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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땅은 어디있습니까? 상권의 재발견.(7화)
  • 진익준 작가
  • 등록 2025-10-28 13:10:35
  • 수정 2025-10-29 07:3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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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읽으라니. 지난 몇 달간 나는 이 동네를 지겹도록 걸어 다녔다. 유동인구 조사를 한답시고 퇴근길 직장인 숫자부터, 주말 커플들의 동선까지 엑셀 파일에 빼곡히 기록했다. 내가 이 땅에 대해 뭘 더 알아야 한다는 말인가. ‘샤브의 정원’이라는 거대한 항공모함 앞에서, 내 작은 가게가 서 있는 이 땅의 성격을 다시 분석한다고 해서 달라질 게 있을까. 답답함과 회의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하지만 나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다음 날, 나는 가게 문을 민수에게 맡기고, 마치 이 동네에 처음 이사 온 사람처럼 낯선 시선으로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손에는 작은 수첩과 펜 하나를 든 채였다. 이것은 더 이상 감상적인 산책이 아니었다.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해독 작업이었다.


나는 먼저 내 가게가 속한 이 골목을 해부하기 시작했다. 공식적인 행정구역 상 이름은 ‘대학로 3번길’. 하지만 학생들은 이곳을 ‘공대 뒷골목’이라고 불렀다. 이름처럼, 이 골목의 주 고객은 당연히 K 대학교 학생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여태껏 그들을 그저 ‘학생’이라는 하나의 덩어리로만 보고 있었다. 유진이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건 분석이 아니라, 그냥 관찰일 뿐입니다.’


나는 골목이 보이는 카페 2층 창가에 자리를 잡고, 지나다니는 ‘학생들’을 유형별로 나누어 기록하기 시작했다.


  1. 깃털처럼 가벼운 주머니의 학부생들: 그들은 주로 서너 명씩 몰려다녔다. 그들의 대화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단어는 ‘가성비’였다. 7천 원짜리 제육볶음 백반, 8천 원짜리 돈까스 집 앞에서 그들은 가장 오래 머물렀다. 내 가게의 1인분 가격 1만 9천 원은, 그들에게 매일 저녁으로 먹기에는 부담스러운, ‘큰맘 먹고’ 와야 하는 특별식의 영역에 있었다.


  2. 혼밥이 익숙한 자취생과 고시생들: 낡은 슬리퍼에 편한 트레이닝복 차림. 그들은 주로 혼자 혹은 둘이서 다녔다. 그들의 목적지는 명확했다. 편의점 도시락, 5천 원짜리 컵밥, 혹은 김밥 전문점.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시간’과 ‘간편함’이었다. 내 가게처럼 불판에 고기를 굽고 볶음밥까지 만들어 먹는 시스템은 그들에게는 너무 거추장스러운 저녁 식사였다.


  3. 교수와 교직원들: 점심시간, 그들은 주로 박 사장님의 ‘명가 숯불갈비’나 길 건너 깔끔한 한정식집으로 향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가격’보다는 ‘품격’과 ‘신뢰’였다. 내 가게의 시끄럽고 정신없는 분위기는 그들의 선택지에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오후 내내 수첩을 채워가며, 나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내 가게의 ‘진짜 고객’이 누구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저 불특정 다수의 ‘학생들’을 향해, ‘싸고 양 많으니 제발 와주세요’라고 외치고 있었을 뿐이다. 누구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할지 명확한 타겟조차 없었던 것이다.


해가 저물고, 나는 결전의 장소, ‘샤브의 정원’ 앞으로 향했다. 어제까지는 질투와 패배감으로 바라봤던 그곳을, 오늘은 철저히 분석가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그 거대한 항공모함의 약점을,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를 찾아야만 했다.


역시나 가게 앞은 손님들로 붐볐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어제와는 다른 패턴이 보였다.


첫째, 손님들의 대부분이 ‘차’를 타고 왔다. 가게 앞 도로는 값비싼 외제차와 SUV 차량들로 잠시 정체를 빚고 있었다. 그들은 주로 30~40대 부부와 어린아이들이었다. 즉, 이 동네 주민이나 학생들이 아닌, ‘가족 외식’이라는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멀리서부터 찾아온 ‘목적 방문객’이었다.


둘째, ‘학생’ 손님이 생각보다 적었다. 물론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주로 잘 차려입은 커플들이거나, 동아리 회식처럼 특별한 날을 기념하는 단체 손님들이었다. 매일 저녁을 해결하러 온 학생들은 아니었다. 나는 가게 앞에서 가격표를 보고 망설이다가, 결국 발걸음을 돌려 내 가게가 있는 골목으로 향하는 학생 무리를 몇 번이나 목격했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번개가 쳤다.


유진이 말했던 ‘게릴라의 사각지대’. 그것은 바로 ‘샤브의 정원이 만족시키지 못하는 고객’이었다.


‘샤브의 정원’은 모든 것을 가졌지만, 딱 한 가지는 가지지 못했다. 그것은 바로 ‘만만함’이었다. 특별한 날이 아닌, 그저 그런 평범한 저녁에, 주머니 사정 넉넉지 않은 학생이 편한 슬리퍼를 끌고 와 든든하게 배를 채울 수 있는 그런 만만함. 항공모함은 작은 어선들이 드나드는 얕은 항구에는 들어올 수 없는 법이다.

나는 내 가게의 ‘진짜 고객’을 비로소 정의할 수 있었다.


‘K 대학교 근처 원룸촌에 자취하는 학생. 저녁 예산은 1만 5천 원 내외. 편의점 도시락은 지겹고, 든든한 고기로 제대로 된 한 끼를 먹고 싶어 하는 사람. 혼자 혹은 친구 한두 명과 함께 편안한 분위기에서 식사하고 싶은 사람.’


나는 이 가상의 인물에게 ‘김철수’라는 이름까지 붙여주었다. 바로 이 ‘김철수’가, 내가 사로잡아야 할 단 한 명의 고객이었다.


이제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나는 ‘샤브의 정원’과 싸울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애초에 나와 다른 고객을 상대하고 있었다. 나의 진짜 경쟁자는 길 건너의 항공모함이 아니라, 내 골목 안에 있는 7천 원짜리 제육볶음 집과 8천 원짜리 돈까스 집이었다. 나는 그들보다 조금 더 비싸지만, 그들이 줄 수 없는 압도적인 ‘만족감’과 ‘재미’를 ‘김철수’에게 제공해야 했다.


나의 ‘볶음밥 연구소’와 ‘소스 연구소’는 더 이상 어설픈 소꿉장난이 아니었다. 그것은 ‘김철수’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나만의 작지만 날카로운 무기였다.


나는 수첩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패배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무엇을 해야 할지 명확해진 자의 차분한 투지가 온몸을 감쌌다. 나는 곧장 유진의 심야식당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녀는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나를 보며 말했다.


“찾았습니까?”


나는 숨을 한번 고르고,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제가 싸워야 할 진짜 전쟁터와, 제가 지켜야 할 단 한 명의 아군을 찾았습니다.”


유진의 입가에, 처음으로 선명한 미소가 번졌다.


“축하합니다, 사장님. 이제야 비로소, 진짜 사업의 출발선에 서셨군요.”





8화에서 계속......




레스토랑의 경영과 마케팅을 연구하고 희망을 스토리텔링합니다.
골목길 컨설턴트: ikjunj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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