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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그릇의 김치찌개를 ‘사건(Event)’으로 만드는 법
  • 진익준 논설위원
  • 등록 2025-09-21 09:36:21
  • 수정 2025-09-25 15:2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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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복되는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작은 의식(Ritual)에 대하여

[글로벌 외식정보=진익준 논설위원]



언제 마지막으로 저녁 식사를 앞두고 진심으로 ‘설렜는지’ 기억하십니까? 아마 꽤 많은 분들이 고개를 갸웃거릴 겁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점심, 저녁을 먹습니다. 이 지극히 성실한 반복 속에서 식사는 어느덧 ‘설레는 사건’이 아니라 ‘처리해야 할 과업’이 되어버렸습니다. 생존을 위해 연료를 주입하는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죠. 그래서 우리는 배달앱을 켜고 ‘어제 먹은 것만 빼고’를 중얼거리거나, 넷플릭스 콘텐츠를 고르는 데 들이는 시간의 반의반도 저녁 메뉴 선정에 할애하지 않습니다. 일상의 ‘폭정’ 앞에 식사의 즐거움이 무릎을 꿇은 셈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똑같은 행위라도 어떤 것은 지루한 ‘습관’이 되고 어떤 것은 의미 있는 ‘의식(Ritual)’이 됩니다. 매일 아침 믹스커피를 타서 마시는 것은 습관이지만, 원두를 갈고 물을 데워 정성껏 핸드드립 커피를 내리는 것은 의식에 가깝습니다. 전자는 카페인을 섭취하기 위한 ‘과업’이고, 후자는 커피를 즐기는 ‘사건’이죠.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바로 ‘의미를 부여하는 연출’의 유무입니다.


저는 이것이 비단 식사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반복되는 일상에 의도적으로 ‘의식’이라는 쉼표를 찍을 때, 비로소 삶은 권태의 늪에서 벗어나 의미의 강으로 흘러갈 수 있습니다. 이 거창한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또다시 우리들의 소울푸드, 김치찌개 한 그릇을 법정 증인으로 소환해 보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평범한 찌개 한 그릇을 먹는 행위를, 우리 삶의 기억할 만한 ‘사건’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의식의 재발견: 의미를 부여하는 작은 몸짓


‘의식’이라고 해서 거창한 제사나 종교의례를 떠올릴 필요는 없습니다. 본질적으로 의식은 ‘어떤 행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로 한 사회적 혹은 개인적 약속’입니다. 아주 사소한 행위도 이 약속을 통해 강력한 힘을 갖게 되죠.


일본인들이 식사 전에 합장을 하며 “이타다키마스(いただきます, 잘 먹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이는 단순히 “이제 먹는다”는 신호가 아닙니다. 그 짧은 순간에 그들은 음식의 재료가 된 동식물의 생명, 땀 흘린 농부와 어부, 그리고 이 음식을 만들어준 모든 사람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이 작은 의식을 통해 음식은 단순한 물질에서 ‘나를 살리는 세상과의 연결고리’로 격상됩니다. 식사가 하나의 경건한 사건으로 시작되는 것이죠.


이탈리아의 ‘아페리티보(Aperitivo)’ 문화는 또 어떻습니까. 저녁 식사 전에 가벼운 술과 안주를 즐기는 이 시간은 그냥 ‘낮술’이 아닙니다. 고된 노동의 시간과 즐거운 개인의 시간을 명확하게 구분 짓는 일종의 ‘경계 의식’입니다. 사람들은 아페리티보를 통해 “자, 이제 일은 모두 잊고 즐거운 저녁을 맞이하자”는 암묵적 약속을 나눕니다. 이 의식이 있기에 이탈리아인들의 저녁은 더욱 풍요로운 사건이 될 수 있습니다.


국내의 훌륭한 사례도 있습니다. 한국의 전통 다도(茶道)는 어떻습니까? 단순히 차를 마시는 행위를 넘어, 찻물을 끓이고, 다기를 데우고, 차를 우리는 모든 과정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차의 색과 향, 찻잔의 감촉에 집중하며 마음을 가다듬는 명상의 시간이 되죠. 차 한 잔을 마시는 행위가 마음을 다스리는 하나의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김치찌개를 위한 새로운 의식의 탄생


재미있는 사실은, 의식이 반드시 오래된 전통일 필요는 없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우리만의 새로운 의식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김치찌개 식당에서 이런 아이디어를 실행한다고 상상해 봅시다.


테이블에서 찌개를 끓이기 시작하며 3분짜리 작은 모래시계를 함께 놓아줍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죠. “이 김치찌개는 잘 익은 김치가 1년의 시간을 견뎌 깊은 맛을 낸 것처럼, 손님의 테이블 위에서 이 모래시계의 시간이 다할 때까지 잠시 기다리시면 가장 완벽한 맛을 만나시게 될 겁니다.” 고객들은 이제 지루하게 기다리는 대신, 모래시계가 떨어지는 것을 보며 기대감을 품고 대화를 나눕니다. ‘기다림’이라는 평범한 행위가 ‘맛이 완성되는 것을 지켜보는’ 의미 있는 의식으로 바뀐 것입니다.


또 다른 식당에서는 테이블에 첫 김치찌개가 나갈 때마다 가게 입구에 달린 작은 풍경을 ‘딸랑’하고 울립니다. 그리고 메뉴판에 이렇게 적어둡니다. “손님의 식사에 행운이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첫 김치찌개를 내어드릴 때 ‘행운의 풍경’을 울립니다.” 이제 찌개를 받는 행위는 ‘행운을 선물 받는’ 유쾌한 사건이 됩니다. 이 모두가 새로 창조된, 작지만 강력한 의식들입니다.



당신의 식탁을 무대로 만드는 법


이쯤 되면 “그건 돈 받고 파는 식당 이야기고요”라고 항변하실 분이 있을 겁니다. 맞습니다. 이제 가장 중요한 단계, 이 원리를 우리의 평범한 일상, 나의 저녁 식탁으로 가져오는 일입니다. 거창할 필요는 없습니다. 단 하나의 작은 변화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첫째, 오늘의 식사에 이름을 붙여주십시오. 그냥 ‘저녁’이라고 부르는 대신, ‘폭풍 같은 월요일을 견뎌낸 나를 위한 위로의 만찬’이나 ‘오랜만에 가족이 다 함께 모인 것을 축하하는 작은 축제’라고 마음속으로 이름 붙여보는 겁니다. 이름은 존재의 의미를 규정합니다. 이름이 생기는 순간, 평범한 식사는 특별한 목적을 가진 사건이 됩니다.


둘째, 딱 한 가지만 평소와 다르게 해보십시오. 손님 올 때만 쓰던 예쁜 그릇을 꺼내거나, 식탁 위에 작은 초 하나를 켜는 겁니다. 매일 듣던 TV 소리 대신, 내가 좋아하는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트는 것도 좋습니다. 익숙한 습관의 고리를 끊는 이 작은 행위가 무미건조한 식탁을 새로운 무대로 바꿔줄 겁니다.


셋째, 나만의 ‘이타다키마스’를 만들어 보십시오. 음식을 앞에 두고 바로 숟가락을 들기 전에, 딱 10초만 눈으로 음식을 감상하며 이 음식이 내 앞에 오기까지의 과정을 상상해보는 겁니다. 이 짧은 멈춤, 이 작은 감사의 의식이 음식의 맛을 더욱 깊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결국,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인생이라는 책의 페이지 수를 무작정 늘리는 것이 아니라, 기억할 만한 문장에 정성껏 밑줄을 긋는 행위일지도 모릅니다. 의식은 반복되는 일상이라는 빼곡한 문장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현재의 순간에 아름다운 밑줄을 긋게 하는 가장 좋은 도구입니다.


오늘 저녁, 당신은 어떤 문장에 밑줄을 그으시겠습니까?




ikjunji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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