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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그 가게와 사랑에 빠지지 마십시오
  • 진익준 논설위원
  • 등록 2025-10-03 08:3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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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업을 망치는 확증편향의 함정

[글로벌 외식정보=진익준 논설위원]



사랑은 위대합니다. 콩깍지를 씐 연인의 눈에는 상대의 모든 단점이 매력으로 승화되고, 갓 태어난 자식을 보는 부모의 눈에는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완벽한 존재로 보입니다. 이토록 맹목적이고 비논리적인 감정이 우리를 살게 하는 동력이 된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위대한 ‘사랑’이라는 감정이 창업의 세계, 특히 외식업계로 넘어오는 순간, 종종 비극의 씨앗이 되곤 합니다.


많은 예비 창업가들이 자신의 사업 아이템과, 심지어는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가게와 뜨거운 사랑에 빠집니다. 문제는 이 사랑이 너무나도 깊고 맹목적인 나머지, 연인의 콩깍지처럼 눈을 가려버린다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그 흐릿해진 시야로 사업의 가장 중요한 결정들을 내리기 시작하죠. 오늘은 바로 이 ‘사랑’이라는 이름의 가장 달콤하고도 치명적인 함정,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꿈이 편향으로 변질되는 순간


확증편향. 말이 좀 어렵지요? 쉽게 말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우리 뇌의 고약한 습관입니다. 일단 ‘이것이 진리다!’라고 한번 마음을 정하면, 그때부터 우리는 온 세상의 정보를 그 진리를 뒷받침하는 증거와 그에 반하는 이단, 두 가지로만 분류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단의 목소리는 애써 무시하거나 ‘저건 특수한 경우일 뿐’이라며 폄하해버리죠.


외식 창업의 과정은 이 확증편향이 발현되기에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습니다. 예비 사장님의 머릿속에는 이미 완벽한 가게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져 있습니다.


‘나는 저기 한적한 주택가 골목에, 햇살이 잘 드는 통창을 내고, 우드톤의 따뜻한 인테리어를 한 작은 비스트로를 열 거야. LP판에서는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손님들은 내가 정성껏 만든 음식을 먹으며 행복해하겠지.’


이 얼마나 아름다운 꿈입니까. 그러나 이 꿈이 너무나도 선명하고 매력적인 나머지, ‘나의 꿈 = 성공할 사업’이라는 등식이 머릿속에 성립되는 순간, 비극은 시작됩니다. 이제 그는 자신의 꿈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여정을 떠납니다. 사업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여정이 아니라요.



어느 비건 베이커리의 비극적 서사


제가 상담했던 한 분의 이야기를 각색해서 들려드리겠습니다. 김 사장님(가명)은 열정적인 비건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직접 개발한 맛있는 비건 빵을 팔기로 결심했고, 특정 동네에 가게를 얻고 싶어 했습니다. 그 동네는 예쁜 공방과 독립서점이 드문드문 자리한, 소위 ‘힙하지만 조용한’ 동네였죠.


1막: 편향의 렌즈로 입지를 보다


그는 이미 그 동네와 사랑에 빠진 상태였습니다. 그의 눈에 단점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유동인구가 적다는 명백한 사실은 ‘아는 사람만 찾아오는 프라이빗한 매력’으로 해석됐습니다. 근처에 요가원이 하나 있다는 사실은 ‘이 동네 사람들의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증거’로 둔갑했습니다. 반면, 그 동네 상권의 주류가 퇴근 후 직장인들을 상대로 하는 곱창집과 치킨집이라는 현실은 ‘아직 이 동네에 비건의 매력을 알려줄 가게가 없으니 블루오션’이라는 기적의 논리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객관적인 상권 분석을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꿈을 끼워 맞출 정당성을 수집하고 있었던 겁니다.


2막: 듣고 싶은 말만 듣는 시장 조사


그의 시장 조사는 어땠을까요? 그는 주변 친구들에게 빵을 맛보여주며 사업 계획을 설명했습니다. 마음씨 착한 친구들은 당연히 “너무 맛있다! 대박 나겠다!”라고 응원해주었죠. 딱 한 명, “근데 그 동네 사람들이 이 가격에 이 빵을 매일 사 먹을까?”라고 현실적인 질문을 던진 친구는 ‘부정적인 사람’으로 분류되어 그의 기억 속에서 잊혔습니다. 그는 ‘비거니즘의 성장’에 대한 거시적인 트렌드 기사는 몇 번이고 정독했지만, 정작 그 동네의 평균 소득 수준이나 외식 소비 패턴에 대한 데이터는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3막: 현실과의 충돌


가게는 그의 꿈처럼 아름답게 문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가게는 그의 꿈과 달리 텅 비어 있었습니다. 그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이렇게 맛있고 예쁜데 왜 손님들이 오지 않지? 아직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럴 거야.’ 그는 현실이 자신의 믿음과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현실이 틀렸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랑이 아닌 ‘썸’을 타는 용기


김 사장님의 이야기가 남의 일처럼 들리시나요?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이 비슷한 실수를 저지릅니다. 그렇다면 이 치명적인 사랑에서 벗어날 해독제는 무엇일까요? 간단합니다. 내 아이디어와 ‘결혼’하지 말고, 가벼운 ‘썸’만 타는 겁니다. 결혼은 되돌리기 어렵지만, 썸은 아니다 싶으면 언제든 발을 뺄 수 있으니까요.


1. ‘과학자’처럼 생각하기: 내 아이디어를 ‘자식’이 아닌 ‘가설’로 대하십시오. ‘이 동네에 비건 베이커리를 열면 성공할 것이다’라는 진리가 아니라, ‘…성공할 것이라는 가설을 세운다. 이제부터 이 가설을 깨기 위한 증거를 찾아보겠다.’ 이렇게 마음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콩깍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2. ‘악마의 변호인’을 자처하기: 내 계획을 칭찬하는 10명의 친구보다, 조목조목 반박하는 1명의 전문가가 훨씬 중요합니다. 일부러 그 동네에서 폐업한 가게 사장님을 찾아가 왜 실패했는지 물어보십시오. 멘토에게 찾아가 “제 계획을 사정없이 박살 내주세요”라고 부탁하십시오. 성공 사례보다 실패 사례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3. ‘작게 실패’해보기: 비싼 돈 들여 가게부터 차리는 ‘결혼’을 하지 마십시오. 팝업 스토어나 플리마켓 참여처럼 돈 안 드는 ‘데이트’를 통해 시장의 진짜 반응을 떠보세요. 당신의 빵을 맛본 고객이 지갑을 여는지를 직접 확인해야 합니다. 고객의 냉담한 반응은 실패가 아니라, 당신의 수천만 원을 아껴준 고마운 ‘데이터’입니다.


결론적으로, 창업에 열정과 사랑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다만, 그 사랑의 대상이 바뀌어야 합니다. 당신의 ‘아이디어’와 사랑에 빠지지 마십시오. 대신 당신의 ‘고객’과, 그리고 그들이 가진 ‘문제’와 사랑에 빠지십시오. 고객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면, 그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나의 첫 아이디어를 기꺼이 수정하고 버릴 수 있는 유연함과 용기가 생깁니다. 그것이야말로 맹목적인 사랑을 넘어, 비즈니스를 성공으로 이끄는 성숙하고 지혜로운 사랑일 것입니다.



ikjunji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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