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외식정보=진익준 논설위원]

여러분, 혹시 ‘프루스트 현상’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이름은 낯설어도 경험은 지극히 익숙하실 겁니다. 길을 걷다 우연히 맡은 빵 굽는 냄새에 어린 시절 동네 빵집의 추억이 통째로 소환되거나, 어떤 노래를 듣는 순간 십수 년 전의 어느 여름밤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는 바로 그 경험 말입니다. 우리의 뇌는 특정 감각, 특히 후각이나 청각을 통해 과거의 기억과 감정을 봉인해두었다가 한순간에 풀어놓는 신비로운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 현상이야말로 레스토랑 경영의 본질을 꿰뚫는 핵심 열쇠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맛집을 찾아다니고 기꺼이 비싼 돈을 지불하는 이유가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함일까요? 천만에요. 우리는 음식을 넘어 ‘기억’을 소비하는 것입니다. ‘그날 거기서 먹었던 파스타는 정말 최고였어’라는 기억, ‘그 사람과 함께했던 그곳의 분위기는 정말 낭만적이었지’라는 기억. 이처럼 행복한 시간으로 각인된 기억이야말로 고객을 다시 찾아오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자산입니다.
그렇다면 이 ‘기억’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요? 뇌과학에 따르면, 우리의 뇌가 어떤 사건을 중요하게 인식하고 장기기억으로 저장할 때는 처리해야 할 정보의 양과 감각의 다채로움이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즉, 단지 혀끝의 미각 하나에만 의존하는 식사는 쉽게 잊히지만, 시각, 청각, 후각, 촉각까지 모든 감각이 총동원된 입체적인 식사는 뇌리에 훨씬 더 깊고 선명한 흔적을 남긴다는 뜻입니다. 이제 레스토랑 경영자는 셰프를 넘어, 고객의 뇌에 행복한 기억을 조각하는 ‘메모리 아키텍트(Memory Architect)’, 즉 기억 설계자가 되어야 합니다.
오감의 연주가 얼마나 중요한지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역설적이게도 가장 중요한 감각 하나를 완전히 차단해버리는 것입니다.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성업 중인 '느와르: 다이닝 인 더 다크(Noir. Dining in the Dark)' 같은 블라인드 다이닝 레스토랑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이곳에 들어서면 고객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완벽한 어둠 속에서 식사를 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당혹감과 불안감이 밀려오지만, 이내 놀라운 변화가 시작됩니다. 시각이라는 절대 군주가 퇴장하자, 그동안 억눌려왔던 후각, 청각, 촉각, 미각이라는 네 명의 신하가 비로소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겁니다. 코끝을 스치는 음식의 향이 평소보다 훨씬 강렬하게 느껴지고, 포크가 접시에 부딪히는 소리, 옆 사람의 숨소리까지 생생하게 들려옵니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식재료의 질감은 새로운 정보가 되고, 혀는 오직 맛에만 온전히 집중하며 미세한 차이까지 구별해냅니다.
이곳을 경험한 사람들은 음식 맛도 맛이지만, ‘감각이 재발견되는 경이로운 체험’ 그 자체를 잊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시각을 차단함으로써 다른 모든 감각을 강제로 예민하게 만들고, 이를 통해 지극히 평범한 ‘먹는 행위’를 일생일대의 특별한 이벤트로 격상시키는 것. 이것이야말로 감각 설계가 기억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아닐까요?

물론 모든 레스토랑이 불을 끌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중요한 것은 감각을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감각이 하나의 목표, 즉 ‘행복한 경험’이라는 주제를 향해 완벽한 화음을 이루도록 지휘하는 것입니다.
이 분야의 세계적인 거장은 영국의 분자요리 셰프 헤스턴 블루멘탈(Heston Blumenthal)입니다. 그의 레스토랑 ‘팻 덕(The Fat Duck)’의 시그니처 메뉴 중 하나인 ‘바다의 소리(Sound of the Sea)’는 해산물 요리와 함께 조개껍데기 모양의 아이팟을 제공합니다. 고객이 아이팟으로 파도 소리를 들으며 요리를 먹으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훨씬 더 신선하고 짭조름한 바다의 풍미를 느낀다고 합니다. 이는 단순히 감성적인 장치가 아니라, 청각 정보가 미각 정보의 인식을 강화한다는 과학적 원리를 활용한 것입니다.
이런 특별한 사례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미 일상에서 잘 지휘된 감각의 향연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최고급 스테이크하우스를 한번 떠올려 보시죠. 그곳에서의 경험은 한 편의 잘 짜인 공연과 같습니다.
시각: 어두운 조명 아래 반짝이는 와인잔, 짙은 색의 원목 가구와 새하얀 테이블클로스, 그리고 서빙 직전 테이블에 먼저 보여주는 선홍빛 생고기의 압도적인 마블링.
청각: 뜨겁게 달궈진 접시 위에서 ‘치이익’ 하는 소리를 내며 등장하는 스테이크의 소리. 이 소리는 그 자체로 ‘신선함’과 ‘맛’을 보증하는 이 레스토랑의 시그니처 사운드입니다.
후각: 테이블에 스테이크가 놓이는 순간, 고기가 구워지는 고소한 향과 버터의 풍미가 폭발적으로 공간을 채웁니다.
촉각: 묵직한 무게감의 커트러리, 까슬하지만 고급스러운 촉감의 냅킨, 두툼한 가죽 메뉴판.
미각: 그리고 마침내 모든 감각이 쌓아 올린 기대감의 정점에서, 입안에서 터지는 완벽한 맛의 향연.
이처럼 모든 감각이 ‘최고급 스테이크를 경험한다’는 일관된 스토리를 이야기할 때, 고객의 뇌는 이 경험을 지극히 특별하고 중요한 사건으로 인식하고, ‘행복한 기억’의 폴더에 고이 저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리를 우리 레스토랑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거창한 장비나 투자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고객의 감각에 조금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첫째, 당신의 레스토랑은 어떤 ‘향기’로 기억되길 원하십니까? 갓 구운 빵 냄새가 나는 베이커리, 향긋한 커피 원두 향이 가득한 카페처럼, 모든 공간에는 그곳을 대표하는 시그니처 향이 있어야 합니다. 고깃집이라면 역한 연기 냄새가 아니라 식욕을 돋우는 맛있는 고기 냄새가 나도록 환기 시스템에 신경 써야 합니다. 향기는 기억의 가장 강력한 방아쇠라는 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둘째, 어떤 ‘소리’를 들려줄 것입니까? 단순히 배경음악을 트는 것을 넘어 공간의 모든 소리를 디자인해야 합니다. 오픈 키친에서 들려오는 경쾌한 칼질 소리나 재료가 볶아지는 소리는 생동감을 주지만, 설거지통에서 그릇이 부딪히는 소음은 경험의 질을 떨어뜨립니다. 칵테일 바에서 셰이커 흔드는 소리가 경쾌한 배경음이 되듯, 우리 가게의 ‘들을 만한 소리’는 부각하고 ‘소음’은 통제해야 합니다.
셋째, 고객의 ‘손과 몸’은 무엇을 느끼고 있습니까? 5만 원짜리 파스타를 먹는데 냅킨이 힘없이 찢어지는 얇은 휴지라면, 혹은 수저가 너무 가벼워 장난감 같다면 고객은 무의식중에 '가격에 비해 부실하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메뉴판의 재질, 의자의 착석감, 테이블의 질감 등 고객의 피부에 닿는 모든 것들이 브랜드의 품격을 말해줍니다.
마지막으로, ‘음식의 얼굴’은 어떻게 디자인하고 있습니까? "사람은 눈으로 먼저 먹는다"는 말은 과학적으로도 진실입니다. 아름다운 플레이팅은 음식의 맛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키고, 이 기대감은 실제 맛의 경험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또한, 오늘날에는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가’가 곧 최고의 구전 마케팅이라는 사실도 기억해야 합니다.
음식은 먹으면 사라지지만, 그 음식을 둘러싼 행복한 기억은 평생 갑니다. 고객이 우리 레스토랑에서 보낸 시간이 단순한 한 끼 식사가 아니라, 훗날 문득 떠올렸을 때 미소 짓게 되는 하나의 아름다운 장면으로 기억되기를 원한다면, 이제 맛의 영역을 넘어 오감의 영역으로 우리의 시야를 넓혀야 합니다. 고객의 뇌리에 잊히지 않을 행복의 순간을 각인시키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레스토랑이 추구해야 할 가장 위대한 예술이 아닐까요?
레스토랑의 경영과 마케팅을 연구하고 희망을 스토리텔링합니다.
골목길 컨설턴트: ikjunj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