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런다고 뭐가 달라져? 요즘 소비자들은 다양하고 새로운 걸 원한다고. 한 가지 메뉴만 파는 건 위험 분산을 전혀 하지 않는 아마추어 같은 발상이지.’
대기업 마케팅팀 시절, 내가 앵무새처럼 외우고 다녔던 ‘포트폴리오 다각화’ 이론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삼겹살, 목살, 대패삼겹, 항정살, 심지어 닭갈비까지 구색을 갖춘 내 가게야말로 고객의 다양한 니즈를 충족시키는, 훨씬 더 세련된 모델이라고 믿었다. 박 사장님의 가게는 그저 구시대의 유물일 뿐이라고.
하지만 나는 지금 벼랑 끝에 서 있었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했다. 어쩌면 저 낡고 오래된 것들 속에, 내가 놓치고 있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의심과 오만함을 애써 억누르고, 본격적인 관찰을 시작했다. 첫 번째 목표는 저 가게의 ‘고기’가 어디서 오는지 알아내는 것이었다. 나처럼 본사에서 진공 포장된 고기를 대량으로 받아쓰겠지, 라고 생각했다.
새벽 6시.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어스름한 시간, 가게 앞에 작은 화물차가 섰다. 나는 주차된 차 뒤에 몸을 숨기고 숨을 죽였다. 내 예상과는 달랐다. 거대한 물류 회사의 냉동 탑차가 아니었다. 동네에서 가장 큰 정육점의 사장님이 직접 운전해 온, 평범한 1톤 트럭이었다. 그리고 그가 내린 것은 규격화된 박스가 아니었다. 정형(整形)되기 전의, 거대한 돼지고기 원육 덩어리였다.
박 사장님은 잠에서 막 깬 부스스한 얼굴로 나와, 고기의 상태를 꼼꼼히 살폈다. 그는 손으로 고기를 눌러 탄력을 확인하고, 색깔과 지방의 분포를 매의 눈으로 훑었다. 잠시 후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자, 두 사람은 끙 하는 소리와 함께 원육을 가게 안으로 옮겼다.
그때부터였다. 가게 안에서, 내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 것은.
그것은 공장에서 기계가 고기를 찍어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묵직한 칼이 단단한 뼈에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 날카로운 칼날이 근막을 따라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소리. 마치 숙련된 외과 의사가 수술을 집도하듯, 절제되고 규칙적인 소리였다. 나는 홀린 듯 가게 뒷문 창문에 바짝 붙어 안을 엿보았다.
그곳은 식당 주방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한 명의 장인을 위한 작업실에 가까웠다. 박 사장님은 하얀 위생복을 입고, 오직 거대한 고기 덩어리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는 부위별로 지방을 걷어내고, 힘줄을 제거하고, 고깃결의 반대 방향으로 정교하게 칼집을 넣었다. 내가 마트에서 파는 삼겹살을 사 와 집에서 굽는 수준의 지식만 가지고 있었다면, 박 사장님의 손에서 해체되고 재단되는 고기는 거의 예술의 경지처럼 보였다.
한 시간 넘게 이어진 발골 작업이 끝나자, 그는 거대한 스테인리스 통에 간장과 잘게 간 과일, 채소들을 쏟아부었다. 공장에서 납품받는 플라스틱 통에 담긴 기성품 양념이 아니었다. 배와 양파를 직접 갈아 넣는지, 가게 밖으로 달큰하고 신선한 향이 흘러나왔다. 그는 갓 손질한 고기를 그 양념에 정성스럽게 재우기 시작했다. 마치 갓난아기를 목욕시키듯, 조심스럽고 부드러운 손길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거대한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나는 ‘요리’를 한 것이 아니었다. 본사에서 보내준 냉동 고기 포장을 뜯고, 공장에서 만든 양념 소스 통을 부었을 뿐이다. 나는 음식을 만드는 사장님이 아니라, 그저 식자재를 손님상으로 옮기는 ‘유통업자’에 가까웠다.
그날 저녁, 나는 손님으로 위장하고 ‘명가 숯불갈비’의 문을 열었다. 메뉴판은 정말로 단출했다. ‘돼지갈비(250g) 1인분 17,000원’. 그리고 된장찌개와 냉면이 전부였다. 내 가게보다 1인분 가격은 비쌌지만, ‘무한리필’이라는 마법의 단어는 없었다.
자리에 앉자 직원이 뜨겁게 달궈진 참숯을 화로에 넣어주었다. 값싼 번개탄이나 성형탄이 아니었다. 불꽃이 튀지 않고 은은하게 열기를 뿜어내는, 단단한 진짜 참숯이었다. 곧이어 나온 돼지갈비는 내가 아침에 봤던 바로 그 고기였다. 정갈하게 들어간 칼집 사이로 양념이 깊게 배어 있었고, 신선한 육질이 살아있는 듯 윤기가 흘렀다.
나는 고기를 불판에 올렸다. 달콤한 양념이 숯불에 닿아 피워 올리는 연기는 그 자체로 최고의 애피타이저였다. 잘 익은 고기 한 점을 입에 넣었다.
…맛있었다.
단순히 맛있다, 라는 말로는 부족했다. 인공적인 단맛이 아니라 과일과 채소에서 우러나온 깊고 은은한 단맛, 짜지 않으면서도 고기 깊숙이 밴 감칠맛, 그리고 참숯 향이 완벽하게 어우러진, 내가 지금껏 먹어본 돼지갈비와는 차원이 다른 맛이었다. 내가 손님들에게 ‘무한’으로 제공하던, 양념 맛으로 겨우 비린내만 가린 냉동 고기와는 비교 자체가 모욕이었다.
한참 정신없이 고기를 먹고 있을 때, 박 사장님이 테이블로 다가왔다.
“맛은 좀 어떻소, 젊은이?”
“네? 아… 예, 정말 맛있습니다.”
나는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그가 나를 알아볼 리 없었지만, 괜히 심장이 철렁했다.
그는 불판 위의 고기를 한번 뒤집어주며 퉁명스럽게, 하지만 자부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기는 정직한 거라. 내가 들인 시간하고 정성만큼 딱 그만큼의 맛을 내주거든. 이 동네에서 20년 넘게 이 맛 하나 믿고 찾아오는 손님들인데, 내가 장난을 칠 수가 있나.”
그 순간, 나는 유진이 말했던 ‘약속’의 의미를 온몸으로 깨달았다.
박 사장님은 손님에게 ‘무한’을 약속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내가 만든 이 최고의 돼지갈비 맛은, 당신이 오늘 오든 1년 뒤에 오든 변치 않을 것’이라는, 묵직하고도 정직한 약속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손님들은 그 약속을 믿고 기꺼이 1인분에 17,000원을 지불하고 있었다.
이것이 유진이 말했던 ‘단일 품목 전문형’의 본질이었다. 하나의 메뉴에 모든 것을 걸어,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깊이와 전문성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은 단순한 장사가 아니라, 한 분야의 장인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벌이는 자존심의 싸움이었다.
나는 계산을 하고 가게를 나왔다. 다시 ‘무조건 퍼주는 고깃집’의 간판을 바라보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어리석어 보였던 그 간판이, 이제는 처절하게 느껴졌다. 나는 아무런 약속도, 자부심도, 이야기도 없이 그저 ‘퍼주기’만 하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다시 유진의 심야식당을 찾았다. 그녀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저 나를 바라보았다.
“봤습니다.”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는… 요리를 한 게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냥, 고기 포장을 뜯고 있었을 뿐입니다.”
내 목소리는 스스로 듣기에도 부끄러울 만큼 기어들어가고 있었다.
유진은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빛은 ‘그럴 줄 알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제 첫 번째 유형을 이해했군요. 장인의 길. 하지만 명심하세요. 모두가 장인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박 사장님이 ‘왜’ 그 길을 선택했고, ‘어떻게’ 그 약속을 지켜내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겁니다.”
그녀는 따뜻한 보리차 한 잔을 내밀며, 오늘의 강의를 마무리했다.
“자, 그럼 이제 두 번째 질문으로 넘어갈 시간입니다. 당신은 박 사장님처럼 될 수 있습니까? 만약 그럴 수 없다면, 당신이 손님에게 할 수 있는 또 다른 약속은 무엇일까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더 이상 막막하지만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아주 희미하지만 분명한 빛줄기 하나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5화에서 계속......
레스토랑의 경영과 마케팅을 연구하고 희망을 스토리텔링합니다.
골목길 컨설턴트: ikjunj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