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럼 나는 뭘 할 수 있지? 장인이 될 수 없다면, 내 가게는 대체 손님에게 무엇을 약속해야 하는가?’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지만, 출구는 보이지 않았다. 가게 문을 여는 것이 두려웠다. 손님들의 얼굴을 볼 때마다 ‘나는 당신들에게 거짓된 맛을 팔고 있습니다’라고 고백해야 할 것 같은 죄책감에 시달렸다. 가게 매출은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나의 흔들리는 마음이 음식 맛과 서비스에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는 탓이리라.
결국 나는 다시 유진의 가게를 찾았다. 이번에는 손님이 아니라, 길 잃은 학생이 스승을 찾아가듯 절박한 마음이었다. 그녀는 내 퀭한 얼굴을 보더니, 말없이 앞치마를 풀었다.
“오늘은 장사 접고, 같이 저녁이나 먹으러 갑시다.”
“네? 저녁이요?”
“백문이 불여일견. 두 번째 유형의 답은, 사장님 입으로 직접 맛보고 몸으로 느껴봐야 알 수 있을 테니까요.”
유진이 나를 데려간 곳은 뜻밖의 장소였다. 우리 가게와는 두 정거장 떨어진, 대학교 앞 번화가의 한 건물 2층. 간판에는 알록달록한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두끼떡볶이]
‘떡볶이…?’
나는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 고깃집 사장에게, 지금 이 떡볶이 뷔페에서 해답을 찾으라는 말인가? 이건 마치 최고의 스테이크를 굽는 법을 배우러 분식집에 온 격이었다. 가게 안은 이미 교복을 입은 학생들과 20대 초반의 젊은이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시끄러운 음악, 활기찬 웃음소리, 여기저기서 풍겨오는 매콤달콤한 냄새. 그 모든 것이 나의 고민과는 어울리지 않는, 너무나도 가볍고 발랄한 세계였다.
“여깁니다. 오늘의 교과서.”
유진은 태연하게 말했다.
자리를 잡고 앉자, 직원이 와서 이용 방법을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테이블의 인덕션과 빈 냄비. 그게 전부였다. 나머지는 모두 ‘셀프’였다.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유진을 따라 샐러드바로 향했다. 그곳은 그야말로 떡볶이의, 떡볶이를 위한, 떡볶이에 의한 세상이었다. 밀떡, 쌀떡, 치즈떡 등 온갖 종류의 떡과 채소, 어묵, 소시지, 라면과 쫄면 사리까지 수십 가지의 재료들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자, 이제부터 사장님이 요리사입니다. 당신만의 떡볶이를 만들어보세요.”
유진의 말에 나는 마지못해 그릇에 재료들을 담기 시작했다. 마음 한편에서는 불만이 끓어올랐다.
‘이게 뭐야. 돈 내고 내가 직접 요리를 해야 한다고? 이건 그냥 가게가 할 일을 손님에게 떠넘기는 거 아닌가? 품질 관리는 어떻게 하고? 손님들이 재료를 엉망으로 섞어 맛이 없으면 가게 탓을 할 텐데.’
나의 이런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유진이 입을 열었다.
“불편하십니까?”
“솔직히 말해, 좀 그렇습니다. 이건 프로페셔널한 방식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손님에게 최고의 음식을 ‘대접’하는 게 아니라, 그냥 알아서 ‘해결’하라고 하는 것 같아서요.”
유진은 피식 웃었다.
“바로 그 지점이, 이 모델의 천재성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그녀는 떡볶이 소스를 그릇에 담으며, 두 번째 강의를 시작했다.
“사장님. ‘서비스’란 무엇일까요? 무조건 모든 것을 다 해주는 것만이 서비스일까요? IKEA가 전 세계적인 가구 회사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요? 그들은 완성된 가구를 배달해주는 대신, 소비자가 직접 조립하는 ‘불편함’을 팔았습니다. 사람들은 그 과정에서 성취감을 느끼고, 자신의 손으로 만든 가구에 더 큰 애착을 갖게 되죠. 이걸 ‘IKEA 효과’라고 부릅니다.”
유진은 떡볶이 재료가 담긴 우리 테이블의 냄비를 가리켰다.
“이곳은 식당이 아닙니다. ‘놀이터’죠. 손님들은 음식을 소비하러 오는 게 아니라, ‘나만의 떡볶이 만들기’라는 놀이를 하러 오는 겁니다. 우리는 그저 놀이터의 재료와 도구를 제공하는 관리인일 뿐이에요.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흙을 만지고 미끄럼틀을 타는 것을 ‘노동’이라고 부르지 않죠? 마찬가지로, 여기서 떡볶이를 만드는 건 ‘노동’이 아니라 ‘놀이’이자 ‘창작’입니다.”
그녀의 말에 머릿속이 번쩍 뜨이는 기분이었다. 나는 한 번도 내 가게를 ‘놀이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 모델이 얼마나 영리한지 아십니까? 첫째, 수익 구조가 경이롭습니다. 떡볶이의 주재료는 뭡니까? 밀가루, 고추장, 설탕, 채소. 고기에 비하면 원가가 10분의 1도 안 될 겁니다. 가장 비싼 재료래 봤자 치즈나 소시지 정도겠죠. 사장님이 55%의 원가율과 싸울 때, 이곳은 아마 30%도 안 되는 원가율로 장사를 하고 있을 겁니다.”
“둘째, 인건비가 획기적으로 줄어듭니다. 주방에 전문 요리사가 필요 없어요. 재료를 씻고 써는 최소한의 인력만 있으면 됩니다. 홀에서는요? 손님들이 직접 나르고 끓여 먹으니, 우리는 그저 빈 그릇을 치워주기만 하면 됩니다. 사장님 가게의 가장 큰 비용 두 가지, 원가와 인건비 문제를 이 시스템은 너무나도 우아하게 해결하고 있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맛에 대한 불만을 원천 봉쇄합니다. 만약 떡볶이가 맛이 없다? 그건 누구 책임일까요? 소스 배합을 잘못한 손님 자신의 책임이죠. 가게는 잘못이 없습니다. 오히려 가게는 ‘더 맛있게 먹는 꿀팁’ 같은 걸 벽에 붙여놓고, 손님의 창작 활동을 돕는 친절한 조력자가 됩니다. 손님은 자신의 실패를 가게 탓으로 돌리는 대신, 다음번엔 더 잘 만들어보겠다며 재방문을 다짐하게 되죠. 이것이 바로 ‘DIY 체험형’ 모델의 무서움입니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내가 ‘아마추어 같다’고 비웃었던 이 모델은, 사실 가장 정교하게 설계된 비즈니스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그 증거로, 주변의 젊은 손님들은 저마다 자신이 만든 떡볶이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기에 바빴다. ‘#두끼레시피’, ‘#오늘의꿀조합’. 그들은 돈을 내고 밥을 먹으면서, 동시에 가게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마케팅 콘텐츠를 자발적으로 생산하고 있었다.
유진과 내가 만든 떡볶이가 보글보글 끓기 시작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시큰둥했던 내 마음이, 어느새 내가 직접 고른 재료로 만든 이 떡볶이의 맛이 어떨지 기대감으로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한 입 떠먹었다. 솔직히 박 사장님의 돼지갈비 같은 깊은 맛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훨씬 더 재미있고 만족스러웠다.
그 순간, 나는 유진이 했던 질문의 두 번째 답을 찾았다.
‘당신이 손님에게 할 수 있는 또 다른 약속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완벽한 맛’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와 ‘새로운 것을 만들어보는 즐거움’이라는 약속이었다. 장인의 길을 갈 수 없다면, 영리한 놀이터 설계자가 되는 길이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는 유진에게 진심으로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유진은 여전히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감사는 아직 이릅니다. 이제 사장님 가게로 돌아가서, 당신만의 놀이터를 설계해야죠. 당신의 손님들에게 어떤 재료와 어떤 도구를 쥐여줄 겁니까?”
가게로 돌아오는 내내, 머릿속은 수만 가지 아이디어로 들끓었다. 내 가게의 샐러드바. 그곳은 그저 고기를 먹기 위한 들러리가 아니었다. 그곳은 손님들이 새로운 맛을 창조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나만의 작은 놀이터가 될 수 있었다.
나는 가게에 도착하자마자, 한구석에 놓여 있던 공기밥솥과 김치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참기름과 김가루 통을 집어 들었다. 아주 작지만,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첫 번째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6화에서 계속......
레스토랑의 경영과 마케팅을 연구하고 희망을 스토리텔링합니다.
골목길 컨설턴트: ikjunj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