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외식정보=진익준 논설위원]

점심시간이면 어김없이 가게 앞에 늘어선 긴 줄, SNS를 도배하는 화려한 음식 사진, 유명인의 방문 인증샷. 식당을 운영하는 사장님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풍경일 겁니다. 이른바 ‘성공의 증표’들이죠. 이쯤 되면 한숨 돌릴 법도 합니다. “아, 이제 우리 가게는 안정기에 접어들었구나.” 이 안도감, 참 달콤합니다. 하지만 저는 컨설턴트로서 수많은 식당의 흥망성쇠를 지켜보며 이 달콤한 순간이 가장 위험한 독(毒)이 될 수 있음을 목격했습니다. 오늘 저는 사장님들이 애써 획득한 ‘성공’이라는 빛이 어떻게 스스로를 잠식하는 그림자를 만들어내는지, 그리고 그 그림자에서 벗어날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해 조금은 불편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여러분, 혹시 ‘펠츠먼 효과(Peltzman Effect)’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1975년 시카고 대학의 경제학자 샘 펠츠먼이 제창한 아주 흥미로운 이론입니다. 이야기는 자동차 안전벨트에서 시작합니다. 정부가 교통사고 사망률을 줄이기 위해 안전벨트 착용을 의무화했습니다. 당연히 사고 시 운전자의 생존율은 높아졌겠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크게 줄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펠츠먼 교수는 그 원인을 인간의 엉뚱한 심리에서 찾았습니다. 운전자들이 안전벨트라는 ‘안전장치’를 믿고는 이전보다 더 과속하거나 난폭하게 운전하는 ‘보상적 위험 행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운전자는 더 살게 되었지만, 그들이 낸 사고로 길 가던 보행자나 다른 차의 운전자는 더 많이 희생되었습니다. 안전장치가 오히려 위험을 부추긴 셈입니다.
자, 이제 이 이론을 우리 식당으로 가져와 봅시다. 사장님 가게의 ‘안전벨트’는 무엇일까요? 바로 ‘맛집’이라는 명성, 방송 출연 이력, SNS의 수많은 ‘좋아요’, 그리고 문밖의 긴 줄입니다. 이 견고한 안전벨트는 사장님에게 “이만하면 괜찮아”, “조금은 편해져도 돼”라고 속삭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사장님은 자신도 모르게 위험한 운전, 즉 ‘안일한 경영’이라는 운전대를 잡게 되는 것입니다.
‘초심을 잃었다’는 말처럼 진부한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식당이 바로 그 진부한 이유로 문을 닫습니다. 펠츠먼 효과는 이 ‘초심 상실’의 과정을 아주 논리적으로 설명해 줍니다. ‘맛집’이라는 안전벨트를 단단히 매고 잠이 든 사장님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적인 증상이 나타납니다.
첫째, 혁신의 엔진이 멈춥니다. 가게를 처음 열었을 때를 떠올려 보십시오. 밤잠 설쳐가며 신메뉴를 개발하고, 더 나은 식재료를 찾아 발품을 팔고, 경쟁 식당의 장점을 배우려 염탐(?)까지 마다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는 어떻습니까? “손님들은 어차피 우리 시그니처 메뉴를 먹으러 와”라는 생각에 새로운 시도를 멈춥니다. 계절 메뉴 개발은 귀찮은 일이 되고, 주방은 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반복하는 공장으로 전락합니다.
둘째, 디테일의 가치를 망각합니다. 손님이 짜다고 하면 “원래 우리 음식이 간이 좀 있습니다”라고 둘러대고, 그릇에 작은 이가 나가도 “바쁜데 어쩔 수 없지”라며 넘어갑니다. 테이블의 끈적임, 구석의 먼지, 무심한 직원의 말투 하나하나가 모여 가게의 품격을 갉아먹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합니다. 과거에는 상상도 못 할 실수들이 ‘성공의 관성’ 속에서 사소한 것으로 치부됩니다.
셋째, 쓴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가게가 잘 될수록 사장님 주변에는 쓴소리를 해주는 사람이 사라집니다. 단골들은 웬만한 불만은 말하지 않고 조용히 발길을 끊고, 직원들은 사장님의 성공 신화에 감히 이의를 제기하지 못합니다. SNS에는 좋은 말만 필터링해서 보게 되죠. 결국 사장님은 ‘우리 가게는 완벽하다’는 달콤한 착각의 메아리 속에 갇히게 됩니다.
이런 이야기가 어디 변두리 작은 식당에만 해당할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세계적인 거인들도 이 ‘성공의 저주’를 피하지 못했습니다.
영국의 스타 셰프 제이미 올리버의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제이미스 이탈리안’이라는 브랜드로 그는 전 세계에 자신의 레스토랑을 열었습니다. ‘제이미 올리버’라는 이름 자체가 강력한 안전벨트였죠.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믿고 레스토랑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급격한 확장 속에서 음식의 질과 서비스는 초창기의 철학을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이름값에 비해 맛이 평범하다”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거대한 성공에 취한 경영진은 이 신호를 무시했습니다. 결국 그의 레스토랑 체인은 2019년, 영국에서만 22개 지점의 문을 닫으며 처참하게 무너졌습니다. 이름값이라는 안전벨트가 질적 저하라는 과속 운전을 막아주지 못한 것입니다.
국내의 사례도 예외는 아닙니다. 방송 한번 잘 타서 전국구 맛집이 된 지방의 어느 칼국수집을 기억하십니까? 초창기에는 사장님이 직접 육수를 내고 정성으로 손님을 맞았습니다. 하지만 유명세에 밀려드는 손님을 감당하기 위해 공장제 육수를 쓰고, 서비스는 불친절해졌습니다. “그래도 손님은 많으니까”라는 아니함이 가게의 본질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미식가들의 외면을 시작으로 가게는 서서히 잊혀 갔습니다. 그 많던 손님들은 더 새롭고 진정성 있는 다른 ‘맛집’을 찾아 떠났을 뿐입니다.
미쉐린 스타를 받은 레스토랑들이 오히려 폐업하거나 스타를 반납하는 현상도 같은 맥락입니다. ‘미쉐린 스타’라는 최고의 안전벨트는 혁신과 도전 대신 ‘명성을 지켜야 한다’는 압박감과 현상 유지의 유혹을 가져옵니다. 창의력 넘치던 셰프가 별점에 갇혀 스스로를 복제하기 시작할 때, 그 레스토랑의 생명력도 다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무서운 ‘펠츠먼 효과’의 저주를 피할 방법은 없을까요? 성공을 반납해야만 하는 걸까요? 물론 아닙니다. 해답은 안전벨트를 풀고 위험하게 운전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벨트를 맨 상태에서 더 긴장하고 주변을 살피는 ‘깨어 있는 운전자’가 되는 것입니다. 몇 가지 구체적인 방법을 제안합니다.
첫째, 아마존의 ‘Day 1’ 철학을 식당에 적용하십시오. 제프 베조스는 아마존을 매일매일 창업 첫날처럼 운영한다고 했습니다. 성공에 안주하는 ‘Day 2’는 곧 쇠퇴의 시작이라고 봤죠. 사장님들, 오늘이 우리 가게 오픈 첫날이라고 상상해 보십시오. 테이블을 닦는 손길부터, 손님을 맞는 눈빛, 신메뉴를 고민하는 열정까지 모든 것이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이 ‘첫날의 긴장감’을 의식적으로 유지해야 합니다.
둘째, ‘감’이 아닌 ‘숫자’와 대화하십시오. “요즘 장사 잘된다”는 기분 좋은 ‘감’은 가장 경계해야 할 적입니다. 고객 재방문율, 테이블 회전율, 객단가, 신규 고객과 기존 고객의 비율 등 가게의 건강 상태를 보여주는 핵심 지표(KPI)를 냉정하게 들여다봐야 합니다. 칭찬 일색인 SNS 리뷰 뒤편에서 조용히 하락하는 재방문율이야말로 진짜 위기의 신호입니다.
셋째, 돈을 주고 ‘쓴소리’를 사십시오. 빌 게이츠는 “당신의 가장 불만족한 고객이 당신의 가장 위대한 스승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긍정 리뷰 100개보다, 구체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는 부정 리뷰 1개가 가게를 성장시키는 보약입니다. 의도적으로 고객 불만(VOC)을 수집하고, 여기서 발견된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으십시오. 심지어 미스터리 쇼퍼를 고용해서라도 우리 가게의 약점을 객관적으로 진단받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가게 앞의 긴 줄은 분명 사장님의 땀과 노력에 대한 값진 훈장입니다. 하지만 그 훈장은 벽에 걸어두는 장식품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내일 더 잘해야 하는 이유, 더 긴장해야 하는 근거가 되어야 합니다.
‘맛집’이라는 안전벨트는 사장님을 편안하게 잠들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혹시 모를 위기에서 우리 가게를 지켜줄 최소한의 방어 장치일 뿐, 성공적인 운전 그 자체를 보장해주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안전벨트가 있기에 우리는 더욱 자신감을 갖고 새로운 길을 탐험하고, 때로는 과감한 코너링을 시도하며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부디 사장님의 그 견고한 안전벨트가 안락한 침대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항상 깨어 있는 운전자가 되어,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의 음식을 손님에게 선사하며 10년, 20년 후에도 여전히 사랑받는 그런 식당을 만들어 가시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늘 깨어 있는 당신을 응원합니다.
ikjunj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