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외식정보=진익준 논설위원]

지난 수십 년간 외식업계에는 성서(聖書)처럼 떠받들어 온 불변의 계명이 있었습니다. “메뉴가 왕이다(The Menu is King).” 모든 것은 맛에서 시작해 맛으로 끝난다는 믿음. 저 역시 이 말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늘, 저는 감히 이 성스러운 왕국에 곧 궁중 쿠데타가 임박했음을 알리려 합니다. 2026년의 외식업에서 ‘맛’은 더 이상 절대군주가 아닐 것입니다.
이것은 맛을 폄하하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선순위의 재정렬에 관한 선언입니다. 2026년에 와서도 오직 맛만이 전부라고 주장하는 것은, 마치 영화감독이 배우와 촬영과 음향은 무시한 채 “내 시나리오가 최고야!”라고 외치는 것과 같습니다. 그 시나리오는 문학적으로 걸작일지 몰라도, 관객은 십중팔구 좌석에 앉아 졸고 있을 겁니다. 성공한 레스토랑 경영자의 역할은 이제 ‘최고의 요리사’에서 ‘경험의 총감독’으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더 이상 일부 파인 다이닝의 이야기가 아닌, 시장의 모든 플레이어를 위한 생존 공식이 될 것입니다.
이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의 동력은 바로 ‘고객의 진화’입니다. 오늘날의 고객은 레스토랑을 찾는 이유가 과거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들은 단순히 허기를 채우거나 미식을 탐닉하기 위해 지갑을 열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 이상의 것, 즉 ‘이야깃거리’, ‘공유할 만한 순간’,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경험’을 소비합니다.
한때 유행했던 ‘인스타그래머블’이라는 단어의 의미도 진화했습니다. 예쁜 음식을 찍어 올리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이제 고객은 경험의 ‘증거’를 남기고 싶어 합니다. 서울 이태원의 ‘교촌필방’의 비밀스러운 붓 모양 손잡이는 고객의 SNS 피드에서 단순한 ‘맛집 인증샷’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그것은 “나는 이렇게 독특하고 숨겨진 공간을 아는 사람”이라는 자기표현이자, 일종의 문화적 지위를 드러내는 상징물입니다.
뉴욕의 명소 ‘피에트로 놀리타(Pietro Nolita)’는 레스토랑 전체가 온통 핑크색입니다. 이 핑크색이 파스타 맛에 어떤 긍정적 영향을 미치겠습니까? 아마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 강력한 시각적 정체성은 공간 자체를 바이럴 콘텐츠로 만들었고, 전 세계의 인플루언서들을 끌어들였습니다. 이곳에서 공간은 음식을 맛보기 위한 배경이 아니라, 그 자체가 경험의 핵심이자 방문의 목적이 됩니다.
결국 잘 설계된 공간 경험은 그 자체로 가장 강력한 마케팅 깔때기(Funnel)가 됩니다. 온라인상의 호기심이 오프라인 방문으로, 방문 경험이 자발적인 SNS 공유(User-Generated Contents)로 이어지는 선순환. 이는 수억 원의 광고비로도 얻기 힘든 강력한 신뢰 자산입니다.
고객이 진화했다면, 우리 업의 본질도 다시 정의해야 합니다. 현대의 레스토랑은 이제 옆 가게뿐만 아니라 넷플릭스, 영화관, 콘서트와도 경쟁해야 하는 ‘마이크로-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되었습니다. 고객의 한정된 시간과 돈을 얻기 위한 경쟁 말입니다. 이 무대에서 음식은 주연 배우지만, 관객을 열광시키는 것은 종종 배우의 연기(리츄얼)입니다.
뉴욕과 마이애미의 중식당 ‘후통(Hutong)’의 시그니처 메뉴인 ‘플레이밍 덕(Flaming Duck)’을 보시죠. 오리구이에 불을 붙여 테이블로 가져오는 이 극적인 퍼포먼스는 식사 자리를 순식간에 공연장으로 만듭니다. 이 불꽃이 오리의 맛을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않겠지만, 식사 경험의 가치와 기억은 근본적으로 바꿉니다. 이 짧은 불꽃 쇼가 바로 고객이 기꺼이 지불하는 프리미엄의 본질입니다.
브라질 슈하스코 전문점 ‘포고 데 차오(Fogo de Chão)’의 핵심 상품은 단순히 고기가 아닙니다. 꼬치에 꽂힌 고기를 들고 테이블 사이를 역동적으로 오가는 가우초(Gaucho)들의 ‘퍼레이드’ 자체가 상품입니다. 그 역동성과 풍요로움의 ‘경험’을 소비하기 위해 고객은 그곳을 찾습니다.
이러한 경험의 정점에는 덴마크의 ‘알케미스트(Alchemist)’가 있습니다. 돔 천장에 펼쳐지는 미디어 아트를 보며 철학적 메시지가 담긴 요리를 먹는 경험은, 식사를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예술 행위로 격상시켰습니다. 이곳에서 메뉴판은 연극의 대본이고, 레스토랑은 완벽하게 계산된 종합 예술 공간입니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하면 결론은 명확합니다. 성공적인 현대 레스토랑들의 사례는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경험 설계’가 바로 새로운 시대의 전략적 필수 과제라는 것입니다.
과거 성공의 청사진은 ‘훌륭한 레시피 → 훌륭한 메뉴 → 훌륭한 레스토랑’의 순이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시대의 청사진은 ‘훌륭한 콘셉트 → 훌륭한 경험 → 훌륭한 브랜드’의 순으로 그려져야 합니다. 메뉴는 이 경험을 구성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지만, 더 이상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은 아닙니다.
그러니 다음번 메뉴 개발 회의를 하실 때, 그 직후에 반드시 ‘경험 개발 회의’를 여십시오. “우리는 무엇을 요리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넘어, “우리는 고객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가?”, “고객이 어떤 감정을 느끼게 할 것인가?”, 그리고 “고객이 어떤 순간을 기억하고 공유하게 만들 것인가?”를 치열하게 토론해야 합니다.
2026년, 시장을 선도하는 레스토랑은 가장 긴 레시피 노트를 가진 곳이 아니라, 가장 흡입력 있는 스토리 노트를 가진 곳이 될 것입니다. 외식업의 미래는 더 이상 메뉴판 위에 쓰여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레스토랑을 찾은 고객들의 기억 속에 쓰여질 것입니다.
레스토랑의 경영과 마케팅을 연구하고 희망을 스토리텔링합니다.
골목길 컨설턴트: ikjunj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