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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만으로는 부족한 시대, 왜 당신의 레스토랑은 '경험'을 팔아야 할까?
  • 진익준 논설위원
  • 등록 2025-10-16 14:3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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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이지 않는 90초의 승부, 고객의 ‘라스트 마일’
  • 음식에 이야기를 입히는 무기, ‘테이블 리츄얼’
  • 당신은 셰프인가, ‘경험 디렉터’인가

[글로벌 외식정보=진익준 논설위원]



어느 날 저녁, 지인과 약속을 잡다 이런 대화를 나눴습니다. “A 식당 고기가 B 식당보다 낫긴 한데, 왠지 B에 가게 되네.” 왜일까요? 혀끝의 미묘한 차이보다 마음을 끄는 무언가가 B 식당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네 어머니의 김치찌개 솜씨가 동네 최고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겠지만, 과연 그 사실 하나만으로 누군가 기꺼이 한강을 건너오게 만들 수 있을까요? 2025년 대한민국 외식 시장은 맛의 상향 평준화를 넘어, 이제는 포화 상태에 이른 ‘맛의 전쟁터’입니다. 이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한 질문은 더 이상 “어떻게 더 맛있게 만들까?”가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어떻게 잊지 못할 경험을 팔 것인가?”



보이지 않는 90초의 승부, 고객의 ‘라스트 마일’


물류업계에는 ‘라스트 마일(Last Mile)’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상품이 고객의 현관문 앞에 도착하기까지의 마지막 배송 구간을 뜻하죠. 저는 이 개념을 레스토랑에 차용하고 싶습니다. 고객이 당신의 가게를 인지하고, 마침내 문을 열고 들어와 자리에 앉기까지의 짧은 여정. 저는 이것을 ‘보이지 않는 90초의 승부’라고 부릅니다. 이 90초가 그날 식사의 성패, 나아가 가게의 운명까지 좌우할 수 있다면 과장일까요?


서울 이태원의 ‘교촌필방’을 보시죠. 이곳은 흔한 간판 하나 없이, 아는 사람만 아는 비밀스러운 공간입니다. 고객은 벽에 걸린 거대한 붓을 당겨야만 숨겨진 문을 열고 입장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장식이 아닙니다. 가게의 정체성을 온몸으로 느끼게 하는 일종의 ‘입장 의식’입니다. ‘여기는 그냥 치킨집이 아니야’라는 속삭임과 함께, 고객은 평범한 소비자가 아니라 비밀스러운 세계를 탐험하는 발견자가 됩니다. 이 문턱을 넘는 순간, 고객의 마음속에서 치킨의 가격은 이미 ‘가치’로 전환되기 시작합니다.


청담동의 채소 한식 레스토랑 ‘비움’은 또 어떻습니까. 복잡한 도심 한복판에서 고즈넉한 정원을 지나 레스토랑에 들어서는 과정은, 마치 속세의 번잡함을 씻어내는 정화(淨化)의 과정과 같습니다. 음식을 맛보기도 전에, 고객은 이미 공간이 주는 철학에 깊이 동화됩니다.


해외로 눈을 돌려볼까요? 뉴욕과 라스베이거스의 ‘카본(Carbone)’은 20세기 중반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완벽하게 재현했습니다. 턱시도를 차려입은 캡틴들이 마치 연극배우처럼 손님을 맞이하는 순간, 고객은 타임머신을 타고 영화 ‘대부’의 한 장면 속으로 들어갑니다. 여기서 음식은 허기를 채우는 도구가 아니라, 이 연극을 완성하는 소품이 됩니다. 이렇듯 잘 설계된 ‘라스트 마일’은 고객의 기대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고, 음식 가격에 대한 심리적 저항을 허물며, 무엇보다 ‘이야깃거리’를 제공합니다.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고 말하지 않고, “거기 입구가 말이야…”라며 경험을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음식에 이야기를 입히는 무기, ‘테이블 리츄얼’


짜릿한 90초의 여정을 통과한 고객이 마주하는 곳은 테이블입니다. 이곳은 당신이 연출하는 연극의 클라이맥스가 펼쳐져야 할 무대입니다. 그리고 이 무대 위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바로 ‘테이블 리츄얼(Ritual)’, 즉 테이블에서 벌어지는 의식과도 같은 퍼포먼스입니다.


마장동의 한우 오마카세 ‘본앤브레드’를 생각해 봅시다. 전문가가 테이블 옆에서 부위별로 고기를 구워주며 그 특징과 역사를 설명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서빙이 아닙니다. 고객에게 최고의 한 점을 선사하기 위한 장인의 집도(執刀)이며, 음식에 대한 신뢰를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퍼포먼스입니다. 고객은 단순히 고기를 먹는 것이 아니라, 한우에 대한 한 편의 ‘강의’를 듣고 장인의 솜씨를 ‘감상’하는 것입니다. 이 리츄얼이 있기에 수십만 원의 가격은 비싼 것이 아니라 ‘가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모던 한식의 선두주자 ‘밍글스’는 디저트에서 그들의 철학을 보여줍니다. 된장, 간장, 고추장을 활용한 ‘장 트리오’ 디저트를 선보이며 그 배경을 설명해 주는 순간, 고객은 맛을 넘어 한식의 무한한 가능성이라는 지적인 유희를 경험하게 됩니다. 식사의 마지막을 이토록 강렬한 ‘시그니처 순간’으로 만드니,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된 ‘솔트 배(Salt Bae)’의 사례는 극적입니다. 그의 소금 뿌리는 동작이 스테이크의 맛에 과학적으로 얼마나 기여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퍼포먼스가 전 세계인이 공유하는 하나의 ‘밈(Meme)’이 되었고, 그를 외식업계의 슈퍼스타로 만들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리츄얼이 때로는 음식 자체보다 더 강력한 브랜드 자산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덴마크의 ‘알케미스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돔 형태의 천장에 펼쳐지는 미디어 아트 아래에서, 환경 문제와 같은 철학적 메시지를 담은 요리를 경험하는 것은 식사를 넘어 한 편의 예술 전시회에 참여하는 것과 같습니다.



결론: 당신은 셰프인가, ‘경험 디렉터’인가


지금까지 열거한 성공적인 레스토랑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그들은 단순히 음식을 만들고 파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고객의 여정 전체를 설계하고, 그 안에서 잊지 못할 순간을 연출하는 ‘경험 디렉터’의 역할을 자처했습니다.


당신의 레스토랑을 하나의 극장이라고 상상해 보십시오. 메뉴는 배우들의 대본이고, 주방은 무대 뒤이며, 홀은 무대입니다. 직원들은 각자의 역할을 맡은 배우이며, 당신은 이 모든 것을 총괄하는 감독입니다. 과연 당신의 극장은 관객(고객)이 문을 여는 순간부터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까? 공연의 클라이맥스에서 어떤 마법 같은 순간을 선사하고 있습니까?


지금 잠시 가게 밖으로 나가보십시오. 그리고 완전히 낯선 사람의 눈으로 당신의 가게 문을 열어보십시오. 어떤 이야기가 시작되나요? 당신의 음식은 고객의 배를 채울 수는 있겠지만,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지갑을 다시 열게 하는 것은 결국 ‘경험’의 힘입니다. 정보와 선택지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 잘 짜인 경험, 잊지 못할 이야깃거리야말로 유일하게 사라지지 않는 강력한 통화(通貨)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늘 깨어 있는 당신과 레스토랑을 응원합니다 ~

인포마이너: ikjunj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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