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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수강생’을 ‘팬’으로 만드는 법 - 최종회
  • 진익준 작가
  • 등록 2025-10-15 00:5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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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밤의 미식회’의 성공은 달콤했다. IT기업과의 B2B 계약이라는 실질적인 성과까지 얻어냈으니, 박 실장을 비롯한 직원들의 얼굴에도 오랜만에 화색이 돌았다.


“원장님! 다음 미식회는 이탈리안으로 가죠! 제가 아는 와인 전문가도 있고…!”


들떠있는 박 실장을 보며 강혁은 고개를 저었다.


“실장님, 그건 자판기에 콜라가 다 떨어졌으니 사이다를 채워 넣는 것과 같아요.”


“네? 자판기라뇨?”


“우리는 일회성으로 음료수를 빼먹고 돌아서는 손님을 원하는 게 아닙니다. 매일 아침 우리를 찾아와 ‘사장님, 늘 마시던 걸로요!’라고 말해주는 단골손님을 만들어야 해요.”


강혁의 시선은 성공의 단맛에 취해있는 현재가 아닌, 더 먼 미래를 향해 있었다.


“지난주에 온 12명의 손님은 ‘고객’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그들을 ‘팬’으로 만드는 겁니다.”


“팬… 말입니까?”


“네. 고객은 ‘내가 낸 돈만큼의 가치를 얻었는가?’를 계산하지만, 팬은 ‘우리가 다음에 뭘 할까?’를 기대합니다. ‘나’에서 ‘우리’로의 전환. 그게 우리 학원이 앞으로 살아남을 유일한 길입니다.”


그는 박 실장에게 새로운 지시를 내렸다. 그것은 ‘영진 아카데미’의 금메달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우선, 우리 부족의 깃발부터 꽂아야죠.”


강혁은 A4용지에 힘주어 썼다.


[군포 미식 클럽 (Gunpo Gastronomy Club)]


“우리의 정체성은 ‘하이퍼-로컬’입니다. 이 동네, 군포와 그 주변의 음식 이야기를 탐험하는 미식가들의 아지트. 이것이 우리의 깃발입니다.”


“그리고 부족원들이 모일 모닥불을 피워야 합니다. 어젯밤 참석했던 12명 전원에게 문자를 보내세요. ‘군포 미식 클럽’의 창립 멤버로 초대한다고요. 그리고 그들만의 비공개 네이버 카페를 개설해 주세요.”


그는 박 실장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카페에는 행사 때 찍은 사진들과 그날 다뤘던 레시피를 전부 올려주세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다음 모임은 어떤 주제로 할까요?’라고 그들에게 직접 물어보세요.”


박 실장의 눈이 커졌다. 학원이 일방적으로 과정을 개설하는 것이 아니라, 회원들에게 직접 묻는다는 것은 상상도 해본 적 없는 방식이었다.


그때, 한 직원이 ‘영진 아카데미’의 SNS를 보여주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원장님, 영진 아카데미는 금메달리스트를 앞세워서 ‘결과로 증명하는 명문 학원’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내세울 게 너무 없지 않습니까?”


강혁은 그 화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금메달을 목에 건 학생의 자랑스러운 얼굴. 과거의 그가 그토록 갈망했던 영광의 증거였다.


“저들의 자랑은 벽에 걸어두면 그만인 박제된 트로피입니다.”


강혁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하지만 우리의 자랑은,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의 ‘성공 스토리’가 될 겁니다.”


그는 박 실장에게 마지막 지시를 내렸다.



“IT기업 윤태진 팀장님께 연락해서, 다음 달 워크숍은 아주 특별하게 진행될 거라고 전해주세요. 팀원 중 한 분의 ‘인생이 담긴 음식 이야기’를 받아, 그분과 최 셰프님이 함께 메뉴를 개발하고 선보이는 무대로 만들겠다고요.”


“네? 수강생을… 무대의 주인공으로요?”


“네. 그리고 첫 예약자였던 젊은 커플 기억나시죠? 온라인 디저트 샵을 열고 싶어 하던. 두 분께 저와 30분짜리 무료 컨설팅을 하자고 연락 주세요. 제가 아는 온라인 마케팅 노하우를 전부 알려드릴 겁니다.”


강혁은 최 셰프를 돌아보았다.


“최 셰프님, 다음 달부터는 ‘알려주는’ 역할뿐만 아니라 ‘발견하는’ 역할도 맡아주셔야겠습니다. 재능 있는 수강생을 발굴해서 ‘후계자’로 키워주십시오. 우리 학원의 공식 ‘알럼나이 멘토’ 프로그램 1기를 시작할 겁니다.”


박 실장은 그제야 강혁이 그리고 있는 큰 그림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영진 아카데미가 ‘학원’의 이름값을 높이는 동안, 강혁은 ‘학원 출신 사람들’의 가치를 높이려 하고 있었다.


“저들은 메달을 수집하고 있지만, 우리는 사람을 남길 겁니다.”


강혁이 나지막이 읊조렸다.


“10년 후에, 과연 어떤 자산이 더 가치 있을지는… 그때 가보면 알겠죠.”


그날 밤, 박 실장은 강혁의 지시대로 ‘군포 미식 클럽’ 비공개 카페를 개설하고 12명의 멤버를 초대했다. 과연 누가 가입이나 할까, 반신반의하는 마음이었다.


띵동-


얼마 지나지 않아, 첫 알림이 울렸다.


카페에 새로운 게시글이 등록되었다는 알림이었다. 글쓴이는 미식회에 남자친구와 함께 왔던 젊은 여성이었다.


[제목: 안녕하세요! 창립 멤버 OOO입니다! 혹시 다음 주제로…]


[내용: 금요일 밤, 정말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어요! 혹시 다음 모임 주제로, 수원 화성 근처에 오래된 양조장들이 많은데, 그곳 막걸리들과 어울리는 음식을 탐험해 보는 건 어떨까요? 제가 아는 숨은 맛집이 있는데…!]


글이 올라오자마자, 다른 멤버가 댓글을 달았다.


[오! 수원 양조장 투어 완전 좋은데요? 찬성입니다!]


또 다른 댓글이 달렸다.


[저도요! 그때 마셨던 오봉산 막걸리도 정말 좋았어요!]


박 실장은 스마트폰 화면을 보며 자기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차가운 자판기 같던 학원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강혁이 피운 작은 모닥불 주위로, 부족원들이 스스로 땔감을 던져 넣으며 불을 키우고 있었다.


진짜 커뮤니티의 첫 페이지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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