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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최고의 항해사, 그러나 선장은 당신이다
  • 진익준 논설위원
  • 등록 2025-10-03 08:3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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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이터와 직관의 균형 잡기

[글로벌 외식정보=진익준 논설위원]



옛날 왕이나 장군들은 전쟁 같은 큰일을 앞두고 신전(神殿)을 찾아 신탁(神託)을 구했습니다. 미래를 내다보는 초월적 존재의 조언을 듣고서야 비로소 마음을 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시대가 바뀌어 오늘날의 창업가들은 새로운 신전을 찾아갑니다. 바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이라는 이름의 신전입니다. 이 새로운 신탁은 과거의 그 어떤 예언보다 훨씬 정교하고 논리적인 데이터로 미래를 속삭여줍니다.


“이곳의 유동인구는 하루 평균 5천 명, 주 고객층은 30대 여성 직장인. 주변 상권의 평균 객단가는 2만 원이며, 향후 6개월간 로제 떡볶이의 인기는 지속될 확률이 73%.”


이 얼마나 놀라운 세상입니까. 과거 사장님들이 오직 ‘감’과 ‘경험’에만 의지해 안갯속을 헤쳐나가야 했다면, 이제 우리 손에는 어둠을 꿰뚫어 보는 최첨단 야간투시경이 들려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질문을 던져봐야 합니다. 이 새로운 신탁은 과연 언제나 옳을까요? 그리고 그 신탁 앞에서 인간 경영자의 역할은 과연 무엇일까요?



내 손안의 완벽한 항해사, AI


저는 AI 기반 데이터 분석을 ‘배를 모는 항해사’에 비유하곤 합니다. 망망대해와 같은 시장에 배(가게)를 띄우려는 선장(창업자)에게, AI 항해사는 과거 그 어떤 인간 항해사보다 유능한 조력자가 되어줍니다.


첫째, AI는 세상에서 가장 정밀한 해도(海圖)를 그려줍니다. 과거의 창업이 ‘저기 섬이 있는 것 같다’는 어렴풋한 감으로 배를 모는 것이었다면, AI는 위성사진 수준의 해도를 펼쳐 보입니다. 단순히 ‘강남역 상권이 좋다’는 수준을 넘어, ‘강남역 11번 출구 뒷골목, 화요일 저녁 7시에는 30대 여성들의 이탈리안 음식 소비 성향이 평균보다 28% 높다’는 식의 ‘핀포인트’ 정보를 제공합니다. 어디에 물고기(고객)가 많고, 어디에 암초(경쟁)가 숨어있는지를 손금 보듯 알려주는 것이죠.


둘째, AI는 미래의 날씨를 예측합니다. 소셜 미디어의 버즈량, 검색 데이터, 포털의 리뷰 키워드를 분석해 앞으로 어떤 태풍(트렌드)이 몰려올지를 예보합니다. ‘마라탕 열풍이라는 저기압이 동쪽으로 빠져나가고, 그 자리에 탕후루라는 고기압이 발생할 것’이라는 일기예보를 미리 알려주는 셈입니다. 선장은 이 예보를 보고 돛을 올리거나 닻을 내릴 준비를 할 수 있습니다. 감으로만 날씨를 점치던 시대는 이제 끝났습니다.



그러나 항해사는 갑판에 내려오지 않는다


자, 이토록 유능한 AI 항해사만 있다면 만사형통일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이 완벽해 보이는 항해사에게는 몇 가지 치명적인 맹점이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항해사는 조타실의 해도만 볼 뿐, 갑판의 상황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는 배의 엔진이 미세하게 삐걱거리는 소리(직원들의 피로도)를 듣지 못합니다. 거친 파도에 지친 선원들의 표정(팀의 사기)을 읽지 못합니다. 무엇보다, 우리 배만이 가진 독특한 강점과 영혼(가게의 철학과 분위기)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 모든 것은 매일 갑판을 거닐며 선원들과 눈을 맞추는 선장만이 알 수 있는 영역입니다.


또한, 항해사는 해도에 없는 섬을 찾아갈 수 없습니다. 그의 모든 예측과 경로는 과거의 데이터, 즉 ‘먼저 지나간 배들의 항해 기록’에 기반합니다. 따라서 기존에 없던 혁신적인 컨셉, 시장을 창조하는 새로운 아이디어의 성공 가능성은 계산해내지 못합니다. 해도에 없는 신대륙을 발견하는 것은 데이터 분석이 아닌, 선장의 비전과 ‘근거 없는 용기’에서 비롯되는 법입니다.


결정적으로, 예상치 못한 폭풍우(블랙스완)가 닥쳤을 때, 항해사의 매뉴얼은 무용지물이 됩니다. 팬데믹처럼 과거 데이터로는 예측할 수 없었던 거대한 위기가 닥치면, 모든 통계 모델은 의미를 잃습니다. 그때부터 배의 운명은 전적으로 선장의 경험과 직관, 위기관리 능력에 달리게 됩니다.



선장의 위대한 역할: 데이터 너머를 보는 용기


그렇다면 선장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항해사를 해고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유능한 선장은 유능한 항해사를 신뢰하되, 그의 조언을 ‘결정’이 아닌 ‘가장 중요한 참고자료’로 활용합니다.


AI 항해사가 말합니다. “A 항로가 B 항로보다 거리가 10% 짧고 빠릅니다.”


무능한 선장은 생각 없이 A 항로를 택합니다. 하지만 위대한 선장은 다르게 생각합니다. ‘데이터상으로는 A가 맞지. 하지만 B 항로 중간에는 우리 선원들이 좋아하는 기항지가 있어. 거기서 잠시 쉬어가면 장기적으로 선원들의 사기가 올라 항해 전체가 더 순조로워질 거야.’


이를 식당 창업에 적용해볼까요? AI가 말합니다. “A 입지가 B 입지보다 유동인구가 20% 많아 예상 매출이 높습니다.”


데이터만 보는 사장님은 A 입지를 계약합니다. 하지만 현명한 사장님은 이렇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물론 A가 데이터는 좋지. 하지만 B 입지의 건물주는 소상공인에게 우호적이라고 평판이 자자하고, 그 동네의 문화적 분위기가 내 가게의 철학과 더 잘 맞아. 장기적으로 볼 때 이 ‘관계’와 ‘분위기’가 훨씬 중요한 자산이야.’


때로는 데이터를 거스르는 결정을 내릴 용기, 이것이야말로 인간 경영자만이 할 수 있는 위대한 역할입니다.


결론적으로, ‘데이터냐, 직관이냐’는 어리석은 질문입니다. 정답은 언제나 ‘둘 다’이기 때문입니다. AI라는 유능한 항해사가 나의 맹목적인 사랑과 확증편향으로부터 나를 지켜주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선장인 당신은 그 객관적인 데이터 위에 당신만의 철학, 비전, 그리고 사람에 대한 이해를 더해 최종적인 방향키를 잡으십시오.


현대의 비즈니스라는 거친 바다에서, 최고의 항해사와 현명한 선장이 함께하는 배보다 더 안전하고 위대한 배는 없을 것입니다.



ikjunji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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