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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 진익준 작가
  • 등록 2025-10-29 07:3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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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질문의 첫 번째 답은 ‘선택과 집중’이었다.


‘김철수’는 가짓수만 많은 저품질의 고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는 든든하고 맛있는 ‘진짜 고기’를 원한다. 나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원가율만 높이고 만족도는 떨어뜨리던 냉동 대패삼겹살과 양념 닭갈비를 메뉴에서 제외했다. 대신 그 비용을 투자해, 주력 메뉴인 삼겹살과 목살의 등급을 한 단계 높였다. 두께도 2mm 더 두껍게 썰었다. 양으로 승부하는 대신, ‘질 좋은 고기를 마음껏’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제안하기로 한 것이다.


두 번째 답은 ‘재미의 심화’였다.


‘김철수’는 수동적으로 음식을 받아먹는 것을 넘어, 식사 과정 자체를 즐기고 싶어 한다. 나는 ‘볶음밥 연구소’ 옆에 작은 ‘라면 연구소’를 추가했다. 신라면, 진라면, 너구리. 세 종류의 라면과 함께 콩나물, 다진 마늘, 고춧가루를 비치해 ‘나만의 해장 라면’을 직접 끓여 먹을 수 있도록 했다. 고기로 느끼해진 속을 칼칼한 라면 국물로 마무리하는 경험. ‘김철수’라면 분명 열광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가격표를 다시 손봤다. 1인분 19,000원에서 21,000원으로. 2천 원을 인상하는 대신, 계산 시 학생증을 제시하면 2천 원을 할인해주는 ‘대학생 동반 할인’ 제도를 도입했다. ‘김철수’에게는 사실상 가격 인상이 없는 셈이었다. 나의 메시지는 명확했다. “이 가게의 진짜 주인은 바로 당신, K대 학생들입니다.”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한 첫날, 가게 안은 어수선하면서도 묘한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나의 새로운 ‘북극성’이, 과거의 ‘관성’과 충돌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장! 이게 뭐야!”


가게 문을 박차고 들어온 이는, 우리 가게의 VVIP 고객이자 터줏대감인 ‘상수 아재’와 그의 친구들이었다. 그들은 일주일에 서너 번씩 찾아와, 1인당 고기 다섯 접시는 기본으로 해치우는 나의 ‘매출 요정’이자 ‘원가율의 악마’들이었다.


“아재, 어서 오세요.”


“어서 오긴 뭘 어서 와! 대패삼겹 어디 갔어, 대패! 기름장에 푹 찍어서 소주 한잔해야 하는데, 왜 메뉴판에 없어!”


상수 아재의 고성에 가게 안의 모든 시선이 우리에게로 쏠렸다.


“아… 그게, 저희가 이번에 메뉴를 좀 개편해서요. 대신 삼겹살이랑 목살 품질을 훨씬 높였습니다. 한번 드셔보시면….”


“됐고! 그럼 닭갈비는? 매콤한 닭갈비 구워 먹는 맛이 있었는데, 그것도 없앴어? 아니, 사장이 장사 잘된다고 배가 불렀나. 왜 잘 팔리던 걸 마음대로 없애고 그래!”


그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나는 당황해서 식은땀이 흘렀다. 주변 테이블의 젊은 손님들이 불편한 기색으로 우리를 힐끔거렸다.


“죄송합니다, 아재. 더 좋은 고기에 집중하려고….”


“시끄럽고! 그럼 가격은 왜 올렸어! 2만 천 원? 야, 이놈아! 우리가 여기 왜 오는 줄 알아? 싸고 푸짐해서 오는 거 아냐! 근데 이제 싸지도 않고, 먹을 것도 줄었네? 에라이, 장사 그따위로 하는 거 아냐!”


상수 아재는 테이블에 놓인 메뉴판을 신경질적으로 집어 던졌다. 쨍그랑! 메뉴판이 바닥에 떨어지며 날카로운 소음을 냈다. 가게 안은 순간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어버렸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였다. 예전처럼 그에게 굽실거리며 “죄송합니다, 아재. 오늘만 특별히 대패삼겹살 좀 내어드릴게요”라며 규칙을 깨는 것. 혹은, 나의 새로운 원칙을 지키는 것.


그 짧은 순간, 유진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사장님 가게는 손님에게 무엇을 약속하는 곳입니까?”


나는 더 이상 ‘무조건 퍼주는’ 약속을 할 수 없었다. 나는 ‘김철수’에게, ‘질 좋은 고기와 재미있는 경험’을 약속하기로 결심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과거의 약속을 사랑했던 고객과 작별해야만 했다. 아프지만,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다.


나는 허리를 굽혀 메뉴판을 주워 들었다. 그리고 상수 아재를 똑바로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아재. 하지만 이제 저희 가게는 대패삼겹살과 닭갈비를 팔지 않습니다. 그리고 가격도 2만 천 원이 맞습니다. 대신, 저희는 이 동네에서 가장 신선한 삼겹살과 목살을, 가장 재미있는 방식으로 드실 수 있도록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내 대답에 상수 아재의 얼굴이 벌게졌다. 그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어쭈, 이놈 봐라?”라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잘났다. 너 혼자 잘 해봐라! 야, 가자! 더럽고 치사해서 안 먹는다! 이 돈이면 길 건너 ‘샤브의 정원’ 가서 호텔 뷔페를 먹겠다!”


그는 친구들을 이끌고 보란 듯이 가게를 나가버렸다. 쾅! 하고 닫히는 문소리가 내 심장에 대못처럼 박혔다. 가게 안은 어색한 침묵만이 흘렀다. 나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마감을 할 때, 아르바이트생 민수가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사장님… 괜찮으세요? 저 아저씨들, 우리 가게 매출 절반은 책임지는 분들인데….”


그의 목소리에는 걱정과 의구심이 가득했다. ‘사장님, 지금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거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나는 애써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아. 괜찮아야지.”


하지만 괜찮지 않았다. 그들이 떠나간 빈자리는 너무나도 컸다. 매출은 당장 30% 가까이 곤두박질쳤다. 내 선택이 과연 옳았던 것일까. ‘김철수’라는 보이지 않는 유령을 좇다가, 눈앞의 확실한 고객을 내쫓은 어리석은 짓을 한 건 아닐까. 밤새 뒤척이며 수만 가지의 후회와 의심에 시달렸다.


다음 날 저녁, 가게는 한산했다. 상수 아재 무리가 앉던 가장 좋은 창가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주방과 홀을 오갔다. 그때였다.


“사장님! 이거 대박인데요?”


나를 부른 것은 며칠 전에도 왔던, K 대학교 과잠을 입은 남학생 무리였다. 그들은 내가 새로 만든 ‘라면 연구소’ 앞에서 냄비에 콩나물과 고춧가루를 듬뿍 넣으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고기 먹고 라면 끓여 먹는 거, 이거 완전 신의 한 수예요! 저희 오늘 여기서 2차까지 다 해결하고 가도 되겠는데요?”


그들의 테이블에서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들은 마치 자기들만의 아지트라도 발견한 것처럼 즐거워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 중 한 명이 계산대로 와서 수줍게 물었다.


“사장님, 저희 학생증 보여드리면 2천 원 할인되는 거 맞죠?”


나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우리 가게 주인님들이니까요.”


내 농담에 학생은 환하게 웃었다. 나는 계산을 하며, 문득 깨달았다.

나는 어제, 단골손님 세 명을 잃었다. 하지만 오늘, 어쩌면 평생 단골이 될지도 모를 세 명의 ‘진짜 주인’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유진의 말이 맞았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포기할 용기가 필요했다. 나는 어제, 그 쓰리고 아픈 용기를 처음으로 내보았다. 가게 밖은 여전히 차가운 바람이 불었지만, 이상하게도 내 마음은 어제보다 훨씬 더 단단하고 따뜻해져 있었다.




9화에서 계속......




레스토랑의 경영과 마케팅을 연구하고 희망을 스토리텔링합니다.
골목길 컨설턴트: ikjunj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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