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외식정보=진익준 논설위원]

얼마 전 한 카페에서 로봇 바리스타가 내려주는 커피를 마셨습니다. 실로 완벽한 라떼였습니다. 원두는 0.1g의 오차도 없이 계량되었고, 우유의 온도는 65℃를 정확히 맞췄으며, 에스프레소 추출 시간은 칼같이 25초를 지켰습니다. 맛의 편차? 아마 0에 가까울 겁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는 며칠 전 동네 단골 카페 사장님이 "오늘은 이 원두가 향이 좋네"라며 대충 내려준 것 같던 그 커피가 더 그리워졌습니다. 제 이름을 기억해주고, "요즘 피곤해 보이네"라며 안부를 묻던 그 사장님의 미소 때문이었을까요?
2025년 오늘, 우리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많은 것을 대체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AI는 셰프의 레시피를 수만 번이고 똑같이 복제할 수 있고, 로봇은 단 한 번의 실수 없이 음식을 나를 수 있습니다. 효율성의 전장에서 인간이 기계를 이기는 것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모든 것이 기술로 평준화되는 시대, 그렇다면 우리 ‘사람’은 이제 어디에서 가치를 찾아야 할까요?
저는 바로 이 지점에서 역설의 미학이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기술이 모든 것의 ‘상향 평준화’를 이룰수록, 오히려 기술이 절대 복제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은 더욱 희소해지고, 따라서 더 비싼 값을 치러야 하는 ‘프리미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한 사람의 인생이 담긴 ‘철학’과 마음을 움직이는 ‘진정성’입니다. AI 시대, ‘사람’이야말로 당신의 레스토랑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치명적인 무기입니다.
과연 훌륭한 요리란 완벽한 레시피의 복제품일까요? AI가 미슐랭 3스타 셰프의 모든 조리법을 데이터로 학습한다면, 똑같은 맛을 재현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영혼 없는 모창에 불과합니다. 위대한 셰프들은 음식을 만드는 기술자가 아니라, 접시 위에 자신의 인생과 철학, 세계관을 그려내는 예술가이기 때문입니다.
이탈리아의 거장 마시모 보투라 셰프의 대표 요리 중 하나인 ‘이크! 레몬 타르트를 떨어뜨렸네(Oops! I Dropped the Lemon Tart)’를 보시죠. 깨진 접시처럼 보이는 이 디저트는 완벽함에 대한 강박을 깨고, 실수와 불완전함 속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이야기합니다. 과연 어떤 AI가 이런 ‘실수’를 창조라고 선언할 수 있을까요? AI에게 이것은 수정해야 할 ‘오류값’일 뿐입니다.
미국의 댄 바버 셰프는 ‘팜 투 테이블’을 넘어, 흙과 씨앗, 지속가능한 농업 생태계 전체를 이야기합니다. 그의 레스토랑 ‘블루 힐 앳 스톤 반스’에서 당근 한 조각을 먹는 것은, 단순히 채소를 맛보는 것이 아니라 그의 농업 철학에 대한 긴 강연을 듣는 것과 같습니다. 한국의 사찰음식 대가이신 정관 스님의 요리가 왜 세계를 감동시키겠습니까? 그것은 단순한 채식 레시피가 아니라, 불교의 수행과 자연과의 교감이라는 깊은 철학이 녹아있기 때문입니다.
국내 파인 다이닝을 이끄는 ‘밍글스’의 강민구 셰프나 ‘정식당’의 임정식 셰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익숙한 한식을 새롭게 해석하며 ‘오늘날의 한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이것은 요리를 넘어선 인문학적 탐구에 가깝습니다. AI는 데이터를 조합할 수는 있어도, 고뇌하고 질문하며 자신만의 답을 만들어가는 ‘작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주방에서 셰프가 예술가라면, 홀에서는 직원이 예술가가 되어야 합니다. 서빙 로봇은 정확한 경로로 음식을 나를 수는 있지만, 단골손님의 미묘한 표정 변화를 읽어내지는 못합니다. 오늘따라 유난히 지쳐 보이는 손님에게 "오늘은 좀 힘든 일 있으셨나 봐요. 따뜻한 국물 먼저 드릴까요?"라고 건네는 인간적인 위로를 건넬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일본의 료칸이나 세계적인 파인 다이NING 레스토랑의 서비스가 왜 감동을 주겠습니까? 그들은 손님의 요구에 ‘반응’하는 것을 넘어, 손님이 무엇을 원할지 미리 알아채고 ‘제안’하기 때문입니다. 고객의 이름과 지난번 방문 때의 대화를 기억하고, 음식의 스토리를 막힘없이 설명하며, 식사의 속도를 세심하게 조절하는 이 모든 과정은 고도의 공감 능력과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필요한 종합 예술입니다.
이것이 비단 고급 레스토랑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우리 동네 단골 고깃집 이모님을 떠올려보십시오.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챙겨주는 추가 반찬, "학생, 밥은 잘 먹고 다녀?"라며 툭 던지는 정겨운 한마디. 우리는 바로 그 ‘정(情)’ 때문에 그 집을 다시 찾습니다. 이 예측 불가능하고 비효율적이기 짝이 없는 인간적인 온기야말로, AI가 결코 따라 할 수 없는 가장 강력한 고객 유지 전략입니다.
사람의 힘은 셰프와 직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레스토랑이 지켜온 ‘역사’, 그곳만이 가진 ‘공간의 힘’ 역시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수십 년째 대를 이어온 ‘노포’의 허름한 간판과 낡은 식기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이야기가 깃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음식과 함께 시간과 추억을 먹습니다. 남해의 외딴 섬에서 그날 아침 주인이 직접 잡아 온 해산물로만 차리는 식당이 있다고 상상해보십시오. 우리는 그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고 찾아갈 겁니다. 그 식당의 ‘진정성’과 ‘희소성’을 경험하기 위해서죠. AI는 그 식당의 바다 내음과 파도 소리, 그리고 주인장의 거친 손마디에 새겨진 인생의 이야기를 복제할 수 없습니다.
결국 AI 시대의 레스토랑 경영은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됩니다. “우리는 고객에게 어떤 ‘경험’을 팔 것인가?” AI와 로봇이 책임지는 ‘효율적인 경험’의 반대편에는, 사람의 철학과 이야기, 진정성이 책임지는 ‘감동적인 경험’이 있습니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후자의 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그러니 사장님, 두려워 마십시오. 주방에 로봇을 들일까 고민하기 전에, 당신의 셰프가 어떤 철학을 가졌는지, 당신의 직원이 손님의 마음을 어떻게 얻고 있는지 먼저 돌아보십시오. 직원들에게 더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이라고 가르치지 마십시오. 대신 더 많이 웃고, 손님과 눈을 맞추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라고 가르치십시오.
AI가 완벽한 음식을 만들 수는 있어도, 따뜻한 추억까지 만들어주지는 못합니다. 기술의 시대, 역설적이게도 ‘사람’만이 희망입니다. 당신의 레스토랑에 사람의 향기를 가득 채우십시오. 그것이 바로 그 어떤 기술로도 무너뜨릴 수 없는 당신만의 성을 짓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늘 깨어 있는 당신과 레스토랑을 응원합니다~
인포마이너: ikjunj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