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쯔읍..."
이태웅은 젖은 행주로 빈 테이블을 닦는 척하며 입맛을 다셨다. 완벽했다. 혀끝에 감기는 감칠맛,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묵직한 바디감, 그리고 마지막에 옅게 남는 인삼의 잔향까지.
12시간을 꼬박 우려낸 '송정옥'의 사골 육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3대째, 60년을 이어온 이 '맛'은 할아버지가, 그리고 아버지가 그랬듯, 오늘도 완벽했다.
"..."
하지만 완벽한 것은 '맛'뿐이었다.
저녁 7시. 한창 손님들로 북적여야 할 가게 홀에는, 구석 자리에서 홀로 국밥을 비우는 중년 사내와, 그보다 더 큰 소리로 오늘의 뉴스를 떠드는 낡은 TV 소리뿐이었다.
'치익-'하고 끓어오르는 뚝배기 소리 대신, 11월의 차가운 밤공기가 낡은 나무 문틈으로 스며들어 홀의 온기를 야금야금 갉아먹었다.
이태웅은 또 한 번, 이미 깨끗한 4번 테이블을 닦았다. 이 지독한 정적 속에서 무언가라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다. 그의 나이 서른넷. '맛' 하나만 믿고 대기업을 그만둔 지 3년. '송정옥'의 3대 사장이 된 그는, 할아버지의 유언을 신처럼 받들었다.
"태웅아, 장사는 '맛'이다. 맛만 변하지 않으면 손님은 배신하지 않아."
그랬다. 맛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3년 전보다 더 좋아졌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손님들은 '송정옥'을 배신했다.
그때였다.
'딸랑-'
오랜만에 듣는 정겨운 풍경 소리와 함께 낡은 문이 열렸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커플이었다. 이태웅의 심장이 반사적으로 뛰었다.
"어서 오..."
"어?"
여자가 먼저 걸음을 멈췄다. 남자가 그녀의 어깨너머로 가게 안을 훑어봤다. 그들의 시선은 홀로 앉은 중년 사내와, 텅 빈 테이블들, 그리고 벽에 붙은 빛바랜 메뉴판 사이를 불안하게 오갔다.
"..."
남자와 여자는 문간에서 잠시 망설였다. 그 3초가 30분처럼 길게 느껴졌다. 여자가 남자의 팔을 살짝 끌었다.
"...그냥, 저기 갈까? 아까 오다가 본 파스타집."
"아... 그럴까."
'딸랑-'
문이 닫혔다. 차가운 공기만 덩그러니 남았다.
이태웅은 손에 쥔 행주를 구겨질 듯 움켜쥐었다. 또다시 찾아온 '맛의 배신'이었다.
아니, 이건 배신이 아니었다. 그들은 '맛'을 보기도 전에 떠났다.
"대체 왜!"
그는 참지 못하고 주방으로 가 국자를 들었다. 방금 끓인 육수를 한 모금 입에 넣었다.
"..."
젠장.
너무나도, 완벽하게 맛있었다.
맛은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 맛은 완벽했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어떻게 잘못된 것인가.
그는 텅 빈 홀을 바라봤다. 자신의 절망이 비치는, 입구 유리문의 희미한 금(Crack)을 바라봤다. '맛'밖에 모르는 그의 눈에는, 그 '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2화에서 계속.....
'맛'은 외식업의 '기본'이지 '전략'이 아니다.
고객은 '맛'을 보기 전에 '경험'을 먼저 심판한다.
'송정옥'의 사장은 자신의 '맛'이 배신당했다고 생각하지만, 틀렸다.
고객은 '맛'을 배신한 적이 없다.
애초에 '맛'을 경험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 뿐이다.
고객의 발길을 돌린 것은 '맛'의 부재가 아니라,
'맛없을 것 같다'고 속삭이는 수많은 '부정적 증거(Negative Cues)'들이다.
차가운 온도, 텅 빈 홀(사회적 부정 증거), 낡고 어두운 파사드(물리적 부정 증거).
'맛'이 아무리 훌륭해도, 이 '증거'들을 이기지 못하면 고객은 문을 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