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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가게에는 몇 개의 '현실'이 존재합니까?
  • 진익준 논설위원
  • 등록 2025-10-01 08:56:14
  • 수정 2025-10-05 12: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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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객, 직원, 그리고 사장이 꾸는 각기 다른 꿈

[글로벌 외식정보=진익준 논설위원]



"인간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지 않는다. 보고 싶은 현실을 볼 뿐이다." 스피노자의 말이었던가요? 굳이 위대한 철학자의 이름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미 이 사실을 몸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뇌는 세상이라는 ‘날것’의 데이터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고성능 카메라가 아닙니다. 오히려 제멋대로 편집 방향을 정해놓고 취재를 지시하는 아주 편파적인 신문사 편집국장에 가깝죠. 이 신문사의 이름이 바로 ‘나의 세상’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이라는 작은 공간 안에 이 ‘나의 세상’이라는 신문사가 최소 세 개 이상 존재하며, 각기 다른 헤드라인으로 전혀 다른 기사를 송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고객의 신문, 직원의 신문, 그리고 사장의 신문 말입니다. 이 신문사들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각자 자기 신문이 유일한 정론지라고 주장할 때, 우리는 소위 ‘문제’라는 것을 겪게 됩니다. 오늘, 이 아수라장 같은 레스토랑 편집국 안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제1신문: 고객의 세상 - "내 시간은 금보다 비싸다"


여기 한 고객이 있습니다. 그는 큰맘 먹고 시간을 내어 당신의 가게에 왔습니다. 그의 세상에서 오늘 저녁의 주인공은 단연 자기 자신입니다. 메뉴판을 정독하고 신중하게 주문을 마친 순간, 그의 세상 속 시간은 이제 ‘기대감’이라는 렌즈를 통해 흐르기 시작합니다. 1분이 5분처럼 느껴지는 마법이 펼쳐지죠.


주문한 지 10분이 지났습니다. 그의 뇌는 ‘슬슬 음식이 나올 때가 되었는데?’라는 기사를 1면에 배치합니다. 주변을 둘러봅니다. 직원들은 분주해 보이지만, 어쩐지 자기 테이블 쪽으로는 시선 한번 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때부터 뇌 속 편집국은 부정적인 기사를 쏟아냅니다. ‘혹시 주문이 안 들어갔나?’, ‘저 직원은 왜 저렇게 느긋하지?’, ‘나를 무시하는 건가?’


마침내 20분 만에 음식이 나왔습니다. 이미 그의 세상에서 이 음식의 첫인상은 ‘지각’입니다. 아무리 맛있어도 ‘괘씸죄’가 적용되어 100점 만점에서 20점은 깎이고 시작하는 셈이죠. 그는 생각합니다. “이렇게 바쁘면 직원을 더 뽑든가 해야지. 서비스가 엉망이군.” 그의 신문 1면 헤드라인은 이렇게 결정됩니다. [탐사보도] 서비스 정신 실종된 식당, 고객은 ‘봉’인가?



제2신문: 직원의 세상 - "불 위에서 걷는 외줄타기"


같은 시각, 직원의 세상은 어떨까요? 그의 세상은 전쟁터입니다. 5번 테이블에서 파스타 주문이 들어오는 순간, 그의 뇌는 단순히 ‘파스타 주문 접수’라는 정보만 처리하지 않습니다. ‘아, 저 파스타는 주방에 밀린 주문 3개 다음에 조리되니까 최소 15분. 그사이 7번 테이블 물 리필 요청이 있었고, 2번 테이블은 계산해야 한다. 새로 들어온 손님은 어디에 안내하지? 포스기에서는 배달 주문 알람이 미친 듯이 울리고 있군.’


고객의 세상에서 20분은 ‘기다림’의 시간이지만, 직원의 세상에서 20분은 수십 개의 과업을 쪼개고 배열하며 퍼즐을 맞추는 ‘전투’의 시간입니다. 그는 고객을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의 머릿속은 온통 고객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다만 그 고객이 한 명이 아닐 뿐이죠. 그의 뇌는 지금 불 위에서 외줄을 타는 곡예사처럼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으며 수많은 과업의 불길을 피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기요!”라는 고객의 날카로운 부름은, 곡예사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돌풍과도 같습니다. 겨우 음식을 가져다주었을 때 마주하는 고객의 싸늘한 표정 앞에서 직원은 생각합니다. “정말 1초도 안 쉬고 뛰어다녔는데, 뭘 더 어떻게 하라는 걸까. 최선을 다했는데 알아주질 않네.” 그의 신문 헤드라인은 이렇습니다. [현장고발] 감정노동의 최전선, 존중받지 못하는 오늘의 최선.



제3신문: 사장의 세상 - "숫자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자, 이제 사장의 세상으로 가볼까요? 그는 카운터에 서서 이 모든 풍경을 지켜보고 있거나, 혹은 CCTV 화면이나 엑셀 시트를 통해 가게를 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의 세상에서 가게는 하나의 유기적인 시스템입니다. 그의 신문 1면은 언제나 ‘숫자’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는 생각합니다. ‘오늘 저녁 테이블 회전율이 목표치보다 7% 낮군. 저 5번 테이블 손님이 20분 일찍 식사를 마쳤다면 한 팀을 더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주방 인력을 한 명 더 쓰면 음식 나가는 속도는 빨라지겠지만, 인건비가 월 300만 원 추가된다. 그 비용을 감당하려면 객단가를 높이거나 테이블 수를 늘려야 하는데…’


고객의 ‘기다림’과 직원의 ‘전투’는 사장의 세상에서는 ‘비용’과 ‘효율’이라는 지표로 번역됩니다. 그는 고객의 불만도, 직원의 고충도 물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 모든 것을 숫자의 렌즈를 통해 바라보며 최적의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의 신문 헤드라인은 종종 이렇게 나옵니다. [경영분석] 최대 효율과 최소 비용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 해법은 없는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는 힘, ‘번역’의 리더십


이처럼 레스토랑이라는 한 공간 안에는 최소 세 개의 다른 ‘현실’이 소용돌이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현실들이 서로 충돌할 때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각자의 신문만이 진실이라고 믿어버릴 때 발생합니다.


그렇다면 이 난장판을 수습할 편집장은 누구일까요? 바로 사장, 혹은 관리자입니다. 성공하는 리더는 이 서로 다른 현실들을 조율하는 ‘번역가’의 역할을 자처합니다.


주문이 늦어지면 직원에게 “왜 이렇게 늦어?”라고 윽박지를 게 아니라, 고객에게 다가가 직원의 현실을 번역해줍니다. “주방에 단체 주문이 밀려 조금 늦어지고 있습니다. 기다리시는 동안 드실 수 있도록 음료라도 먼저 준비해드릴까요?” 이는 직원의 세상을 고객의 세상으로 정중하게 가져오는 ‘번역’ 행위입니다.


직원들에게는 고객의 현실을 번역해줘야 합니다. “손님들이 오래 기다리면 저렇게 표정이 안 좋아질 수밖에 없어. 우리에겐 수십 명 중 한 명이지만, 저 손님에게는 오늘 단 한 번의 저녁 식사니까. 그 마음을 먼저 헤아려주자.” 이는 고객의 불만을 ‘진상’이 아닌 ‘당연한 감정’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공감의 번역입니다.


궁극적으로 이 모든 과정은 사장 자신에게도 이롭습니다. 숫자로만 보이던 가게가 살아있는 감정과 이야기가 오가는 공간으로 보이기 시작할 때, 비로소 그는 ‘경영자’를 넘어 손님과 직원의 마음을 모두 얻는 ‘리더’가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의 가게는 안녕하십니까? 혹시 서로 다른 신문들이 각자의 헤드라인만 소리 높여 외치고 있지는 않으신지요. 오늘 한번 당신의 가게에 존재하는 여러 현실들을 찬찬히 들여다보시길 바랍니다. 최고의 레스토랑은 음식을 파는 곳이 아니라, 서로 다른 현실을 이해시키고 연결하는 멋진 경험을 파는 곳이니 말입니다.




늘 깨어 있는 당신과 레스토랑을 응원합니다~

인포마이너: ikjunji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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