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오지 말라고 외친다고요?"
이태웅의 목소리가 떨렸다. 분노 때문인지, 혹은 정곡을 찔린 당혹감 때문인지 스스로도 헷갈렸다.
"CCTV나 돌려보는 게 컨설팅입니까? 맛도 안 보고 그런 말을..."
"맛은 변수(變數)가 아닙니다."
차현서가 태웅의 말을 다시 한번 잘랐다. 그녀는 낡았지만 깨끗하게 닦인 홀 바닥을 구둣발로 툭툭 쳤다.
"맛은 '상수(常數)'죠. 이태웅 사장님이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지키는 그 '맛'은, 이 가게가 망하지 않아야 할 '이유'이지, 망하지 않는 '방법'은 못 됩니다. 고객은 사장님의 성실함을 맛보기 전에, 가게의 '태만함'을 먼저 보니까요."
"태만...이라니!" 태웅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매일 12시간씩 뼈를 고고 주방을 닦는데, 태만?"
차현서는 태웅의 분노에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태블릿을 켜는 대신, 재킷 안주머니에서 얇은 종이 한 장을 꺼내 테이블 위로 밀었다. 마치 처방전처럼, 위에서 아래로 깔끔하게 타이핑된 리스트였다.
태웅은 마지못해 시선을 떨궜다.
[송정옥 1차 진단서 (요약)]
결론: '맛'을 경험할 기회조차 차단하는 '치명적 부정 증거' 다수 발견.
물리적 증거 (Physical Cues): 심각 (-85점)
파사드(간판) 조명 파손 및 야간 조도 미달.
출입문 유리창 '금(Crack)' 방치. (※'깨진 유리창 이론')
입구의 원인 불명 쾌쾌한 냄새(악취).
홀 내부의 차가운 온도 및 끈적이는 테이블.
사회적 증거 (Social Cues): 최악 (-100점)
피크 타임(19:00) 홀 공석률 90%.
'만석' 상태 노출 불가, '텅 빔' 상태만 노출됨.
심리적 증거 (Psychological Cues): 위험 (-60점)
'국밥 전문점' vs '돈까스/제육' 메뉴 혼재.
'전문성'에 대한 심리적 신뢰도 저하.
인간적 증거 (Human Cues): 매우 미흡 (-70점)
직원 유니폼 부재(일상복 착용).
고객 응대 시 '눈 맞춤' 없음. 비전문적 태도.
정보적 증거 (Informational Cues): 조잡 (-75점)
오탈자 및 수정테이프로 얼룩진 A4용지 메뉴판.
브랜드 스토리(60년 전통) 노출 전무.
시간적 증거 (Temporal Cues): 정지 (-50점)
4년 전 신문 기사 스크랩 부착.
먼지 쌓인 '여름 특선' 포스터 방치. '현재성' 부재.
사회문화적 증거 (Socio-cultural Cues): 혼란 (-40점)
'전통 노포'의 강점과 '동네 분식집'의 이미지가 충돌함.
타깃 고객(2030)이 원하는 '가치'와 불일치.
태웅은 리스트를 읽어 내려가다 말고 종이를 구겨 테이블에 내던졌다.
"장난합니까, 지금? 유리창 금 간 거? A4용지 메뉴판? 그딴 게... 그딴 게 '맛'보다 중요하단 말이에요?"
"네."
차현서는 즉답했다. 구겨진 종이를 다시 펴지도 않은 채, 그 내용을 모두 외우고 있다는 듯 말했다.
"고객은 사장님의 12시간짜리 육수를 맛보기 전에, 단 3초 만에 그 7가지 증거를 읽습니다."
그녀는 태블릿을 들어 어젯밤 그 커플이 망설이던 4.5초의 순간을 재생했다.
"자, 보세요. 0.5초, 여자가 입구의 '냄새'(물리)에 코를 찡그립니다. 1.5초, 남자가 '텅 빈 홀'(사회)을 확인합니다. 2.5초, 두 사람의 시선이 입구에 붙은 조잡한 '돈까스 메뉴'(정보/심리)에 머무릅니다. 3.5초, 여자가 유리창의 '금'(물리)을 봅니다. 4.5초, 그들은 '이곳은 관리되지 않는, 위험한, 맛없을 것 같은 곳'이라는 7가지 증거의 총합을 받고 이탈합니다."
"..."
태웅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CCTV는 그저 사실을 기록했지만, 차현서는 그 '사실'을 '증거'로 해석하고 있었다.
박 지점장이 애써 분위기를 수습했다. "이 사장, 차 컨설턴트가 업계에선 용하기로 유명해. '죽은 가게도 살린다'는 별명도 있고... 맛은 그대로 두되, 이런 '외부' 문제부터..."
"됐습니다."
태웅이 구겨진 진단서를 집어 들었다. 그의 손이 분노가 아닌,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로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가주세요. 두 분 다."
그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맛'이라는 절대적인 가치가, 듣도 보도 못한 '7가지 증거' 따위에게 모욕당하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차현서는 미동도 없이 그를 바라봤다.
"사장님, 그 '맛'이라는 신념... 좋습니다. 하지만 그 신념이 사장님의 가게를 지켜주진 못했습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박 지점장에게 말했다. "지점장님. 이 가게의 문제는 '맛'이 아니라 '증거'입니다. 그리고 이 사장님의 문제는 '신념'이 아니라 '데이터'를 거부하는 '태도'고요."
"일주일. 일주일 드리죠."
차현서가 태블릿을 가방에 넣으며 말했다.
"일주일 뒤에도 사장님의 '맛'이 '데이터'를 이길 수 있는지, 제가 다시 한번 확인하러 오겠습니다. 그때도 저 48팀의 이탈 고객이 줄어들지 않았다면... 그때는 사장님의 '신념'이 아니라 제 '진단서'를 믿으셔야 할 겁니다."
'딸랑-'
풍경 소리와 함께 이단아는 떠났다.
홀로 남은 태웅의 손에는, 땀에 젖어 구겨진 '7가지 부정적 증거' 리스트가 들려 있었다.
2화에서 계속......
매출 하락의 원인은 '경기 탓'이 아니다.
고객을 쫓아내는 '7가지 부정적 증거' 중 하나일 뿐이다.
문제를 내부에서 찾아라.
'송정옥'의 사장은 7가지 부정적 증거가 모두 '사소한 것'이라 치부한다.
하지만 고객 경험에서 '사소한 것'이란 없다.
고객은 '의식'하지 못할지라도 '인식'한다.
'맛'이라는 단 하나의 긍정적 증거는,
나머지 7개의 치명적인 부정적 증거의 총합을 결코 이길 수 없다.
전쟁은 이미 문밖에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