거니 참고 먹어보라”고 말하는 것은, 색맹인 사람에게 빨간색의 아름다움을 이해하라고 강요하는 것과 같은 폭력일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당신의 가게는 ‘고수 맛집’이 아니라 ‘비누 맛집’으로 영원히 기억될 뿐입니다.


유전자가 만들어낸 희비극: 트러플, 돼지고기, 그리고 아스파라거스


고수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유전자가 벌이는 희비극은 우리 식탁 곳곳에서 상영되고 있습니다. 세계 3대 진미로 꼽히는 트러플(송로버섯)을 예로 들어볼까요? 어떤 이들은 그 흙냄새와 사향이 뒤섞인 오묘한 향에 열광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저 ‘퀴퀴한 가스 냄새’ 같다며 고개를 젓습니다. 이 또한 ‘안드로스테논’이라는 페로몬 성분을 감지하는 ‘OR7D4’ 유전자의 차이 때문입니다. 


흥미롭게도 이 유전자의 형태에 따라 사람들은 세 부류로 나뉩니다. 첫째, 그 냄새를 전혀 맡지 못하는 ‘후각 상실’ 그룹. 둘째, 땀이나 오줌 냄새처럼 역겹게 느끼는 ‘불호’ 그룹. 셋째, 바닐라나 꽃향기처럼 달콤하게 느끼는 ‘극호’ 그룹. 똑같은 트러플 오일 파스타가 누군가에게는 천상의 맛으로, 누군가에게는 지옥의 음식으로 기억되는 이유입니다.


이 안드로스테논은 수퇘지 고기에서도 발견됩니다. 일부 사람들이 돼지고기에서 유독 역한 누린내를 느끼는 이유도 바로 이 유전자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가 좋은 품종의 암퇘지를 고집하고, 고기의 피를 빼고, 향신료로 잡내를 잡으려는 모든 노력이 사실은 특정 유전자를 가진 고객들을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던 셈이죠.


심지어 식사 후의 경험까지 유전자는 관여합니다. 서양에서는 아스파라거스를 먹고 난 뒤 소변에서 유황 화합물 냄새가 나는지를 두고 농담을 하곤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 냄새를 맡을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전혀 맡지 못합니다. 이 역시 아스파라거스의 대사산물 냄새를 감지하는 특정 후각 수용체 유전자의 유무에 따라 결정됩니다. 이쯤 되면 ‘절대미각’이란 재능의 영역이 아니라 ‘유전적 축복’의 영역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평균의 함정’을 넘어 ‘초개인화’로


자, 이쯤 되면 몇몇 사장님들은 허무함을 느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사람마다 다 다르다는데, 뭘 어떻게 하란 말인가?" 맞습니다. 모든 사람의 코를 100% 만족시키는 메뉴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는 새로운 기회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두를 위한 레스토랑’이라는 ‘평균의 함정’에서 벗어나, 특정 유전자 코드를 가진 고객들을 열광시키는 ‘초개인화’ 전략의 가능성 말입니다.


첫째, ‘경고’가 아닌 ‘가이드’를 제공해야 합니다. 메뉴판에 단순히 ‘고수 들어감’이라고 써두는 것을 넘어, “특유의 향긋함으로 마니아층을 사로잡는 고수입니다. 비누 향에 민감하신 분들은 주문 시 요청하시면 빼드립니다”와 같이 위트 있는 설명을 덧붙이는 겁니다. 이는 단순히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고객의 유전적 특성까지 이해하고 존중한다는 인상을 줍니다. 가게의 격이 달라지는 순간입니다.


둘째, ‘타겟 고객’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 가게가 진한 육향의 돼지고기나 꼬릿한 치즈, 강렬한 향신료를 주로 사용한다면, “우리 가게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바로 그 ‘호(好)’에 해당하는 사람이라면, 이곳은 당신의 성지가 될 것입니다”라는 식의 자신감 있는 브랜딩을 구사할 수 있습니다. 모두에게 사랑받으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누군가에게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셋째, 직원 교육이 달라져야 합니다. 고객이 특정 식재료에 대해 불평할 때, 그것을 ‘까다로운 입맛’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유전적 차이’일 수 있다는 점을 인지시켜야 합니다. "아, 그러시군요. 이 향이 고객님께는 불편하게 느껴지실 수 있습니다. 다른 메뉴로 교환해 드릴까요?"라는 응대는 단순한 친절을 넘어, 과학적 이해에 기반한 최상의 고객 서비스입니다.


결론적으로, 고객의 코가 모두 다르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절망이 아니라 새로운 무기를 줍니다. 그것은 바로 ‘이해’와 ‘존중’이라는 이름의 무기입니다. 내 가게의 음식이 누군가에게는 ‘인생 맛집’으로, 누군가에게는 ‘비누 맛집’으로 기억될 수 있다는 사실을 겸허히 인정하십시오. 그리고 그 차이를 끌어안고, 우리의 고객을 더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을 시작하십시오. 바로 그 지점에서 당신의 레스토랑은 그저 그런 ‘맛집’을 넘어, 누군가의 유전자에 각인될 ‘인생 식당’으로 거듭날 것입니다.



ikjunji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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