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외식정보=진익준 논설위원]
“요즘 향기 마케팅이 대세라던데, 우리 가게에도 디퓨저 하나 놓을까?”

아마 많은 사장님들이 이런 고민을 한 번쯤 해보셨을 겁니다. 옆 가게 카페에서는 은은한 커피 향이 나고, 새로 생긴 편집숍에서는 고급스러운 나무 향이 풍겨오니 왠지 우리 가게만 뒤처지는 것 같은 불안감이 들기도 하죠. 그래서 큰맘 먹고 유명하다는 디퓨저를 사서 카운터에 놓아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며칠 뒤 단골손님에게서 이런 말을 듣게 될지도 모릅니다. “사장님, 혹시 방향제 바꾸셨어요? 음식 맛이 예전 같지 않네요.”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냐고요? 향기를 바꿨을 뿐인데 음식 맛이 변하다니요. 하지만 이건 귀신의 장난이 아니라, 후각의 원리를 무시한 채 유행을 좇은 사장님들의 흔한 실수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레스토랑에서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는 ‘좋은 향기’는 정성껏 만든 음식에 조미료가 아닌 독약을 치는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왜 그런 비극이 벌어지는지, 그리고 이 향기라는 아주 예민하고 강력한 칼을 어떻게 제대로 휘둘러야 하는지에 대한 전략적 사고의 틀, ‘TPO’를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흔히 ‘좋은 향 = 좋은 것’이라는 단순한 공식에 빠지기 쉽습니다. 라벤더, 자몽, 샌달우드.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분이 좋아지는 향들이죠. 하지만 이 향들이 과연 당신의 레스토랑에도 ‘좋은 향’일까요? 상상해보십시오. 갓 잡은 생선의 신선함과 샤리(밥)의 섬세한 초 향이 생명인 고급 스시집에 들어섰는데, 뜬금없이 진한 라벤더 향이 코를 찌릅니다. 혹은 구수한 된장찌개와 칼칼한 제육볶음을 파는 한식당에서 상큼한 자몽 향이 진동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아마 대부분의 손님들은 음식을 맛보기도 전에 입맛을 잃거나, 무의식적인 부조화에 불편함을 느낄 겁니다. 왜일까요? 제가 이전 칼럼들에서 누누이 강조했듯, ‘맛’의 80%는 ‘향’이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음식의 향과 공간의 향이 서로 충돌할 때, 우리의 뇌는 극심한 혼란을 겪습니다. 된장찌개의 구수한 향을 기대하며 뇌를 준비시켰는데, 코에서는 계속해서 자몽 향이라는 엉뚱한 신호를 보내니 말입니다. 이는 콘서트장에서 아름다운 교향곡을 감상하는데 옆 사람이 시끄러운 록 음악을 틀어놓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후각적 소음(Olfactory Noise)’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좋은 향기인지는 몰라도, 당신의 레스토랑에서는 그저 소음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이 향기라는 칼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요? 해답은 패션 스타일링의 기본 원칙인 TPO(Time, Place, Occasion)에서 빌려올 수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에 맞는 향을 사용할 것인가. 이 세 가지를 고려하는 순간, 당신의 향기 전략은 아마추어의 ‘감’에서 프로의 ‘설계’로 격상될 것입니다.
1. Time (시간): 아침의 향과 저녁의 향은 달라야 한다
당신의 레스토랑은 하루 종일 똑같은 향을 풍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고객의 생체리듬과 식사 목적은 시간에 따라 달라집니다.
아침 (Brunch & Coffee): 아침은 감각을 깨우는 시간입니다. 갓 내린 커피의 아로마, 오븐에서 구워지는 빵 냄새, 혹은 레몬이나 오렌지 같은 시트러스 계열의 상쾌한 향이 식욕을 돋우고 활기찬 하루의 시작을 알립니다. 인공적인 향보다는 가게의 주력 메뉴가 내뿜는 자연스러운 향을 극대화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점심 (Business Lunch): 점심시간은 비교적 짧고 기능적입니다. 향은 최대한 중립적이거나 절제되어야 합니다. 음식 냄새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바질이나 로즈마리 같은 허브 향으로 신선함을 더하는 정도가 적당합니다. 대화와 음식에 집중해야 할 시간에 강한 향은 방해만 될 뿐입니다.
저녁 (Dinner & Wine): 저녁은 하루를 마무리하며 여유를 즐기는 시간입니다. 향기 역시 좀 더 복합적이고 분위기 있는 연출이 가능합니다. 입구에서는 샌달우드나 시더우드 같은 차분한 나무 향으로 고객을 맞이하고, 홀에서는 은은한 향신료나 가죽 향이 가미된 향으로 공간의 깊이를 더할 수 있습니다. 이는 고객에게 “이제부터는 오롯이 당신을 위한 특별한 시간입니다”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2. Place (장소): 당신의 가게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가
향기는 공간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가장 강력한 언어입니다.
컨셉 매칭: 당신의 가게 컨셉과 전혀 다른 향을 사용하는 것은 최악의 실수입니다. 정겨운 이탈리안 트라토리아라면 마늘과 오레가노, 장작 타는 냄새가 어우러져야 합니다. 모던한 비건 레스토랑이라면 풋풋한 풀 내음이나 생강, 그린티 향이 어울리겠죠. 고깃집의 숙제는 냄새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배기 시스템으로 불쾌한 연기는 잡되, 잘 구워진 고기의 ‘맛있는 냄새’를 어떻게 관리하고 연출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어야 합니다.
공간 분리: 모든 공간이 똑같은 향을 낼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공간별로 향을 다르게 설계하는 것이 훨씬 세련된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고급 레스토랑이라면 입구와 라운지, 화장실에는 브랜드의 정체성을 담은 시그니처 향을 사용해 품격을 높이고, 정작 음식을 먹는 다이닝 홀에서는 향의 사용을 최소화하여 고객이 음식의 아로마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신라호텔에 들어서는 순간 느끼는 특유의 문향(門香)을 떠올려보십시오. 그 향은 음식의 맛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그곳이 특별한 공간임을 끊임없이 상기시킵니다.
3. Occasion (상황): 고객의 목적에 향기를 맞추다
고객은 저마다 다른 목적으로 당신의 레스토랑을 찾습니다.
연인들의 데이트: 로맨틱한 분위기를 위해 인공 장미 향을 과하게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는 음식의 섬세한 향을 모두 덮어버리는 실수입니다. 차라리 바닐라나 앰버 계열의 부드럽고 따뜻한 향을 아주 은은하게 사용하거나, 테이블마다 작은 생화를 놓아두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중요한 비즈니스 미팅: 대화의 집중을 방해하는 모든 요소는 제거되어야 합니다. 달콤하거나 개성이 강한 향은 금물입니다. 숲속을 연상시키는 피톤치드나 집중력에 도움을 주는 페퍼민트 향을 공기 중에 거의 인지하지 못할 수준으로 사용하는 것을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TPO라는 거창한 전략을 이야기했지만, 사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아주 간단합니다. 그것은 바로 ‘빼기’입니다. 어떤 아름다운 향도 화장실 하수구 냄새나 주방의 기름 쩐내, 홀에 밴 퀴퀴한 냄새를 이길 수 없습니다. 향기 마케팅의 90%는 불쾌한 냄새를 완벽하게 제거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깨끗하게 비워진 도화지가 준비되어야만, 우리는 그 위에 비로소 섬세한 향기의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향기는 레스토랑의 보이지 않는 지휘자입니다. 이 강력하고 예민한 도구를 유행 따라 충동적으로 사용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레스토랑이 존재하는 ‘시간’과 ‘장소’를 깊이 고찰하고, 그곳을 찾는 고객의 ‘상황’을 세심하게 배려하십시오. ‘어떤 향이 좋은가?’라는 질문을 멈추고, ‘지금 이 순간, 이 공간에, 이 손님에게 어울리는 향은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순간, 당신은 향기라는 칼을 가장 우아하고 날카롭게 휘두르는 진정한 프로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