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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니스 다이닝과 시간: 몸의 편안함이 선사하는 ‘느릿하고 안정된 시간’의 가치
  • 진익준 논설위원
  • 등록 2025-10-19 08:46:41
  • 수정 2025-10-19 08:4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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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외식정보=진익준 논설위원]



여러분, 혹시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이라는 말의 현대적 버전을 아십니까? 저는 ‘몸이 천 냥이면 마음이 구백 냥’이라고 감히 바꿔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정작 우리의 몸과 마음이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그리고 그 상태가 우리의 모든 경험을 어떻게 지배하는지에 대해서는 종종 잊고 삽니다. 특히 ‘시간’이라는 경험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최근 저에게 큰 영감을 준 한 뇌과학 영상은 이 관계를 명확히 짚어주었습니다. 우리가 몸을 건강하게 잘 돌봐 스트레스가 줄고 몸이 편안해지면, 우리의 뇌는 그 안정된 느낌을 ‘느릿하고 충만한 시간’ 속에서 천천히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정말이지 통찰력 있는 분석 아닙니까? 속이 더부룩하고 몸이 찌뿌둥한 날에는 1시간짜리 회의가 지옥처럼 길게 느껴지지만,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반나절의 등산도 짧게 느껴지는 우리의 일상적 경험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저는 오늘, 이 원리가 레스토랑 산업의 미래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지금까지의 외식 산업이 더 강렬한 맛, 더 화려한 볼거리로 고객의 뇌를 ‘흥분’시키는 데 집중해왔다면, 이제는 고객의 몸을 ‘편안’하게 함으로써 마음의 평화와 느린 시간의 가치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바로 ‘웰니스 다이닝(Wellness Dining)’이라는 거대한 물결입니다. 이는 단순히 건강식을 파는 것을 넘어, 고객에게 ‘진정한 휴식의 시간’을 파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작입니다.



내 몸이 곧 나의 시계다: 시간 경험의 새로운 관점


우리의 뇌는 두개골 안에 고립된 사령탑이 아닙니다. 뇌는 ‘내수용 감각’이라는 거대한 정보망을 통해 위장, 심장, 근육 등 온몸에서 보내오는 신호를 24시간 내내 수신합니다. 소화가 안되고 속이 불편하면 뇌에 ‘경고’ 신호가 가고, 몸이 가뿐하고 편안하면 ‘이상 없음’이라는 평화의 신호가 갑니다. 그리고 이 신호들은 우리의 기분과 시간 인식을 직접적으로 조종합니다.


자극적인 음식으로 과식한 후를 떠올려 보십시오. 몸은 음식을 소화시키기 위해 비상사태에 돌입하고, 우리는 나른함과 불쾌감을 느낍니다. 이런 상태에서 시간은 긍정적으로 흐를 리 만무합니다. 반면, 신선하고 건강한 재료로 만든 음식을 적당히 먹었을 때는 어떤가요? 몸이 가벼워지고 마음까지 상쾌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이런 ‘몸의 평화’ 상태에서 우리의 뇌는 비로소 시간을 느긋하고 충만하게 받아들일 준비를 마치는 것입니다.


따라서 고객에게 최고의 시간 경험을 선물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화려한 인테리어나 현란한 플레이팅 이전에 고객의 ‘몸’을 먼저 돌보는 것입니다. 단기적인 혀끝의 쾌락을 넘어, 식사를 마친 후에도 지속되는 장기적인 심신의 편안함을 제공하는 것. 이것이 바로 웰니스 다이닝의 핵심 철학입니다.



근본으로 돌아가다: “이 음식, 어디서 왔나요?”


웰니스 다이닝의 가장 대표적인 형태는 ‘팜투테이블(Farm-to-Table)’ 운동입니다. 이는 단순히 ‘산지 직송’을 내세우는 마케팅을 넘어, 음식의 근원에 대한 투명한 공개를 통해 고객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려는 노력입니다.


이 철학의 정점에 있는 곳으로 미국 뉴욕의 ‘블루힐 앳 스톤 반스(Blue Hill at Stone Barns)’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이곳은 레스토랑이 실제 운영되는 농장 안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메뉴판도 따로 없습니다. 그날 농장에서 수확한 가장 신선한 식재료가 그날의 메뉴를 결정합니다. 고객들은 식사 전에 농장을 둘러보며 방금 먹게 될 채소가 자라는 밭을 직접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험은 고객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내가 먹는 음식이 어떤 환경에서, 누구의 손에 의해, 어떻게 길러졌는지 알게 되는 순간, 우리는 공장식 축산이나 공업형 농업 시스템에 대해 막연히 가지고 있던 불안감에서 해방됩니다. ‘믿을 수 있는 안전한 음식’이라는 확신은 그 자체로 강력한 심리적 웰니스입니다. 이렇게 마음이 편안해지니, 몸도 이완되고, 고객은 비로소 눈앞의 음식과 풍경을 온전히, 그리고 아주 천천히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고요한 혁명: 비움으로써 채우는 미학


이러한 흐름은 국내에서도 매우 의미 있는 형태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전통 속에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웰니스 다이닝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사찰음식’입니다.


마늘, 파, 부추 등 오신채를 쓰지 않아 자극적이지 않고, 제철 식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사찰음식은 그야말로 ‘몸을 편안하게 하는 음식’의 정수입니다. 미슐랭 스타를 받기도 한 ‘발우공양’과 같은 곳은 단순히 음식을 파는 공간을 넘어, 명상적인 경험을 제공합니다. 고요하고 정갈한 공간, 모든 음식에 담긴 이야기, 그리고 음식을 남기지 않는 발우공양의 정신까지.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고객을 과잉 자극의 세계에서 벗어나 자신의 몸과 마음에 집중하는 ‘느리고 안정된 시간’으로 인도합니다.


최근의 비건 및 채식 레스토랑의 진화도 주목할 만합니다. 과거의 채식이 소수의 신념이었다면, 이제는 건강과 환경, 지속가능성을 생각하는 라이프스타일의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풀무원이 운영하는 ‘포레스트 키친’처럼, 이제 비건 다이닝은 맛과 멋, 그리고 윤리적 만족감까지 모두 충족시키는 세련된 문화가 되었습니다. 이런 곳에서 식사를 하는 고객은 단순히 건강한 음식을 먹는 것을 넘어, 자신의 가치와 신념에 부합하는 소비를 했다는 심리적 만족감을 얻습니다. 이러한 긍정적인 감정이야말로 웰니스 경험의 중요한 일부입니다.



접시 너머의 웰니스: 공간이 주는 치유


진정한 웰니스 다이닝은 접시 위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공간 전체가 고객의 심신을 편안하게 만드는 ‘치유의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최근 고급 리조트나 레스토랑에서 유행하는 ‘바이오필릭(Biophilic) 디자인’이 좋은 예입니다. 이는 햇빛이 잘 드는 통창, 곳곳에 놓인 살아있는 식물, 나무나 돌 같은 자연 소재의 마감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실내에서도 자연과 연결된 듯한 느낌을 주는 디자인 방식입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연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도록 설계되었기에, 이런 공간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 호르몬이 감소하고 심박수가 안정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시끄러운 음악, 눈부신 조명, 옆 사람과 부딪힐 만큼 좁은 테이블 간격 등 고객을 불편하게 하는 모든 요소를 ‘비워내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웰니스 공간은 자극을 더하는 곳이 아니라, 불필요한 자극을 덜어내는 곳이어야 합니다. 고객이 외부 세계의 소음과 단절된 채, 오롯이 자신과 음식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고요한 성역을 만들어주는 것. 그것이 공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역할입니다.



최고의 럭셔리는 ‘몸과 마음이 편안한 것’


지난 수십 년간 외식 산업은 더 자극적인 맛, 더 화려한 볼거리를 향한 경쟁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경쟁의 축이 바뀌고 있습니다. 과잉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진정한 ‘럭셔리’란 넘치는 무엇이 아니라, 오히려 비워내고 편안해지는 경험일지도 모릅니다.


웰니스 다이닝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듭니다. 고객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을 평온하게 함으로써, 뇌가 시간을 가장 긍정적으로, 즉 ‘느리고 안정되며 충만하게’ 인식할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줍니다.


결국, 최고의 레스토랑은 고객의 몸과 마음이 보내는 작은 신호까지도 헤아리는 곳입니다. 단순히 혀를 즐겁게 하는 것을 넘어, 식사를 마친 고객이 ‘아, 정말 잘 쉬었다’라고 느끼게 만드는 곳. 지친 현대 사회에서 이보다 더 큰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미래의 가장 위대한 셰프는 칼을 쓰는 요리사가 아니라, 고객에게 진정한 ‘쉼’이라는 시간을 선물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레스토랑의 경영과 마케팅을 연구하고 희망을 스토리텔링합니다.
골목길 컨설턴트: ikjunj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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