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외식정보=진익준 논설위원]

새벽 2시, 잠 못 이루는 사장님의 휴대폰에 불길한 알림이 뜹니다. ‘새로운 리뷰가 등록되었습니다.’ 심호흡 한번 하고 눌러본 화면에는, 어김없이 밤하늘의 샛별처럼 외롭게 빛나는 별 하나가 박혀 있습니다. 그 아래로는 마치 어제저녁 우리 가게에서 끔찍한 생화학 테러라도 당한 듯한 격한 언어들이 쏟아집니다. “내 인생 최악의 식당”, “다시는 가지 않을 것”, “돈 버리고 시간 버리고 기분까지 망쳤다.”
사장님은 당혹스럽습니다. 어제저녁 일을 되짚어봅니다. 분명 만석에 정신없이 바쁘긴 했지만, 큰 사고 없이 무난하게 흘러간 하루였습니다. 99명의 손님은 만족하며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이 한 명의 고객은 가게에 핵폭탄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요? 누가 거짓말을 하는 걸까요? 사장님일까요, 고객일까요?
정답부터 말씀드리자면, 둘 다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두 사람이 서로 전혀 다른 영화를 보고, 그 영화의 ‘하이라이트 편집본’을 VOD 서비스에 올렸을 뿐입니다. 오늘은 이 지독한 기억의 비대칭성, 그 뒤에 숨은 우리 뇌의 교묘한 편집 기술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가장 먼저 우리는 기억에 대한 환상부터 버려야 합니다. 인간의 기억은 과거의 사건을 있는 그대로 저장하는 CCTV 녹화 영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수십 시간짜리 촬영 원본을 3분짜리 예고편으로 편집하는 영화감독의 작업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이 편집을 총괄하는 감독의 이름은 바로 ‘감정’입니다.
우리 뇌 속의 이 ‘감정’이라는 편집 감독은 몇 가지 아주 확고한 편집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원칙들을 이해하면, 왜 고객의 기억이 우리와 다를 수밖에 없는지가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편집 원칙 1: 긍정적인 뉴스보다 부정적인 스캔들에 집착한다 (부정성 편향)
우리 뇌는 생존을 위해 긍정적인 정보보다 부정적인 정보에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들판에서 만난 100마리의 순한 양보다, 1마리의 굶주린 늑대가 생존에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죠. 이 원칙은 식당에서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9가지의 평범하게 만족스러운 서비스(순한 양)는 고객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하고 스쳐 지나갑니다. 하지만 단 한 번의 치명적인 실수, 예를 들어 차갑게 식어버린 스테이크(굶주린 늑대)는 생존의 위협처럼 뇌의 경보를 울리고, 기억의 가장 중요한 자리에 굵고 빨간 글씨로 기록됩니다.
편집 원칙 2: 가장 강렬했던 순간과 마지막 순간만 기억한다 (정점-종결 법칙)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 교수가 주창한 이론입니다. 인간은 어떤 경험의 전체를 평균 내어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감정이 고조되었던 ‘정점(Peak)’과 맨 마지막의 ‘끝(End)’만으로 전체 경험을 요약해버리는 경향이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고객이 90분 동안 식사를 합니다. 그중 80분은 그럭저럭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주문한 콜라가 10분 넘게 나오지 않아 짜증이 치솟았던 순간(부정적 정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마친 후 계산을 하려는데 직원이 다른 일로 바빠 5분간 멀뚱히 서 있어야만 했습니다(부정적 끝). 이 고객의 뇌는 80분의 평온했던 기억은 가차 없이 삭제해버리고, ‘콜라 대참사’와 ‘계산 대기 굴욕’이라는 두 개의 자극적인 장면만으로 90분짜리 영화의 예고편을 만들어 버립니다. 그리고 리뷰에 이렇게 쓰죠. “처음부터 끝까지 엉망진창.” 사장님 입장에서는 억울하지만, 고객의 뇌 속 편집실에서는 지극히 정상적인 편집 과정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이 교활한 뇌의 편집에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어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고객의 기억을 통제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기억이 편집될 ‘결정적 순간’에 개입하여 예고편의 방향을 바꿀 수는 있습니다.
1. 부정적 ‘정점’을 긍정적 ‘정점’으로 덮어써라.
실수는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음식이 늦거나, 주문이 잘못 들어갈 수 있죠. 이것이 ‘부정적 정점’이 되는 순간, 우리는 더 강력한 ‘긍정적 정점’으로 그 기억을 덮어써야 합니다.
음식이 늦었다면, “죄송합니다”라는 마지못한 사과가 아니라, 지배인이 직접 테이블로 찾아가 진심으로 고개를 숙이고, “오래 기다리시게 해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주방장에게 특별히 부탁해 작은 서비스를 준비했습니다”와 같이 고객의 예상을 뛰어넘는 ‘결자해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겁니다. 이때 고객의 기억은 ‘음식이 늦어 화가 났던 경험’에서 ‘실수를 진심으로 책임지는 멋진 가게를 만난 경험’으로 재편집될 가능성이 생깁니다.
2. ‘끝’을 의도적으로 설계하라.
고객이 가게를 나서는 마지막 순간은 기억 편집의 ‘골든 타임’입니다. 중간에 사소한 실수가 있었더라도, 계산 과정이 더없이 매끄럽고, 문을 나서는 순간 모든 직원이 눈을 맞추며 “찾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라고 진심으로 인사를 건넨다면 어떨까요? ‘정점-종결 법칙’에 따라, 고객의 머릿속에는 이 기분 좋은 마지막 인사가 전체 경험을 대표하는 장면으로 남을 확률이 높아집니다. 우리는 마지막 1분을 지배함으로써 앞선 89분을 구원할 수도 있는 셈입니다.
결론적으로, 별점 1점짜리 리뷰는 사장님을 공격하기 위한 ‘거짓말’이 아니라, 고객의 뇌가 편집한 ‘주관적 진실’의 기록입니다. 따라서 그 리뷰에 대고 “사실은 그게 아니고요”라며 팩트 체크를 시도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관객이 “저 영화 재미없던데요”라고 말하는데, 감독이 나타나 “아닙니다, 저 장면의 미장센은…“이라며 해설하는 것과 같은 꼴입니다.
현명한 사장님은 리뷰와 싸우지 않습니다. 대신 그 리뷰를 ‘고객의 뇌가 어떤 장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소중한 보고서’로 삼습니다. 그리고 다음 고객을 위해 더 멋진 하이라이트 예고편을 만들 준비를 하죠. 당신의 가게는 오늘, 손님들의 머릿속에서 어떤 영화로 편집되고 있습니까?
늘 깨어 있는 당신과 레스토랑을 응원합니다~
인포마이너: ikjunj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