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외식정보=진익준 논설위원]

점심시간이 막 지난 한가한 오후 2시, ‘딸랑’하고 문이 열립니다. 들어온 손님은 혼자입니다. 그런데 이 손님, 가게 안을 쓱 둘러보더니 쭈뼛쭈뼛, 굳이, 기어코, 저기 창가 가장 넓은 4인석에 털썩 자리를 잡습니다. 그 순간 사장님의 머릿속은 복잡해집니다. ‘아, 저 자리는 좀 이따 단체 손님 받아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과 ‘그래도 이 시간에 와준 게 어디야’ 하는 고마움이 뒤섞이죠.
매출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으면서 왠지 모르게 신경 쓰이는 이 ‘빌런’ 아닌 빌런 같은 1인 손님,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그들은 정말 다른 손님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 눈치 없는 사람들일까요? 아니면, 이 사소해 보이는 현상 속에 우리가 미처 읽어내지 못한 거대한 시장의 변화와 새로운 공간의 경제학이 숨어 있는 걸까요? 오늘은 바로 이 고독한 점유자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먼저 그들이 왜 그토록 넓은 자리를 선호하는지에 대한 심리학적 변호부터 해봅시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자신의 영역을 중시하는 ‘영역 동물’이라는 사실은 이제 다들 아실 겁니다. 그런데 이 본능은 아이러니하게도 혼자 있을 때 더욱 강력하고 처절하게 발현됩니다.
여러 명이 함께 있을 때 우리는 ‘무리’라는 안정적인 방어막 속에 있습니다. 하지만 식당이라는 지극히 사회적인 공간에 홀로 던져졌을 때, 우리는 무방비 상태의 나약한 개인이 됩니다. 주변의 시선은 부담스럽고, 나의 행동 하나하나가 왠지 어색하게 느껴지죠.
바로 이 순간, 넓은 4인용 테이블은 단순한 식탁이 아닌, 나를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심리적 요새이자, 혼자이지만 결코 위축되지 않았다는 조용한 자존심을 위한 나만의 왕좌가 됩니다. 비어있는 의자 위에 가방과 책, 외투를 늘어놓는 행위는 ‘이 구역은 이제 내 것이다’라고 선포하는 일종의 영역 표시(Territorial Marking)입니다. 즉, 그들은 네 개의 의자를 차지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안전지대’를 구매하고 있는 셈입니다.
문제는 손님의 심리가 아니라, 그들을 그렇게 행동하도록 내모는 우리의 낡은 공간 설계에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봅시다. 대한민국의 식당 대부분은 슬프게도 ‘2인 이상’을 기본값으로 상정하고 만들어졌습니다.
입구에서부터 “몇 분이세요?”라는 질문이 당연하게 튀어나오는 것과 같죠. 4인석 몇 개, 2인석 몇 개, 그리고 구석에 마지못해 끼워 넣은 듯한 작은 테이블. 이것이 수십 년간 이어져 온 ‘K-식당’의 표준 공식입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대한민국 1인 가구는 750만을 넘어 전체 가구의 35%에 육박합니다. 이제 세 집 건너 한 집은 혼자 사는 셈입니다.
배달 앱을 켜고, 넷플릭스를 보는 이 거대한 ‘나홀로 족’은 이제 집 밖으로 나와 기꺼이 지갑을 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공간은 여전히 이들을 문밖에서 쭈뼛거리게 하거나, 눈치를 보며 4인석을 차지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시장의 수요(1인 고객)와 공간의 공급(다인석 위주) 사이에 심각한 불일치가 발생하고 있는 겁니다.
이러한 변화를 먼저 읽고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낸 영리한 사례는 국내외에 이미 많습니다.
일본의 라멘 체인 ‘이치란(一蘭)’은 이 문제를 거의 도(道)의 경지에서 해결했습니다. 그들은 독서실 칸막이로 1인 고객의 공간을 완벽히 분리해 줌으로써 ‘혼밥’을 처량하거나 어색한 행위가 아니라, 오직 맛에만 집중하는 고독한 미식가의 품격 있는 의식으로 바꿔놓았습니다. 타인의 시선이라는 가장 큰 심리적 장벽을 제거해주자, 1인 고객들은 열광적인 팬이 되었습니다.
미국의 클래식한 다이너(Diner)나 고급 레스토랑의 ‘셰프 카운터’ 역시 훌륭한 해답입니다. 이곳은 1인 손님을 위한 구석진 ‘배려석’이 아니라, 셰프의 화려한 요리 과정을 바로 눈앞에서 즐길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특석’입니다. 바텐더나 셰프와 가벼운 대화를 나눌 수도 있고, 역동적인 주방의 에너지를 느끼며 식사를 즐길 수 있죠. 혼자이지만 결코 고립되지 않는 경험, 이것이 바로 1인 고객이 기꺼이 돈을 지불하는 가치입니다.
최근 서울의 연남동이나 성수동에 생겨나는 작은 식당들 역시 이 흐름을 영리하게 읽고 있습니다. 창밖 풍경을 즐길 수 있도록 길게 배치된 바 테이블, 1인용 소반에 정갈하게 차려 나오는 밥집들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닙니다. 이들은 ‘혼자 오셨어요?’라고 묻는 대신, ‘혼자 오셔서 더 좋으시죠?’라고 말하는 듯한 공간을 제공합니다.
이제 다시 그 한가한 오후, 4인석에 앉았던 손님을 떠올려 봅시다. 그는 더 이상 눈치 없는 ‘빌런’으로 보이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그는 낡은 공간을 향해 온몸으로 외치고 있었던 겁니다. “저 혼자 편안하게 밥 먹을 좋은 자리가 필요해요!” 라고 말이죠.
1인 가구 1,000만 시대를 눈앞에 둔 지금, 당신의 가게는 여전히 ‘두 분이세요?’라고 묻고만 있습니까? 아니면, 혼자 온 손님을 가장 멋진 창가 바 테이블로 안내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그 작은 환대와 공간의 변화가, 어쩌면 당신 가게의 미래를 결정할지도 모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