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은 발보다 빨랐다.
‘강혁 쿠킹 아카데미’가 돈줄인 자격증반을 폐지하고, 하루 저녁에 15만 원짜리 정체불명의 행사를 연다는 소식은 인근 학원가에 최고의 가십거리로 떠올랐다.
“미쳤군. 강 원장 아들이 아버지가 평생 일군 학원을 말아먹으려고 작정했어.”
“15만 원? 그 돈이면 차라리 호텔 뷔페를 가겠다!”
경쟁 학원인 ‘영진 아카데미’의 원장은 코웃음을 치며 ‘수강료 30% 할인’ 현수막을 더 크게 내걸었다. 그는 강혁의 자멸을 확신했다.
학원 내부의 분위기도 싸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수십 년 경력의 한식 강사는 “근본 없는 짓”이라며 사직서를 던졌고, 남은 강사들도 불안한 눈빛으로 서로의 눈치만 살폈다. 수강생들은 환불 문의를 해오기 시작했다.
그 모든 혼돈의 중심에서, 강혁은 이상할 정도로 평온했다.
그는 낡은 현수막을 직접 떼어냈다.
[경축! 3년 연속 한식조리기능사 합격률 98% 달성!]
한때 아버지의 자랑이자, 자신의 전부였던 낡은 영광. 그는 그것을 아무 미련 없이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원장님…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박 실장이 텅 비어버린 현관 벽을 보며 초조하게 물었다. ‘금요일 밤의 미식회’ 포스터를 붙인 지 사흘이 지났지만, 문의 전화는커녕 비웃는 연락만 빗발쳤다.
“실장님.” 강혁이 돌아보며 물었다. “조선시대 과거 시험에 급제하면 뭘 보상으로 받았는지 아세요?”
“네? 갑자기 그건 왜… 관직에 나아갈 기회를 얻었겠죠?”
“맞습니다. ‘기회’였죠. 합격증, 즉 ‘홍패(紅牌)’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얻게 될 미래의 가치. 그런데 만약 조선이 망했다면, 그 홍패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냥 붉은색 종이 쪼가리일 뿐이죠.”
강혁은 텅 빈 강의실을 가리켰다.
“지금 요식업계라는 나라가 바뀌었습니다. 성공의 공식이 바뀌었고, ‘자격증’이라는 낡은 신분증만으로는 아무런 기회도 얻을 수 없는 시대가 됐어요. 그런데 우리는 여태껏 이미 망해버린 나라의 합격증을 나눠주며 자랑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듣는 사람의 심장을 찌르는 날카로움이 있었다.
“그럼… 우리는 이제 뭘 팔아야 하죠?”
“세 가지를 팔 겁니다.”
강혁은 손가락을 하나씩 펴 보였다.
“첫째, ‘창업 성공률’입니다. 우리 학원 출신이 가게를 열고, 1년 이상 살아남았다는 살아있는 증거. 그것보다 강력한 광고는 없어요.”
“둘째, ‘커뮤니티 활성도’입니다. 졸업생들이 졸업 후에도 끈끈하게 연결되어 서로를 끌어주고 밀어주는 팬덤. 돈으로는 절대 살 수 없는 자산이죠.”
“그리고 셋째, ‘개인 브랜드 성장’입니다. 우리 학원 출신이 10만 유튜버가 되고, 자기 이름으로 밀키트를 출시하는 것. 수강생 개개인을 ‘1인 기업’으로 만들어주는 겁니다.”
그것은 박 실장이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학원의 새로운 가치였다. 합격률이라는 낡은 숫자 대신,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의 ‘성공 스토리’를 팔겠다는 선언.
“하지만 원장님, 그건 너무… 먼 미래의 이야기잖아요. 당장 이번 주에 신청자가 한 명도 없으면 우리는….”
따르르릉-
그때, 학원 전화벨이 울렸다. 박 실장과 강혁의 시선이 동시에 전화기로 향했다. 박 실장이 떨리는 손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네, 강혁 쿠킹 아카데미입니다… 네? 아… ‘금요일 밤의 미식회’요?”
박 실장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녀는 수화기를 막은 채, 강혁에게 속삭였다.
“원장님! 신청 문의예요! 진짜예요!”
강혁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화기 너머로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아니요, 저는 요리 자격증엔 전혀 관심 없고요. 그냥… 스토리가 마음에 들어서요. 김치랑 돼지고기, 막걸리 이야기요. 남자친구랑 같이 가려고 하는데, 두 명 신청 가능한가요?”
박 실장은 거의 울먹이며 예약을 확정했다. 전화를 끊은 그녀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강혁을 바라보았다.
“원장님… 대체 어떻게….”
강혁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10년 후의 미래, 텅 빈 이곳에서 홀로 소주를 마시던 자신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사람들은 더 이상 종이 쪼가리를 사지 않아요, 실장님.”
그의 입가에 쓴웃음과 자신감이 뒤섞인 미소가 번졌다.
“사람들은… 자기 삶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과 ‘경험’을 사는 겁니다.”
첫 번째 예약 전화.
그것은 망해버린 나라의 낡은 현수막을 떼어낸 자리에, 새로운 왕국의 깃발이 처음으로 꽂히는 순간이었다. 강혁은 이제 겨우 첫발을 내디뎠을 뿐이었다.
4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