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먼저, 나는 샐러드바 구석에 먼지만 쌓여가던 전기 밥솥 두 개를 가장 잘 보이는 중앙으로 옮겼다. 그리고 그 옆에 ‘볶음밥 연구소’라는 작은 팻말을 세웠다. 김치, 다진 채소, 날달걀, 김가루, 참기름, 그리고 내가 비장의 무기로 개발한 매콤한 특제 고추장 소스까지. 고기를 먹고 난 후 손님들이 직접 자신만의 볶음밥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두끼떡볶이’에서 훔쳐온, ‘놀이터’라는 개념의 첫 번째 실험이었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특히 젊은 손님들은 환호했다. 그들은 마치 요리 경연 대회라도 참가한 것처럼 저마다의 방식으로 볶음밥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트 모양으로 볶음밥을 만들고 그 위에 날달걀을 깨뜨려 올리는 커플, 남은 고기와 파채를 잘게 썰어 넣어 ‘고기기름 파채 볶음밥’이라는 새로운 메뉴를 창조하는 대학생들. 그들의 테이블에서는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웃음과 활기가 넘쳐흘렀다. 그리고 그들의 SNS에는 어김없이 ‘#고기연구소볶음밥레시피’ 같은 해시태그가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소스 코너에는 ‘나만의 소스 연구소’라는 팻말을 붙이고, 쌈장과 기름장뿐이던 단출한 구성에 칠리소스, 데리야키 소스, 고소한 콩가루, 심지어 매운맛을 좋아하는 이들을 위한 베트남 고추까지 추가했다. 손님들은 고기를 구우면서 동시에 어떤 소스를 조합할지 진지하게 토론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더 이상 수동적인 식사가 아니었다. 손님들이 직접 참여하고 창조하는, 능동적인 미식의 경험이었다.
가격은 1인분에 천 원을 올렸다. 하지만 놀랍게도, 가격 인상에 대한 불만은 거의 들려오지 않았다. 손님들은 천 원을 더 내는 대신, ‘볶음밥과 소스를 내 마음대로 만들어 먹는 재미’라는 새로운 가치를 얻어갔기 때문이다. 매출은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가게를 운영하는 나의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나는 더 이상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노동자가 아니었다. 나는 손님들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제공하는, 작지만 창의적인 ‘놀이터 설계자’였다.
유진의 심야식당을 찾아가 자랑스럽게 성과를 보고했다. 그녀는 드물게 희미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이제 겨우 첫걸음을 뗐군요. 독의 가장 큰 구멍 하나를 막았습니다. 하지만 명심하세요. 진짜 괴물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불길한 예언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현실이 되었다.
그날은 평소처럼 분주한 저녁 시간이었다. 가게 건너편, 몇 달째 비어있던 150평짜리 거대한 상가 건물에 내걸린 대형 현수막을 보기 전까지는.
[프리미엄 샤브샤브 & 샐러드바 ‘샤브의 정원’ GRAND OPEN! 10월 20일]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샤브의 정원’. 외식업계의 공룡, HS푸드에서 야심 차게 론칭한 프리미엄 뷔페 브랜드였다. TV 광고에서 본 적이 있었다.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수십 가지의 샐러드바 메뉴, 신선한 소고기와 해산물을 무한으로 제공하는, 그야말로 무한리필의 ‘끝판왕’ 같은 곳이었다. 그런데 그 괴물이, 하필이면 내 가게 바로 건너편에 상륙한 것이다.
오픈 당일, 나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샤브의 정원’ 앞은 오픈 전부터 긴 줄이 늘어서 있었고, 화려한 개업 화환과 축하 풍선이 거리를 축제 분위기로 만들었다. 내 가게는 마치 그 화려한 잔칫집 옆에 붙은 초라한 초가집처럼 느껴졌다.
그날 저녁, 내 가게의 테이블은 절반도 채워지지 않았다. 어제까지 ‘볶음밥 연구소’를 보며 환호하던 젊은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그들은 모두 길 건너의 새롭고 화려한 놀이터로 달려간 것이 분명했다. 나는 참담한 심정으로 ‘샤브의 정원’에 직접 들어가 보기로 했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나는 압도당했다. 5성급 호텔 라운지를 연상시키는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은은한 조명, 클래식 음악. 내 가게의 시끄럽고 정신없는 분위기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거대한 샐러드바가 섬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신선한 채소와 과일은 기본, 셰프가 즉석에서 만들어주는 파스타와 초밥, 칠리새우와 탕수육 같은 중식 요리, 갓 튀겨낸 치킨과 피자,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초콜릿 분수와 케이크까지. 마치 세상의 모든 맛있는 음식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듯했다.
나는 샤브샤브 코너에서 소고기를 받아 들고 자리에 앉았다. 고기의 질은 내가 쓰는 것보다 월등히 좋아 보였다. 가격은 1인분에 2만 9천9백 원. 내 가게보다 만 원 이상 비쌌지만, 제공되는 가치를 생각하면 오히려 저렴하게 느껴졌다.
이것이 유진이 말했던 세 번째 유형, ‘뷔페/샐러드바 결합형’의 위엄이었다. 이 모델은 ‘DIY 체험형’의 장점인 ‘선택의 즐거움’을 가지면서, 동시에 ‘단일 품목 전문형’의 단점인 ‘메뉴의 한계’를 완벽하게 극복하고 있었다. 그들은 거대한 자본과 시스템을 무기로, 고객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한 공간에서 해결해 주었다. 내가 낑낑대며 만든 ‘볶음밥 연구소’는, 저 거대한 미식의 제국 앞에서는 아이들의 소꿉장난처럼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곳에서 식사를 하는 내내, 나는 깊은 패배감에 휩싸였다. 이건 애초에 싸움이 되지 않는 게임이었다. 나는 구멍가게 주인이고, 저들은 거대한 백화점이었다. 나는 권총 한 자루를 들고 있는데, 저들은 탱크를 몰고 온 격이었다.
그날 밤, 나는 텅 빈 가게에 홀로 앉아 있었다. 테이블은 고작 세 개가 찼을 뿐이다. ‘볶음밥 연구소’ 팻말이 유난히 쓸쓸해 보였다. 나는 유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가 형편없이 떨려 나왔다.
“봤습니다. 길 건너… 그 가게.”
수화기 너머로 유진의 침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아시겠습니까? 진짜 괴물이 뭔지.”
“저는…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합죠? 이건 이길 수가 없는 싸움입니다. 저 사람들은 제가 가진 모든 것을, 저보다 훨씬 더 크고 화려하게 가지고 있어요.”
내 울먹이는 목소리에, 유진은 잠시 침묵했다. 이윽고, 그녀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단호하게 흘러나왔다.
“사장님. 싸움의 규칙을 잘못 이해하고 계십니다.”
“네?”
“당신은 저 탱크를 상대로 정면 대결을 하려는 어리석은 보병이 아닙니다. 당신은 좁은 골목길에 숨어, 저 거대한 탱크가 미처 보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노려야 하는 게릴라입니다. 저들이 가진 모든 것을 당신이 가질 필요는 없어요. 오히려, 저들이 절대로 가질 수 없는, 당신만의 무기 하나를 날카롭게 벼려야 할 때입니다.”
그녀의 말은 알쏭달했다. 내가 가진 무기? 저 거대한 자본 앞에서 내게 남은 무기가 대체 뭐가 있단 말인가.
“지금부터 당신의 세 번째 미션입니다. 당신 가게의 ‘땅’을 다시 읽으세요. 당신이 서 있는 이 동네, 이 골목, 그리고 당신 가게를 찾는 사람들을 처음부터 다시 분석하십시오. 백화점은 모든 고객을 만족시켜야 하지만, 구멍가게는 단 한 명의 마음만 사로잡아도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당신이 사로잡아야 할 그 한 명은 누구입지, 그 답을 찾아오세요.”
전화가 끊겼다. 나는 창밖으로 화려한 불빛을 뿜어내는 ‘샤브의 정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어둠 속에 잠긴 우리 동네의 평범한 골목길을 바라보았다. 나의 땅. 내가 사로잡아야 할 단 한 명의 고객. 그 해답은 저 거대한 괴물이 아닌,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초라한 현실 속에 숨어 있을지도 몰랐다.
7화에서 계속......
레스토랑의 경영과 마케팅을 연구하고 희망을 스토리텔링합니다.
골목길 컨설턴트: ikjunj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