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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마늘 한 접과 생존 이익에 대하여
  • 진익준 작가
  • 등록 2025-10-18 06:42:46
  • 수정 2025-10-19 08: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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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직 데이터 분석가의 폐업 직전 창업 분투기

[글로벌 외식정보=진익준 작가]



다음 날 아침, 나는 잠을 설친 얼굴로 ‘서연이네 반찬’ 앞에 서 있었다. 어제의 충격은 밤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가게가 피를 토하고 있다는 그녀의 말이 환청처럼 맴돌았다.


“뭐야, 아침부터.”


가게 문을 열고 나온 박 사장님은 나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의 손에는 흙이 잔뜩 묻은 마늘 한 접(100개)이 들려 있었다.


“사장님, 어제 하신 말씀… 좀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을까요? 그… 감가… 뭐시기 하는 거요.”


내 절박한 질문에 그녀는 대답 대신 마늘 접을 내 발 앞에 툭 내려놓았다.


“궁금하면 일당 하고 가. 저거 다 까면, 내 ‘경영 비법’이라는 거 알려줄 테니.”


그렇게 나의 기묘한 인턴 생활이 시작되었다. 나는 가게 구석의 작은 목욕탕 의자에 쭈그려 앉아 마늘을 까기 시작했다. 대기업 10년 차 데이터 분석가가, 경기도의 한 반찬 가게에서 마늘을 까고 있는 꼴이라니. 헛웃음이 나왔지만, 지금 나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손끝은 아리고 허리는 끊어질 듯했다. 겨우 마늘 스무 개를 깠을 뿐인데, 박 사장님은 어느새 커다란 솥 두 개에 각각 소고기뭇국과 미역국을 끓여내고 있었다. 그녀의 움직임에는 한 치의 낭비도 없었다. 무를 썰고 남은 자투리는 깍두기를 담글 통에 던져 넣었고, 미역을 불린 물은 국물 맛을 내는 육수로 활용했다. 그녀의 가게 안에서 ‘폐기 손실’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사장님은… 메뉴를 어떻게 정하세요? 데이터 같은 거… 참고 안 하세요?”


내가 묻자 그녀는 어이없다는 듯 나를 돌아봤다.


“데이터? 내 데이터는 저기 창밖에 있어.”


그녀는 턱짓으로 창밖을 가리켰다.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뛰놀고, 유치원 버스가 아이들을 내려주고 있었다.


“어제 놀이터에서 넘어져서 운 꼬맹이 봤지? 그럼 오늘 저녁상엔 십중팔구 그놈 좋아하는 계란말이가 올라가는 거야. 유치원에서 오늘 단체로 소풍 갔다 왔대? 그럼 엄마들은 저녁 하기 피곤할 테니, 데우기만 하면 되는 국이나 찌개가 잘 나가지. 그게 내 데이터야, 사람 사는 거.”


나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내 가게의 POS 단말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화면 속의 차가운 숫자들. 하지만 그녀는 창밖의 살아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고객의 얼굴과 그들의 일상을 읽고 있었다.


마늘을 다 깔 때쯤, 나는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 그녀는 약속대로 땀에 전 내 앞에 앉았다.


“자, 이제 뭘 알려줄까? 당신이 좋아하는 숫자로 이야기해줘야 하나?”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가게의 진짜 이익이라는 거요… 대체 어떻게 계산해야 합니까?”


그녀는 내가 깐 마늘 한 알을 집어 들며 말했다.


“이 마늘 한 알이 얼마일까?”


“글쎄요… 한 접에 만 원쯤 하니, 개당 100원 아닐까요?”


“땡. 틀렸어.”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이 마늘값에는 내가 오늘 새벽 시장까지 차 몰고 간 기름값, 이 마늘을 까는 내 인건비, 마늘 빻는 기계 전기세, 그리고… 10년 뒤에 새로 바꿔야 할 저 칼 값이 전부 녹아 들어가야 하는 거야. 그렇게 계산하면 이 마늘 한 알은 100원이 아니라 300원이 될 수도 있는 거지. 이게 장사야.”


그녀의 말은 단순했지만, 그 안에 담긴 회계 원리는 지독하게 정확했다.


“당신 가게를 예로 들어보자고. 당신, 월세만 내면 가게가 유지될 것 같지? 천만에. 매달 당신 가게 인테리어는 눈에 보이지 않게 낡아가고, 저 비싼 냉장고는 수명이 닳고 있어. 그 돈을 매달 월급봉투에 따로 빼놓지 않으면, 5년 뒤에 인테리어 새로 하고 냉장고 바꿀 돈은 어디서 하늘에서 떨어지나?”


그녀는 냅킨 위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숫자를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1. 사장 월급 (최소 생활비 + 노동 가치) = 350만 원

2. 가게 감가상각비 (미래를 위한 저축) = 월 100만 원 (초기 투자 6천만 원 ÷ 60개월)

3. 비상금 및 재투자 비용 = 월 50만 원


“이걸 다 더해봐. 얼마야?”


“...500만 원이요.”


“그래. 당신 가게는 매달 최소 500만 원의 ‘진짜 이익’을 내야 겨우 ‘생존’하는 거야. 당신이 가져가는 350만 원은 그저 생존을 위한 활동비, 즉 월급일 뿐이고.”


나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월 180만 원을 벌었다고 좌절했던 나는, 사실상 매달 320만 원씩 까먹고 있었던 것이다. 내 가게는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빚을 지고 있었다. 미래의 나에게.


“그럼… 대체 얼마를 팔아야 하는 겁니까?”


내 목소리는 절망으로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박서연 사장님은 냅킨의 남은 공간에 마지막 계산을 써 내려갔다. 그녀의 펜 끝이 내 사업의 생존 가능성을 판결하는 판사의 망치처럼 느껴졌다.


그녀가 툭 던진 냅킨 위에는, 내가 감당해야 할 현실의 무게가 선명한 숫자로 적혀 있었다.

그 숫자를 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나의 전쟁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라는 것을. 그리고 나의 가장 강력한 무기였던 ‘데이터’가, 사실은 가장 큰 약점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5화에서 계속......



레스토랑의 애환을 연구하고 희망을 스토리텔링합니다.
골목길 컨설턴트: ikjunj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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