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혁의 폭탄선언에 강의실의 공기는 얼어붙었다.
‘한식조리기능사 반 폐지’.
그것은 학원의 가장 큰 기둥이자, 유일한 수입원을 뽑아버리겠다는 말과 같았다. 수강생들은 술렁였고, 강사들은 당혹감에 휩싸였다.
“원장님!”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박 실장이 강혁의 팔을 잡아끌며 원장실로 향했다. 그녀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쾅!
원장실 문이 닫히자마자 박 실장이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
“대체 무슨 생각이세요! 자격증반이 없으면 우린 다음 달 임대료도 못 내요! 다 같이 길바닥에 나앉을 작정이세요?”
10년 후, 폐업 통지서를 함께 붙들고 눈물 흘렸던 그녀였다. 박 실장의 절박한 외침은 과거 강혁이 들었던 비명과 똑같았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그의 심장은 이상할 정도로 차분했다.
“실장님. 악보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네? 악보라니요? 지금 농담할 때가….”
“악보는 그냥 콩나물 대가리들의 나열일 뿐입니다.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감동도 없죠.”
강혁은 창밖의 수강생들을 가리켰다. “우리는 지금까지 저들에게 죽어있는 악보, 즉 ‘레시피’를 팔았습니다. 정해진 순서대로 썰고, 정해진 양념을 넣어서, 똑같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기술자. 우리 학원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어요. 그냥 ‘레시피 공장’이었던 겁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서늘한 확신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실장님, 세상이 변했어요. AI가 최고의 악보를 공짜로 그려주고, HMR이 그 악보를 완벽하게 연주해 주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누가 돈 내고 우리한테 와서 낡은 악보 읽는 법을 배우겠어요?”
박 실장은 할 말을 잃었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그래서… 그래서 대안은 있으시고요! 당장 뭘로 돈을 벌 거냐는 말입니다!”
강혁은 기다렸다는 듯 돌아섰다. 그의 눈빛은 더 이상 과거의 무능한 원장이 아니었다. 미래를 보고 온 자의 광기 어린 총기가 번뜩였다.
“이제부터 우리는 ‘음악’을 팔 겁니다.”
“음악이요?”
“네. 레시피라는 뼈대에 철학과 가치, 경험이라는 살을 붙인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음악을요.”
강혁은 원장실 화이트보드에 거침없이 단어들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 1. 건강한 삶 (Self-Care) ]
[ 2. 신념 있는 삶 (Sustainability) ]
[ 3. 풍요로운 삶 (Community) ]
“첫째, ‘스스로를 돌보는 삶’입니다. 단순히 저염식 레시피를 가르치는 게 아니에요. 사찰음식처럼, 음식을 통해 마음을 챙기고 내 몸과 교감하는 ‘경험’을 파는 겁니다. 이름은 ‘마음챙김 쿠킹 클래스’가 좋겠군요.”
“둘째, ‘신념 있는 삶’입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자기가 먹는 걸로 자신을 표현해요. 비건, 제로 웨이스트 같은 거요. ‘못난이 농산물’로 근사한 요리를 만들고, 채소 껍질로 육수를 내는 ‘제로 웨이스트 워크숍’을 여는 겁니다. 이건 단순한 요리가 아니라, 지구를 지키는 ‘가치 소비’ 활동이 되는 거죠.”
박 실장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개념들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가슴이 뛰었다.
“그리고 마지막, 가장 중요한 겁니다.”
강혁이 세 번째 항목에 동그라미를 쳤다.
“셋째, ‘풍요로운 삶’을 파는 겁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사람들은 외로워져요. 함께 모여 즐기고 싶은 욕구는 절대 사라지지 않죠. 우리는 그 ‘판’을 깔아주는 겁니다.”
“판을… 깐다고요?”
“‘돼지고기 김치찌개 맛있게 끓이는 법’ 같은 시시한 수업은 집어치우세요. 대신 이걸 여는 겁니다. ‘금요일 밤의 미식회: 팔도 김치와 우리 돼지, 그리고 막걸리’!”
강혁의 목소리에 열기가 실렸다.
“단순히 찌개를 끓이는 게 아니에요. 전통주 전문가를 초빙해서 각 막걸리의 스토리를 듣고, 김치 명인에게 각 지역 김치의 특징을 배우는 겁니다. 그리고 다 같이 둘러앉아 직접 끓인 찌개와 막걸리를 즐기는 거죠. 이건 수업이 아니라 ‘문화 체험’이고, ‘소셜 다이닝’입니다!”
박 실장은 잠시 그가 그려주는 미래를 상상했다. 학원에 사람들이 모여 웃고 떠들며 음식을 즐기는 모습. 그것은 활기 없던 지금의 자격증반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좋네요.” 그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너무 이상적이에요. 사람들이… 과연 돈을 낼까요? 그런 ‘경험’에 말이에요.”
그것이 핵심이었다.
강혁은 씨익 웃었다. 미래를 아는 자의 여유였다.
“그래서 증명해 보여야죠.”
그는 박 실장에게 다가가 펜을 쥐여주었다.
“지금 당장 준비해 주세요. ‘30% 할인 이벤트’ 전단은 전부 파기하세요.”
“네? 그럼…”
“대신 새 포스터를 붙이는 겁니다.”
강혁의 눈이 번뜩였다.
“[금요일 밤의 미식회] 1회차: 김치, 돼지고기, 그리고 막걸리의 밤. 참가비… 1인 15만 원.”
“15만 원이요?!”
박 실장의 목소리가 찢어질 듯 높아졌다. 3개월 자격증반이 60만 원인데, 고작 하루 저녁 행사에 15만 원이라니. 미쳤다는 말 외에는 설명이 불가능했다.
“네. 15만 원. 그리고 선착순 12명만 받겠습니다.”
강혁은 흔들리는 박 실장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쌌다. 그의 목소리에는 거부할 수 없는 힘이 실려 있었다.
“실장님. 우리는 망해가는 고물상이 될지, 아니면 미래의 라이프스타일을 파는 명품 편집숍이 될지, 그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
“이 첫 번째 이벤트가 그 증거가 될 겁니다. 그러니… 한번만 저를 믿고 붙여주세요.”
박 실장은 한참 동안 강혁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허황되었지만, 이상하게도 빨려 들어가는 눈빛. 실패자의 절망이 아닌, 모든 것을 뒤엎으려는 혁명가의 얼굴이었다.
그녀는 마른침을 삼키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단 한 명이라도 이 미친 가격의 이벤트에 신청하는 사람이 있을까?
강혁의 도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3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