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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키트 전문점을 운영한다는 건 어떤 것일까?
  • 진익준 논설위원
  • 등록 2025-10-26 19:45:18
  • 수정 2025-10-28 13: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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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외식정보=진익준 논설위원]





우리는 '식당'을 떠올릴 때, 뜨거운 불 앞에서 땀 흘리는 주방장과 분주하게 홀을 오가는 직원, 그리고 그들의 노동이 만들어낸 '요리'를 즐기는 손님들로 가득 찬 공간을 상상합니다. 식당 경영의 본질은 이 '뜨거운 주방(Hot Kitchen)'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통제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여기, 그 익숙한 풍경이 완전히 소거된 식당이 있습니다. 뜨거운 불도, 냄새도, 홀에서 식사하는 손님도 없습니다. 심지어 직원이 없는 경우도 태반입니다. 오직 정갈하게 포장된 식재료 꾸러미들이 냉장고 안에서 주인을 기다릴 뿐입니다. 바로 '밀키트 전문점'입니다.


고객은 완성된 요리가 아닌 '요리할 권리'를 사 갑니다. 사장은 요리사가 아니라 포장 전문가처럼 보입니다. 과연 이 조용하고 차가운 공간, 밀키트 전문점을 운영한다는 건 어떤 것일까?



1. [도입] 익숙함 vs. 생소함


일반적인 식당의 사장은 '맛'과 '서비스'를 고민합니다. 어떻게 하면 더 맛있는 음식을, 어떻게 하면 더 기분 좋은 경험을 제공할지 연구합니다. 하지만 밀키트 전문점 사장의 고민은 다릅니다. 그는 '어떻게 하면 정확한 g(그램) 수를 맞출까', '어떻게 하면 이 채소가 내일까지 신선할까'를 고민합니다.


전자가 '환대(Hospitality)'의 영역이라면, 후자는 '물류(Logistics)'의 영역에 가깝습니다. 과연 이 신종 비즈니스를 운영한다는 건 어떤 것일까?



2. [핵심 원리] 비즈니스 모델의 탄생


밀키트 전문점은 '1인 가구의 폭증', '코로나19 팬데믹', 그리고 '요리의 즐거움과 준비의 귀찮음'이라는 모순된 소비자 심리가 만나 탄생했습니다.


소비자들은 외식과 배달 음식에 지쳤지만, 직접 요리를 하자니 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하며 남은 식재료를 처리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습니다. 밀키트는 이 모든 '준비 노동'을 제거하고 '조리의 즐거움'만 남겨주는 솔루션을 제공했습니다.


이 비즈니스 모델이 고객에게 제안하는 핵심 가치는 '실패가 보장된 편리한 요리 경험'입니다.


사장에게 제안하는 가치는 더 매력적입니다. '뜨거운 주방, 고객 응대, 홀 관리라는 3대 스트레스로부터의 해방'입니다.



3. [구체적 사례] 업태의 분화


밀키트 전문점은 운영 방식에 따라 크게 나뉩니다.


  • 유인(有人) 전문점: 사장(혹은 직원)이 상주하며 직접 식재료를 손질하고 포장, 판매하는 방식입니다. 신선도에 대한 신뢰가 높지만, 결국 사장의 '준비 노동'이 핵심인 자영업 모델입니다.


  • 무인(無人) 전문점: 24시간 키오스크와 냉장/냉동고로 운영됩니다. 본사(중앙 주방, CK)에서 완제품을 공급받아 진열만 하는 모델입니다. 인건비는 제로에 가깝지만, 시스템 의존도가 절대적입니다.


  • 하이브리드형: 낮에는 유인으로 운영하며 신선한 제품을 만들고, 밤에는 무인으로 전환하는 방식입니다.



4. [보이지 않는 문제점] The Core: 사장의 진짜 과업


예비 창업자는 '레시피대로 재료를 소분해 담으면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장의 진짜 과업은 포장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집니다.


  • SKU 지옥과 마이크로 재고 관리: 일반 식당은 10가지 메뉴를 위해 50가지 식재료를 '공용'으로 씁니다. 하지만 밀키트 전문점은 다릅니다. '부대찌개' 키트 하나를 위해 [소시지 팩], [햄 팩], [다짐육 팩], [채소 팩], [소스 팩], [라면사리] 등 6개의 고유 부품(SKU)이 필요합니다. 메뉴가 20개라면 SKU는 100개를 훌쩍 넘깁니다. 사장은 이 100개의 부품 재고를 '매일, 실시간으로' 관리해야 하는 '초소형 물류센터장'이 되어야 합니다.


  • 폐기율이라는 이름의 망치: 식당에서는 오늘 남은 양파를 내일 볶음밥에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밀키트는 다릅니다. '된장찌개 키트'에 들어가는 양파 30g이 하루만 지나 무르면, 그 키트(예: 8,900원) 전체를 폐기해야 합니다. 한 가지 부품의 신선도 하락이 완제품 전체의 손실로 직결됩니다. 폐기율 10% 상승은 순이익 50%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사장의 진짜 싸움은 '맛'이 아니라 '폐기율과의 전쟁'입니다.


  • 조리가 아닌 '포장 노동'의 함정: '불을 쓰지 않으니 편하겠지'라고 생각하지만, 노동의 형태가 바뀐 것뿐입니다. 하루 종일 채소를 씻고, 썰고, 저울에 정확한 g을 맞춰 계량하고, 비닐에 실링(sealing)하는 무한 반복의 '공장 노동'이 사장을 기다립니다. 이는 요리의 창의성과는 거리가 먼, 정밀함을 요구하는 '비조리 육체노동'입니다.


  • (무인 매장의 경우) 사장의 24시간 디지털 노동: 무인 매장은 '사장이 없는 가게'가 아니라 '사장이 원격으로 상주하는 가게'입니다. 사장은 24시간 CCTV와 앱을 통해 재고 현황을 파악하고, 키오스크 오류에 대응하며, 새벽이든 밤이든 물건을 채워 넣으러 가야 합니다. 육체는 자유로워졌을지 몰라도, 정신은 24시간 매장에 묶여있는 '디지털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5. [더 깊은 함의] 경영 철학의 문제


밀키트 전문점을 선택하는 것은, 경영자로서 '요리사'의 정체성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입니다.


당신은 손님의 입맛에 맞게 간을 조절하는 '손맛(Craft)'을 포기하고, 누가 만들어도 동일한 맛을 내는 '정량(Precision)'을 선택한 것입니다. 고객과의 따뜻한 교감을 통해 단골을 만드는 '관계(Relationship)' 대신, 완벽하게 포장된 '상품(Product)'으로 승부하는 길입니다.


이것은 더 이상 '요식업(Service)'이 아니라 '신선식품 소포장 제조업(Manufacturing)'을 선택하는 철학적 결단입니다.



6. [대안과 그 비용] 문제 해결의 역설


그렇다면 4번의 고통스러운 문제들을 해결하면 되지 않을까요? 하지만 그 대안들은 이 비즈니스 모델의 근간을 흔듭니다.


  • [문제] 극심한 재고 부담과 포장 노동 (1, 2, 3번)

  • [대안] 모든 재료를 본사(중앙 주방, CK)에서 100% 완제품으로 공급받는다.

  • [비용] 사장의 노동력은 해방되지만, 마진율이 박살납니다. 밀키트 비즈니스의 핵심 이익은 사실상 '식재료 원가'와 '판매가'의 차액이 아니라, 그 차액에서 나오는 '사장의 인건비'였습니다. 노동을 포기하는 순간, 사장은 본사에 종속된 '저마진 물류 하치장' 관리자로 전락합니다.


  • [문제] 24시간 원격 노동의 피로 (4번)

  • [대안] 직원을 고용해 매장 관리와 재고 진열을 맡긴다.

  • [비용] '인건비 제로'라는 무인 매장의 핵심 가치(2번)가 사라집니다. 이제 사장은 직원 스케줄 관리, 급여 계산, 근태 관리라는 새로운 스트레스에 직면합니다. 결국 '뜨거운 주방'을 피하려다 '인력 관리'라는 또 다른 지옥을 만난 셈입니다.



7. [의외의 장점 및 결론] Twist: 본질의 재정의


이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 업태가 가진 의외의 강력한 장점은 '데이터'와 '확장성'입니다.


일반 식당은 어떤 손님이 '왜' 이 메뉴를 시켰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밀키트 매장은 어떤 요일, 어떤 날씨, 어떤 시간대에 어떤 메뉴(상품)가 몇 개 팔렸는지 100% 데이터로 축적됩니다. 이는 완벽한 수요 예측으로 이어져 폐기율을 제어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또한, '맛있는 부대찌개' 레시피 하나만 성공하면, 그 '레시피 IP'를 표준화된 키트로 만들어 100개의 매장에 복제(확장)할 수 있습니다. 이는 '셰프' 개인의 노동력에 의존하는 일반 식당은 절대 가질 수 없는 압도적인 확장성입니다.


결국, 밀키트 전문점 경영이란 '편하게 돈 버는 식당'을 운영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상하기 쉬운 식재료'라는 시한폭탄을 안고 '레시피'라는 지적 재산을 판매하는 '초소형 신선식품 제조 공장'을 운영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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