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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그 '감'은 정말 안녕하십니까?
  • 진익준 논설위원
  • 등록 2025-09-23 07:04:19
  • 수정 2025-09-25 15: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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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공하는 외식 창업가의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글로벌 외식정보=진익준 논설위원]


성공하는 외식 창업가의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여기 아주 익숙한 풍경이 있습니다. 번뜩이는 아이템과 남다른 열정으로 식당을 연 김 사장님이 있습니다. 그는 누구보다 성실했고, 음식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했죠. 주변 사람 모두가 그의 성공을 의심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1년 뒤, 가게 문에는 '임대 문의'가 붙었습니다. 나름 똑똑하고 부지런했던 그 사장님은 도대체 왜 실패했을까요? 부족한 자본? 나쁜 상권? 물론 그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저는 오늘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그의 '머릿속'에 있었을지 모른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인간의 뇌는 본디 생존을 위해 설계되었습니다. 수만 년 동안 우리는 맹수를 피하고, 독초를 걸러내고, 무리 속에서 살아남도록 진화했죠. 이 과정에서 뇌는 복잡한 세상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판단하기 위한 몇 가지 '생각의 지름길'을 만들어냈습니다. 문제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데 이 지름길이 종종 치명적인 함정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열정과 실력만 믿고 이 함정에 빠지는 순간, 최고의 셰프도 실패한 자영업자가 될 뿐입니다.



당신의 발목을 잡는 세 가지 심리적 함정


우리의 영리한 뇌가 어떻게 스스로를 속이는지, 그 대표적인 함정 세 가지를 파헤쳐 보겠습니다.


첫째, 보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확증 편향'의 안경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은 자신의 신념이나 가설과 일치하는 정보만 찾고, 반대되는 정보는 외면하는 심리적 경향입니다. 쉽게 말해, 우리는 모두 '정답'을 정해놓고 세상을 보는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셈이죠.


국내의 한 이탈리안 레스토랑 사장님 사례입니다. 그는 이탈리아 현지에서 직접 배워 온 '정통 까르보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크림 없이 계란 노른자와 치즈, 후추만으로 맛을 낸 진짜 로마식이었죠. 하지만 한국 고객들 대부분은 꾸덕꾸덕한 크림 파스타에 익숙했습니다. 매출은 부진했고, 고객 리뷰에는 "느끼하다", "소스가 부족하다"는 평이 가득했습니다.


이때 사장님은 어떻게 했을까요? 그는 수많은 부정적 리뷰 대신, "이곳이야말로 진짜 이탈리아의 맛!"이라고 칭찬한 어느 음식 블로거의 글 하나에 집착했습니다. 그 글을 가게 앞에 붙여놓고, 자신을 알아주지 못하는 고객들을 탓하며 레시피를 고수했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이 옳다는 증거'만을 찾다가 '고객이 떠나가는 현실'을 외면한 채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둘째, 성공 경험이 독이 되는 '과신 편향'의 저주


한 분야에서 큰 성공을 거둔 전문가일수록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여 다른 영역에서도 성공할 것이라 믿는 경향, 바로 '과신 편향(Overconfidence Bias)'입니다. 이보다 더 드라마틱한 사례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바로 애플 스토어의 신화를 만든 론 존슨(Ron Johnson)과 백화점 J.C. 페니의 이야기입니다.


론 존슨은 스티브 잡스와 함께 애플 스토어를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소매 공간으로 만든 천재였습니다. 그의 명성을 듣고 위기에 빠진 미국 백화점 J.C. 페니는 그를 CEO로 영입했죠. 그는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쇼핑을 재발명하겠다"고 선언한 그는 J.C. 페니의 오랜 전통이었던 할인 쿠폰과 세일 행사를 모두 없애버렸습니다. 애플처럼 '정가'에 '경험'을 파는 멋진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처참한 실패였습니다. 그는 J.C. 페니의 주 고객들이 애플의 젊은 팬들이 아니라, 쿠폰을 모으고 세일 기간을 기다리는 중산층 주부들이라는 명백한 데이터를 무시했습니다. 자신의 과거 성공 공식이 어디서든 통할 것이라는 과신에 빠져 시장의 목소리를 듣지 않은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그의 재임 17개월 동안 J.C. 페니의 매출은 수십억 달러가 증발했고, 그는 결국 쫓겨나듯 회사를 떠났습니다.



셋째, 본전 생각에 발목 잡히는 '매몰 비용의 오류'


"여기 들어간 돈이 얼만데..." 이 말처럼 합리적 판단을 방해하는 무서운 말이 또 있을까요? '매몰 비용의 오류(Sunk Cost Fallacy)'란 이미 투자한 시간, 노력, 돈이 아까워서 실패가 명백한 프로젝트를 중단하지 못하는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말합니다.


코로나 팬데믹 직전, 한창 뜨는 상권에 거액을 들여 멋진 인테리어의 와인바를 연 사장님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엔데믹 이후 상권은 급격히 쇠락했고, 유동인구는 눈에 띄게 줄었죠. 객관적인 데이터는 모두 '이전'이나 '폐업'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인테리어 비용 뽑으려면 아직 멀었다"며 버텼습니다. 이미 가라앉고 있는 배에 추가로 돈을 쏟아부으며 마케팅을 하고, 신메뉴를 개발했습니다. 결국 그는 초기 인테리어 비용보다 더 큰 빚을 지고 나서야 가게를 접을 수 있었습니다. 이미 써버린 돈은 의사결정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미래의 가능성만이 유일한 기준이어야 합니다.



프랜차이즈 본사는 어떻게 당신의 심리를 파고드는가?


이러한 인간의 심리적 약점을 가장 정교하게 활용하는 곳이 바로 프랜차이즈 산업입니다. 창업 박람회에 가보신 적 있습니까? 그곳은 거대한 '확증 편향 페스티벌'입니다. 본사는 예비 창업자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만 들려줍니다. 우상향하는 매출 그래프, 월 수익 1천만 원을 달성했다는 점주의 성공 사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 "나도 사장님이 되어 성공하고 싶다"는 당신의 믿음을 확인시켜 줄 증거들로 가득하죠.


여기에 "우리 시스템은 완벽해서 당신은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는 말로 당신의 '과신 편향'을 부추깁니다. 시장 분석의 어려움, 인력 관리의 고통 같은 쓴소리는 쏙 뺀 채 말입니다. 이 달콤한 속삭임에 넘어가는 순간, 당신은 합리적 사업가가 아닌 '성공 신화'라는 종교의 신도가 될 뿐입니다.



'감'의 시대를 끝내고 '데이터'의 시대를 열어라


그렇다면 어떻게 이 교묘한 심리적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해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나의 '감'과 '열정'을 의심하고, 차가운 '데이터'와 '현실'을 마주하는 것입니다. 내가 옳다고 믿었던 메뉴가 정말 고객들에게 사랑받고 있는지 POS 데이터를 확인하고, 나의 성공 경험이 새로운 시장에서도 통할 것인지 상권 분석 데이터를 통해 검증해야 합니다. 본사의 장밋빛 청사진이 아닌, 공정거래위원회 정보공개서에 담긴 폐점률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똑바로 쳐다봐야 합니다.


물론 데이터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습니다. 데이터를 해석하고, 그 속에서 기회를 찾아내고, 현장에 적용하는 것은 결국 사람의 몫입니다. 그래서 성공하는 창업가는 자신의 계획에 대해 끊임없이 "정말 그럴까?", "만약 아니라면?"이라고 질문하는 '악마의 변호인'을 곁에 둡니다. 그 역할을 해주는 것이 바로 냉정한 데이터와, 데이터를 올바르게 해석해 줄 수 있는 전문가, 즉 컨설턴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셰프가 가장 성공한 레스토랑 사장님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현명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결국 승리합니다. 그리고 그 지혜는, 자신의 가장 빛나는 아이디어와 뜨거운 열정을 의심할 수 있는 용기에서 시작됩니다. 사장님, 오늘 당신의 '감'은 안녕하셨습니까?



ikjunji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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