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외식정보=진익준 논설위원]

어느 추리 소설에나 범인을 오인하게 만드는 ‘맥거핀(MacGuffin)’이라는 장치가 있습니다. 모든 증거가 그를 가리키는 듯 보이지만, 사실 그는 이야기의 진짜 흐름과는 무관한 인물이죠. 저는 레스토랑 컨설팅 현장에서 이와 비슷한 일을 종종 목격합니다. 사장님들은 자신의 가게를 채우는 손님들을 보며 확신에 차 말합니다. "제 고객은 30대 직장인입니다." 혹은 "인스타그램을 보고 찾아오는 20대 여성들이죠."
오늘 우리가 탐문할 북한강 변의 그 유명한 빵집, ‘A’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주말이면 아이들의 손을 잡고 들어서는 젊은 부부들, 강을 배경으로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기 바쁜 20대 연인들. 이 풍경만 보면 A의 사장님이 "우리 주 고객은 3040 가족 관광객입니다"라고 결론 내리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추론처럼 보입니다. 모든 증거가 그들을 ‘용의자’로 지목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말입니다, 모든 비즈니스는 한 편의 추리극과 같습니다. 눈에 보이는 용의자가 아니라, 사건의 배후에서 결정적인 행동을 한 ‘진짜 범인’을 찾아야만 미스터리를 풀 수 있습니다. 이 북적이는 공간에서 진짜 지갑을 여는 ‘큰손’은 과연 누구일까요? 데이터라는 과학수사 도구를 들고, 이 평화로운 카페의 진짜 주인공을 찾아 나서 보겠습니다.
탐문 수사의 기본은 현장 관찰입니다. A의 주말 풍경은 앞서 묘사한 그대로입니다. 활기 넘치고, 젊고, 역동적입니다. SNS에는 A의 로고가 박힌 사진들이 끊임없이 올라옵니다. 대부분 젊은 세대의 계정입니다. 매출 데이터 역시 이 가설을 뒷받침하는 듯 보입니다. 주말에 매출이 집중되고, ‘유자녀’ 고객의 결제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사실은 ‘3040 가족 관광객’이라는 심증을 굳히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많은 사장님들이 바로 이 지점에서 수사를 멈춥니다. 그리고는 3040 세대를 겨냥한 마케팅에 자원을 쏟아붓기 시작합니다. 인스타그램 감성에 맞는 메뉴를 개발하고, 아이들을 위한 ‘키즈존’을 만드는 식이죠. 물론 틀린 전략은 아닙니다. 그들 역시 분명 중요한 고객이니까요.
하지만 모든 증거가 한 방향을 가리킬 때, 뛰어난 탐정은 보이지 않는 곳을 살피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누가 보이는가’가 아니라 ‘누가 결제하는가’라는 결정적 증거, 즉 카드 결제 데이터를 통해 사건의 핵심에 접근해야 합니다. 그들이 바로 이 이야기의 진짜 ‘자금줄’이기 때문입니다.
결제 데이터를 분석하는 순간, 사건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증거, 성별. 결제자의 상당수는 여성이었습니다. 이는 젊은 엄마들이 지갑을 연다는 가설과 부합합니다. 두 번째 증거, 세대 유형. 앞서 말했듯 ‘유자녀’ 고객이 압도적이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우리의 추리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증거인 ‘연령대’를 확인하는 순간, 우리의 추리는 근본부터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두꺼운 지갑을 연 이들은 30대도, 40대도 아니었습니다. 범인은 바로... 60대 이상의 여성이었습니다.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집니다. 우리가 현장에서 보았던 그 젊은 부부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그들은 분명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결제’라는 결정적인 행위의 주체가 아니었던 겁니다. 퍼즐 조각이 다시 맞춰지기 시작합니다. A의 주말 풍경은 ‘젊은 부부가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곳’이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들딸 내외와 손주들을 데리고 와서 한턱내는 곳’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무대의 주연 배우(3040 부모)에게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진짜 이 연극의 제작자이자 투자자는 객석 맨 앞줄에서 조용히 미소 짓고 있던 할머니, 어머니였던 셈입니다. 그들은 빵과 커피 값을 계산하며, 가족과 함께 보내는 행복한 시간이라는 ‘가치’를 구매하고 있었던 겁니다.
왜 하필 60대 이상의 여성이었을까요? 여기에는 우리 사회의 중요한 경제적, 문화적 변화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 그들은 경제력을 갖춘 세대입니다. 평생의 노력으로 자산을 축적했고, 안정적인 연금을 받는 ‘신노년층(Active Senior)’의 등장은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자녀 세대보다 오히려 가처분 소득이 높은 경우도 많습니다.
둘째, 그들은 가족을 위한 소비에 기꺼운 세대입니다. 과거의 부모님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며 오직 자식의 미래를 위해 저축했다면, 지금의 60대는 가족 모두의 ‘현재의 행복’을 위해 지갑을 여는 것을 망설이지 않습니다. 손주들에게 맛있는 빵을 사주고, 경치 좋은 곳에서 아들딸과 차 한잔하는 것은 그들에게 최고의 기쁨이자 ‘가치 있는 소비’입니다.
셋째, 그들에게 A와 같은 공간은 ‘대접의 품격’을 보여주는 무대입니다. 조금 비싸더라도, 넓고 쾌적하고 전망 좋은 곳에서 가족을 대접하는 행위는 가장으로서의 만족감과 자부심을 느끼게 합니다. 그들은 단순히 빵을 사는 것이 아니라, 가족 모임을 주최하는 호스트로서의 즐거움을 사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발견은 A의 사장님에게 무엇을 말해줄까요? 그것은 사업의 방향키를 근본적으로 수정해야 한다는 강력한 신호입니다.
젊은 세대를 겨냥한 인스타그램 마케팅도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의 진짜 ‘투자자’인 60대 여성 고객의 마음에 더 깊이 귀 기울여야 합니다. 그분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너무 달고 자극적인 빵보다는, 쑥이나 팥, 흑임자처럼 건강하고 친숙한 재료로 만든 빵은 아닐까요? 시끄러운 최신가요보다는, 편안한 연주곡이 흐르는 공간을 더 선호하지 않을까요? 딱딱하고 불편한 디자인의 의자보다는, 푹신하고 안락한 소파를 더 반기지 않을까요?
사업의 성공은 시장의 거대한 흐름을 읽는 눈에서 시작되지만, 그 완성은 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한 사람의 마음을 정확히 읽어내는 섬세함에 달려 있습니다. 당신의 가게에서 조용히 지갑을 여는 그분에게, 오늘은 따뜻한 눈인사 한번 건네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분이 바로 당신의 사업을 지탱하는 진짜 주인공일지도 모릅니다.
늘 깨어 있는 당신과 레스토랑을 응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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