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 4시.
'송정옥'의 주방은 이태웅에게 성역이었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주방에서, 거대한 무쇠 솥에 담긴 뽀얀 육수를 젓는 것은 그가 3년간 하루도 거르지 않은 신성한 의식이었다.
밤새 끓어오른 육수는 뼈와 살을 녹여낸 진한 '진실'을 담고 있었다. 맛은 완벽했다. 어젯밤의 그 커플이 맛보지 못하고 떠나버린 '진실'. 태웅은 육수의 미세한 기름방울을 걷어내며 쓰린 속을 달랬다.
'맛이 이 정도인데... 뭐가 문제야. 마케팅? 아니면 유행?'
그가 할 수 있는 생각은 거기까지였다. '맛'이라는 좌표를 벗어나는 순간, 그는 길을 잃었다.
오전 10시, 오픈 준비가 한창일 때였다. '딸랑-' 하는 풍경 소리와 함께 구둣발 소리가 홀을 울렸다. 손님일 리 없었다.
"이 사장, 바쁜데 미안하네."
가게 주거래 은행의 박 지점장이었다. 그의 표정은 11월의 날씨보다 더 스산했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이 공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소개하지. 이쪽은... 차현서 씨라고 하네."
태웅은 상대를 훑어봤다. 30대 중반쯤 되었을까.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호한 짧은 커트 머리, 칼같이 다려진 검은색 슬랙스에 회색 재킷. 손에는 낡은 국자 대신, 얇은 태블릿PC가 들려 있었다. 풍경 소리에도 눈길 한번 주지 않는, 차가운 눈이었다.
"컨설턴트입니다."
스스로를 소개하는 목소리 역시 온도감이 없었다.
"컨설턴트요?" 태웅의 목소리에 경계심이 묻어났다. "은행에서 보낸 겁니까? 우리 집 맛은 문제없습니다. 지금 잠깐... 유행이..."
"이 사장." 박 지점장이 말을 잘랐다. "솔직히 말해서, 이번 달 대출금 상환이 어려워 보이면 우리도 조치를... 그래서 차현서 씨가 가게를 좀 '진단'해 주기로 했네. 은행 차원에서 지원하는 마지막 카드라고 생각하게."
'진단'. 그 단어는 태웅에게 모욕으로 들렸다. 60년 전통의 '맛'을, 저 MBA 냄새가 물씬 풍기는 '애송이'가 진단한다는 말인가.
"됐습니다. 그런 거 필요 없..."
"이태웅 사장님."
차현서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녀는 태웅을 보지 않고, 태블릿 액정을 손가락으로 밀어 올리며 말했다.
"어젯밤 7시 14분. 20대 후반 커플, 남성 178cm, 여성 165cm 추정. 문 앞에서 4.5초간 망설이다 이탈. 맞습니까?"
"..."
태웅은 숨이 멎는 듯했다. 어젯밤 일을 어떻게?
"그저께 저녁 8시 3분. 40대 부부, 아이 둘. 입구에서 메뉴판 확인 후 3초 만에 이탈. 지난 일주일간, 가게 문 앞(파사드)까지 접근했다가 구매(식사)로 전환되지 않은 '이탈 고객'은 총 48팀입니다. 이 시간대 유동 인구 대비, 사장님 가게의 '전환율'은 0.8% 미만입니다. 망했다는 소리죠."
태웅은 입술을 깨물었다. "CCTV라도 해킹한 겁니까?"
차현서는 태블릿을 껐다. 그리고 처음으로 태웅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그 차가운 눈이 홀 전체를 천천히 훑었다. 텅 빈 테이블, 빛바랜 메뉴판, 그리고 입구 유리창의 그 '금'.
"아니요."
현서가 말했다.
"사장님 가게는 '맛'이 아니라, '증거'로 말하고 있으니까요. 들어오기 전부터."
"무슨..."
"사장님 가게는 24시간 내내, '들어오지 말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이단아의 등장이었다.
'맛'이라는 성역에 갇힌 장인 앞에, '경험'이라는 데이터를 들이미는 컨설턴트, 차현서.
그녀는 태웅이 신성시하는 주방의 육수 솥에는 단 1초의 눈길도 주지 않았다.
3화에서 계속......
모든 고객 경험은 '신호(Cue)'의 총합이다.
당신의 가게는 24시간 내내 고객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것이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
'송정옥'의 사장은 '맛'이라는 단 하나의 긍정적 신호에 매몰되어 있다.
하지만 고객은 '맛'을 보기 전에, 수십 개의 '부정적 신호'를 먼저 읽는다.
텅 빈 홀, 어두운 조명, 지저분한 입구, 낡은 메뉴판...
전쟁은 주방이 아니라, 고객이 문을 여는 '그 3초' 안에 끝난다.
맛은, 그 전쟁에서 승리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전리품'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