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로고

Top
기사 메일전송
제5화. 대표님의 의자는 가시방석이다 (권력의 공간학)
  • 진익준 작가
  • 등록 2026-01-05 08:12:50
기사수정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불안은 커진다.
그래서 성공한 리더들은 무의식적으로 등 뒤를 확인한다.
당신의 사무실이 화려한 통유리로 되어 있다면, 당신은 지금 세상에서 가장 불안한 '쇼윈도' 안에 갇혀 있는 것이다.

강남 테헤란로 한복판. 높게 솟은 마천루 사이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건물이 있었다.


전면이 거울 같은 반사 유리로 뒤덮인, ‘더 하이(The High)’ 디자인 그룹의 사옥.


햇빛을 받으면 번쩍거리며 주변 건물들에 '빛 공해'를 뿌려대는 저 건물. 전생의 나는 저걸 보며 "성공의 상징"이라 동경했었다. 하지만 지금 내 눈에 비친 저 건물은 거대한 '불안 덩어리'였다.


건물 전체가 땅에 뿌리를 박지 못하고, 시뻘건 아지랑이를 내뿜으며 공중부양하고 있었다.


[과시욕], [허세], [불안정].


건물이 뿜어내는 키워드들이 내 망막을 때렸다.


"어서 오십시오, 차이현 씨."


안내 데스크를 지나 15층 대표실로 안내받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차가운 냉기가 훅 끼쳐왔다. 바닥은 최고급 이탈리아산 대리석, 벽면은 차가운 금속 패널. 조명은 갤러리처럼 핀 조명만 사용하여 명암 대비가 극심했다.


'여전하네. 사람 기죽이는 인테리어.'


이런 공간은 방문객에게 무언의 압박을 준다. "너는 여기서 함부로 떠들면 안 돼. 납작 엎드려."


하지만 나는 쫄지 않았다. 이미 이 공간의 중력이 엉망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들어오세요."


대표실 문이 열렸다.


광활한 공간 끝, 거대한 통유리창을 등지고 앉아 있는 남자가 보였다. 강민석.


그는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손짓으로 앞자리를 가리켰다.


"앉아요."


나는 그가 가리킨 자리에 앉지 않고, 잠시 서서 방을 둘러보았다.


그의 책상은 방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뒤로는 강남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통유리창이 펼쳐져 있었고, 입구와는 까마득히 멀었다.


"국밥집 인테리어 좀 고쳐줬다면서요? 소문이 자자하던데."


강민석이 그제야 고개를 들고 피식 웃었다.


"재주가 좋아. 쓰레기장 같은 곳에서 보석을 만드는 척하는 것도 능력이지."


"쓰레기장이 아니라, 사람 사는 곳이었습니다."


"뭐, 어쨌든. 우리 회사에 자리가 하나 비어요. 시공팀 말단 대리 자리인데, 연봉은 국밥집 알바보다는 챙겨줄게. 와서 배워요. 진짜 디자인이 뭔지."


그는 나를 스카우트하려는 게 아니었다. 싹이 보이는 경쟁자를 미리 밟아놓거나, 자신의 발밑에 두려는 심산이었다. 전형적인 '갑질'의 화법.


나는 천천히 걸어가 그의 책상 앞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다리를 꼬며 말했다.


"거절합니다."


"뭐?"


"배울 게 없어서요. 특히, 불안해서 미칠 것 같은 이 방에서는."


강민석의 미간이 꿈틀했다.


"무슨 소리지?"


"대표님, 요즘 허리 아프시죠? 그리고 누가 뒤에서 쳐다보는 것 같아 집중도 안 되실 거고."


"......"


"당연합니다. 이 방은 '배산임수(背山臨水)'가 거꾸로 되어 있으니까요."


나는 손가락으로 그의 등 뒤, 통유리창을 가리켰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등 뒤가 막혀 있어야 안정을 느낍니다(Refuge). 벽이든 산이든, 나를 지켜주는 '백(Back)'이 있어야 하죠. 그런데 대표님은 멋진 뷰(View)를 보겠답시고, 등 뒤를 허공에 노출시켰습니다."

강민석이 콧방귀를 뀌었다.


"이건 성공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조망권'이야. 쥐뿔도 없는 놈들이나 벽보고 앉는 거지."


"과연 그럴까요? 지금 대표님은 무의식적으로 계속 뒤를 의식하고 있어요. 뇌가 '뒤가 뚫려있다'는 신호를 끊임없이 보내니, 코르티솔(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올라가고 근육이 긴장하는 겁니다. 그러니 비싼 의자에 앉아 있어도 허리가 아픈 거죠."


내 눈에는 보였다. 그의 등 뒤 창문 틈으로 시뻘건 경고등이 깜빡이는 것이.


게다가 입구(Door)와의 위치도 최악이었다.


"그리고 입구와 정면으로 마주 보는 배치. 이걸 '대립의 배치'라고 합니다. 문이 열릴 때마다 들어오는 사람과 기 싸움을 해야 하죠. 방문객은 위압감을 느끼겠지만, 주인인 대표님도 피곤한 건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책상을 톡톡 쳤다.


"결정적으로, 이 책상. 너무 큽니다. 그리고 소재가 유리죠."


"이건 독일 디자이너 작품이야!"


"유리는 차갑고 깨지기 쉬운 소재입니다. 심리적으로 무방비 상태를 의미하죠. 게다가 이렇게 거대한 책상은 소통을 하겠다는 게 아니라, '나한테 다가오지 마'라는 바리케이드입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쐐기를 박았다.


"화려해 보이지만, 사실은 세상에서 가장 외롭고 불안한 방이네요. 이런 곳에서 무슨 좋은 디자인이 나오겠습니까? 직원들 갈아 넣는 독선적인 지시나 나오겠지."


"이... 이 건방진 새끼가!"


강민석이 벌떡 일어났다.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정곡을 찔린 자의 반응이었다.


그는 씩씩거리며 서랍에서 두툼한 서류 뭉치를 꺼내 책상 위에 내던졌다.


"그래, 말 잘했다. 네놈의 그 잘난 '심리 인테리어'가 진짜 통하는지 어디 한번 보자고."


그것은 입찰 공고문이었다.


[드림시티 쇼핑몰 푸드코트 리뉴얼 디자인 공모]


"국내 최대 쇼핑몰 푸드코트야. 300평 규모. 우리 회사도 입찰에 들어간다. 네가 그렇게 잘났으면, 여기서 붙어봐. 국밥집 같은 구멍가게 말고, 진짜 프로들의 세계에서 증명해 보라고."


그는 비릿하게 웃었다.


"물론, 네놈 같은 무명 디자이너가 서류 심사나 통과할지 모르겠지만."


이것 봐라? 판을 깔아주시네.


나는 공고문을 집어 들었다. 300평. 국밥집의 20배가 넘는 규모. 게다가 수많은 식당이 모여 있는, 가장 혼잡하고 산만한 공간.


'중력'을 다루는 나에게는 최고의 놀이터다.


"좋습니다. 대신 조건이 있어요."


"조건?"


"제가 이기면, 대표님 그 의자부터 바꾸세요. 등 뒤에 벽도 좀 세우시고. 볼 때마다 안쓰러워서 그럽니다."


"하! 미친놈..."


나는 공고문을 품에 넣고 대표실을 나왔다.


등 뒤에서 강민석이 씩씩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길. 심장이 두근거렸다.


두려움이 아니라 흥분이었다.


전생에 나를 짓밟았던 거대 기업, 그리고 화려함만 좇는 인테리어 업계의 관행.


이 모든 것을 뒤집을 기회가 왔다.


'국밥집 다음은 푸드코트다.'


사무실(창고)로 돌아오자마자 서은 씨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달려왔다.


"이사님! 어디 갔다 오세요? 그리고 그 표정은 뭐예요? 뭔가... 사고 치고 오신 표정인데?"


"빙고. 서은 씨, 우리 국밥집 2호점 낼 생각 없어요?"


"네? 돈 없는데요?"


나는 공고문을 흔들어 보였다.


"돈은 필요 없어요. 실력만 있으면 됩니다. 우리, 쇼핑몰 하나 접수하러 갑시다."


서은 씨는 입을 떡 벌렸고, 나는 제도 샤프를 집어 들었다.


이번엔 닻 하나로는 부족하다.


거대한 '중력장(Gravity Field)'을 만들어야 한다. 사람들이 들어오면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블랙홀 같은 편안함을.







[차이현의 경영 인사이트]


Q. 성공하는 CEO의 책상 배치는 따로 있다? (풍수와 심리학)


많은 경영자가 '전망(View)'을 위해 창문을 등지고 앉습니다. 하지만 공간 심리학적으로 이것은 최악의 배치입니다. 이를 '사령관의 위치(Commanding Position)'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1. 등 뒤에는 벽(Wall), 눈앞에는 문(Door)


리더의 자리는 심리적 안정감이 최우선입니다. 등 뒤는 견고한 벽이 막아주어 '기습(후환)'에 대한 불안을 없애야 하고, 시야는 출입문을 대각선으로 바라볼 수 있어 누가 들어오는지 통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창문을 등지면 무의식적인 불안감에 시달려 판단력이 흐려집니다.


2. 책상의 크기와 권위의 함정


너무 큰 책상은 방문객과의 심리적 거리를 벌려 권위를 세우는 데는 유리하지만, 소통을 차단합니다. 수직적 위계가 중요한 군대나 관공서가 아니라면, 적당한 크기의 책상을 배치하거나 별도의 '원형 테이블'을 두어 상석이 없는 회의 공간을 만드세요.


3. 쇼윈도 사무실의 공포


요즘 유행하는 통유리 회의실은 '투명성'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직원들에게 '감시당한다'는 스트레스를 줍니다. 최소한의 시선 차단(불투명 시트지 등)을 허리 높이까지는 해줘야, 직원들이 심리적 안전감을 느끼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 있습니다.


"리더가 불안하면 조직 전체가 흔들립니다. 지금 당신의 등 뒤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세요."




TAG
0
회원로그인

댓글 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사이드 기본배너-유니세프
사이드 기본배너-국민신문고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