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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의 운명을 바꾸는 단 하나의 질문: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 진익준 논설위원
  • 등록 2025-09-15 09:13:11
  • 수정 2025-09-15 09: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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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로컬'인가? 스타벅스를 이기는 동네 카페의 비밀
  • 공간, 이야기를 담는 그릇
  • 인스타그램 시대, 공간은 최고의 마케터다

[글로벌 외식정보=진익준 논설위원]


동네마다 스타벅스가 있고, 골목마다 프랜차이즈 치킨집이 번성하는 시대입니다. 소비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선택지 앞에서 때론 피로감을 느낍니다. "오늘 뭐 먹지?"라는 질문은 이제 설렘이 아니라 고역이 되어버렸죠. 이런 무한경쟁의 시장에서 우리 식당은 손님들에게 어떤 존재로 기억되고 있을까요? 혹시 그저 수많은 선택지 중 하나, '맛은 있지만 딱히 다시 갈 이유는 없는 곳'으로 잊혀 가고 있지는 않으신지요.


오늘 저는 조금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고자 합니다.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것을 넘어, 우리 가게만의 '이야기'를 어떻게 만들고, 그 이야기를 어떻게 공간에 담아낼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조금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질문에 대한 답 속에 바로 '로코노미(Loconomy)'라 불리는 거대한 흐름에 올라타, 작지만 강한 식당을 만드는 비결이 숨어있습니다.



왜 '로컬'인가? 스타벅스를 이기는 동네 카페의 비밀


언제부턴가 우리는 '힙스터'들이 서울 연남동이나 성수동이 아닌, 강원도 양양이나 제주의 작은 마을로 향하는 현상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왜 익숙한 편안함을 버리고 낯선 곳의 불편함을 감수할까요? 답은 '대체 불가능한 경험'에 있습니다. 바로 그 지역(Local)만이 줄 수 있는 고유한 가치와 이야기에 열광하는 것이죠. 이를 경제용어로 '로코노미', 즉 로컬(Local)과 이코노미(Economy)의 합성어라 부릅니다.


이는 단순히 지역 특산물을 쓴다는 차원을 넘어섭니다. 일본의 저명한 디자이너 하라 켄야는 "지역의 고유문화는 세계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중요한 자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이제 로컬은 변방이 아닌 새로운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국내 사례를 볼까요? 강릉 초당 순두부 마을을 생각해 보시죠. 그곳의 식당들은 단순히 '순두부'라는 메뉴를 파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짭짤한 동해의 바닷물로 간수를 대신했던 할머니의 지혜, 콩을 맷돌에 갈던 고된 노동의 역사,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지켜온 마을 공동체의 이야기가 순두부 한 그릇에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소비자들은 그 이야기를 먹기 위해 강릉까지 기꺼이 찾아가는 것입니다. 음식의 맛을 넘어 그 안에 담긴 시간과 정신을 소비하는 것이죠.


이는 해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웨덴의 전설적인 레스토랑 '파비켄(Fäviken)'을 아시는지요. 폐업 전까지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꼽히던 이곳은 스톡홀름에서 비행기와 차로 몇 시간을 더 들어가야 하는 혹한의 외딴 지역에 있었습니다. 셰프 매그너스 닐슨은 반경 수십 킬로미터 내에서 나는 식재료로만 요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사슴의 피로 만든 푸딩, 이끼와 버섯, 직접 채집한 허브 등 그의 요리는 그 자체로 스웨덴 북부의 혹독한 자연을 담은 한 편의 서사시였습니다. 사람들은 그 장엄한 이야기를 맛보기 위해 1년 넘게 예약 대기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파비켄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식당은 당신이 자리한 그 땅의 이야기를 얼마나 담아내고 있느냐고 말입니다.


공간, 이야기를 담는 그릇


자, 우리 가게만의 로컬 스토리를 찾았다고 칩시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그 이야기를 고객이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공간'에 펼쳐내야 합니다. 음식점은 더 이상 음식을 먹는 장소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브랜드의 철학과 스토리를 체험하는 '무대'가 되어야 합니다.


제주맥주 양조장은 탁월한 예시입니다. 그들은 단순히 '제주도 물로 만든 맥주'를 파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양조장 투어 프로그램을 통해 방문객들에게 제주도의 깨끗한 화산 암반수와 보리가 어떻게 맥주가 되는지를 직접 보여주고, 제주의 바람을 맞으며 맥주를 시음하게 합니다. 공간 전체가 '청정 제주'라는 브랜딩 메시지를 온몸으로 설파하는 거대한 스토리텔링 장치인 셈입니다. 고객은 맥주 한 잔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제주'라는 경험을 통째로 들이켜는 것입니다.


춘천의 '감자밭' 카페는 어떻습니까? 감자라는, 어찌 보면 가장 흔하고 촌스러운 식재료를 '힙'한 아이콘으로 재탄생시켰습니다. 밭을 연상시키는 너른 마당, 감자 캐릭터를 활용한 굿즈, 감자 모양을 쏙 빼닮은 빵. 이 모든 공간적 요소들이 "우리는 강원도 감자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합니다"라는 브랜드의 이야기를 일관되게 전달합니다. 고객들은 단순히 빵을 사러 가는 것이 아니라, '감자'라는 소재로 펼쳐지는 유쾌한 연극에 참여하기 위해 그곳을 찾습니다. 이것이 바로 공간 스토리텔링의 힘입니다.


인스타그램 시대, 공간은 최고의 마케터다


"사진 한 장만 찍을게요." 요즘 식당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말 아닐까요? 바야흐로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의 시대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를 보여주기식 문화라며 폄하하지만, 저는 조금 다르게 봅니다. 잘 디자인된 '인스타그래셔블' 공간은, 돈 한 푼 안 들이고 우리 가게를 홍보해 주는 가장 강력한 마케팅 도구입니다.


중요한 것은 '무작정 예쁘게'가 아닙니다. 우리 가게의 '로컬 스토리'와 연결된 시각적 장치를 만들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부산 영도의 오래된 공장을 개조한 카페라면, 녹슨 철문이나 낡은 기계 부품을 그대로 살려 포토존을 만드는 겁니다. 이는 단순히 독특한 배경을 넘어, '영도의 산업 유산을 존중한다'는 카페의 철학을 보여주는 상징이 됩니다.


전남 담양의 한 식당은 지역 대나무 장인과 협업하여 만든 조명과 식기를 사용합니다. 손님들은 그 독특한 아름다움에 반해 사진을 찍고, 자연스럽게 해시태그에 #담양 #대나무장인 을 추가합니다. 이 사진 한 장이 단순한 음식 사진을 넘어, 담양의 문화와 장인정신을 알리는 콘텐츠가 되는 순간입니다. 이렇게 고객의 자발적인 SNS 공유는 우리 가게의 이야기를 실어 나르는 수만 명의 마케터 군단을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네온사인 하나를 달더라도, 그 지역 사투리를 위트 있게 담아보는 건 어떨까요? "밥 먹고 가시'소'(牛)" 같은 문구는 유머와 로컬리티를 동시에 잡는 영리한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당신의 무기다


글을 맺으려 합니다. 대한민국 외식 시장은 이제 맛의 상향평준화를 넘어, '가치'와 '경험'의 경쟁으로 접어들었습니다. 결국 '사장님만의 것', 즉 '진정성' 있는 스토리가 있어야 합니다. 그 진정성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바로 당신이 발 딛고 서 있는 이 땅, 이 동네의 이야기 속에 있습니다.


우리 동네 할머니에게만 전수되는 비밀 장 레시피, 우리 지역에서만 나는 희귀한 나물, 혹은 가게가 위치한 골목의 잊혀진 역사. 그 모든 것이 당신의 식당을 특별하게 만들어 줄 원석입니다. 그 원석을 캐내고, 다듬어서 음식과 공간에 담아내십시오. 그때 비로소 당신의 식당은 더 이상 수많은 선택지 중 하나가 아닌, 누군가의 목적지가 될 것입니다.


오늘 가게 문을 닫고 조용히 자문해 보시길 바랍니다. "나의 이야기는, 우리 가게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이, 당신의 식당을 위기에서 구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줄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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