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외식정보=진익준 작가]

박서연 사장님이 던져준 냅킨 한 장은, 내 사업의 사망선고서나 다름없었다. ‘월 매출 2,100만 원.’ 그 숫자는 내 가게의 차가운 유리문 위에 보이지 않는 주홍글씨처럼 새겨졌다. 나는 매일 그 숫자를 올려다보았다. 그것은 목표가 아니라,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이었다.
데이터 분석가로서의 내 마지막 오기가 발동했다. 나는 싸워보기로 했다. 나의 적은 불경기가 아니었다. 옆 가게 박 사장님도 아니었다. 나의 진짜 적은, 내가 그토록 신봉했던 바로 그 ‘시스템’, 즉 프랜차이즈 본사였다.
나는 최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논리적인 데이터로 무장했다.
“팀장님, 김민준입니다. 지난달 정산 데이터를 기반으로 수익 구조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결과, 현재의 공급가와 권장 판매가로는 BEP(손익분기점) 달성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특히 우리 상권의 구매 패턴을 고려할 때, 고마진 상품군의 재고 부담이…”
“아, 점주님. 잠시만요.”
최 팀장은 내 말을 가볍게 끊었다. 전화기 너머로 타자 소리가 들려왔다.
“네, 김민준 점주님. 데이터 확인했습니다. 지난달 매출 1,480만 원. 신규 가맹점 중에서는 상위 30%에 해당하는 아주 우수한 실적입니다. 뭐가 문제시죠?”
기가 막혔다. 그는 내 가게의 ‘생존’이 아니라, 본사의 보고서에 들어갈 ‘실적’을 보고 있었다.
“실적이 문제가 아닙니다, 팀장님. 제가 가져가는 돈이 180만 원인데, 여기서 감가상각비를 제하면 사실상 매달 300만 원씩 적자를 보고 있는 구조입니다. 공급가를 조금이라도 조정해 주실 순 없겠습니까?”
“점주님.”
최 팀장의 목소리는 이전의 그 친절한 영업사원이 아니었다. 그는 차가운 시스템의 관리자였다.
“모든 가맹점은 동일한 규정과 공급가 정책을 적용받고 있습니다. 특정 매장만 예외를 둘 수는 없는 부분입니다. 본사 방침이라 어쩔 수 없습니다, 점주님. 매출 증대를 위한 프로모션에 더 집중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전화가 끊겼다. 완벽하다고 믿었던 시스템은 나를 지켜주는 울타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나의 손발을 묶고, 빠져나갈 수 없게 만드는 단단한 감옥이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 시스템은 내게 최후의 일격을 날렸다.
단골이 될 뻔했던 젊은 부부가 가게에 들어섰다. 그들은 곧장 ‘프리미엄 트러플 한우 스테이크 키트’ 앞으로 다가갔다. 본사의 강매로 울며 겨자 먹기로 들여놓았던, 내 가게에서 가장 비싼 애물단지였다.
“어, 이거다! 자기가 먹고 싶다던 거.”
아내의 목소리에 나는 희망을 품었다. 저것 하나만 팔면 오늘 저녁은 라면 대신 김밥이라도 먹을 수 있겠지.
남편이 상품을 집어 들고 가격표를 확인했다. 그의 얼굴에 의아한 표정이 스쳤다.
“자기야, 근데 이거… 왜 이렇게 비싸? 오늘부터 길 건너 대형마트에서 이거 반값 세일하는데?”
“네? 반값이요?”
내 심장이 쿵,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네. 오늘 아침에 전단지 왔어요. 창립 기념 특가라고, 45,000원짜리를 29,900원에 팔던데요? 거의 재고 처리 수준이던데… 저희는 마트 가서 사야겠네요.”
부부는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꾸벅 숙이고 가게를 나갔다.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본사는 나에게 4만 5천 원에 팔라고 ‘의무적으로’ 공급한 상품을, 대형마트에는 2만 9천9백 원에 팔 수 있도록 더 싼 가격에, 그것도 대량으로 넘긴 것이다. 나는 그들의 화려한 프로모션을 위한 ‘들러리’이자, 재고를 떠안아 줄 ‘호구’에 불과했다.
나는 비틀거리며 가게 밖으로 나갔다. 마치 꿈인 것처럼, 길 건너 대형마트 입구에는 내 가게의 주력 상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전국 최저가!’라는 붉은색 현수막이 사형 집행인의 칼날처럼 번뜩였다.
그 순간,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길 수 없는 싸움에 뛰어들었다. 개인의 성실함이나 데이터 분석 능력 따위는 거대한 자본과 시스템의 폭력 앞에서 아무런 힘도 되지 못했다.
가게로 돌아온 나는 멍하니 냉장고를 바라보았다. 형형색색의 포장지에 담긴 밀키트들이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넌 실패했어. 넌 시스템의 부품일 뿐이야.’ 그들의 차가운 속삭임이 윙윙거리는 냉장고 소음을 뚫고 들려왔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이것은 사업이 아니었다. 이것은 희망 고문이었다.
나는 창고에서 A4 용지 한 장과 펜을 꺼냈다. 며칠 전 박 사장님이 냅킨에 적어주었던 그 숫자들 위로, 나는 새로운 글씨를 꾹꾹 눌러썼다. 내 청춘과 퇴직금, 그리고 1년간의 꿈을 마감하는, 짧고도 서글픈 문장이었다.
[점포 임대 문의]
나는 그 종이를 투명 테이프로 유리문에 붙였다. 안에서 밖으로. 더 이상 이 가게에 미련을 두지 않겠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처럼.
이제 마지막 인사를 할 차례였다.
나는 옆 가게, ‘서연이네 반찬’의 낡은 문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나의 패배를, 나의 항복을 알리기 위해.
레스토랑의 애환을 연구하고 희망을 스토리텔링합니다.
골목길 컨설턴트: ikjunj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