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외식정보=진익준 논설위원]
1. 스마트폰 너머의 자경단, 우리는 정말 정의로운가?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뒤적이다 보면, 어느새 손가락은 분노의 행렬에 동참하곤 합니다. 여수 어느 식당의 불친절한 태도, 광장시장의 야박한 섞어팔기, 소래포구의 이른바 ‘꽃게 바꿔치기’ 영상들. 그 밑에는 어김없이 날 선 댓글들이 수천 개씩 달립니다. “이런 집은 망해야 한다”, “인생 참교육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 비난의 행렬에 가담하며 묘한 해방감을 느낍니다. 나쁜 놈을 응징했다는 뿌듯함, 나는 저들처럼 비양심적이지 않다는 도덕적 우월감이 우리 뇌 속에서 도파민을 뿜어냅니다. 안도 슌스케가 그의 저서 『정의감 중독 사회』에서 꼬집었듯, 우리는 지금 ‘정의’라는 이름의 아주 값싸고 강력한 마약에 중독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잠시 멈춰 질문을 던져봅시다. 우리가 휘두르는 그 ‘정의의 칼날’은 정말로 세상을 더 맑게 만들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저 누군가의 삶을 난도질하는 쾌락의 도구로 전락한 것은 아닙니까?

2. 도파민이 된 정의, 그리고 ‘참교육’이라는 이름의 유희
심리학적으로 볼 때, 타인을 비난하며 느끼는 정의감은 뇌의 보상 회로를 자극합니다. 중독성이 강하죠. 특히 온라인 공간은 익명성이라는 방패 뒤에서 아주 적은 비용으로 ‘심판자’가 되는 권력을 부여합니다.
해외에서도 이런 현상은 ‘캔슬 컬처(Cancel Culture)’라는 이름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영국의 사회학자 존 론슨(Jon Ronson)은 저서 『소셜 미디어 시대의 공개 처형』에서 단 한 줄의 트윗 때문에 전 국민의 공적(公敵)이 되어 직장을 잃고 삶이 파괴된 평범한 사람들의 사례를 추적했습니다. 일본에서는 코로나19 당시 영업 중인 가게를 찾아가 협박 편지를 보내던 ‘자숙 경찰(自肅警察)’이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했지요.
이들의 공통점은 ‘나는 옳다’는 확신입니다. 하지만 그 확신이 향하는 곳은 거대 권력이나 부조리한 시스템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곁의 평범한 이웃,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가는 시장 상인이나 식당 주인들입니다. 거악(巨惡)을 상대로 싸우는 것은 피곤하고 위험하지만, 시장 상인을 꾸짖는 것은 안전하고 즐겁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손쉬운 정의’의 비극입니다.
3. 99명의 단골보다 아픈 1명의 저주
상인들은 지금 이 전쟁터의 최전선에 서 있습니다. 제가 컨설팅 현장에서 만나는 상인들의 눈에는 깊은 피로와 공포가 서려 있습니다. 경기 침체와 고물가라는 경제적 파도보다 더 무서운 것이 온라인의 ‘인민재판’이라고 그들은 말합니다.
심리학에는 ‘부정 편향(Negativity Bias)’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인간의 뇌는 99개의 칭찬보다 1개의 비난에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수백 명의 손님이 맛있게 먹고 가도, 단 한 명의 ‘별점 테러’나 커뮤니티의 비방글이 올라오면 상인의 세상은 무너집니다.
최근 광장시장의 한 상인은 일부의 잘못이 전체의 악행으로 매도되는 상황에서 “장사가 안되는 것보다 무서운 건, 사람들이 나를 범죄자 보듯 쳐다보는 눈빛”이라며 자괴감을 토로했습니다. 감정노동의 임계점을 넘은 상인들은 우울증과 불안장애에 시달리며, 심한 경우 극단적인 선택의 기로에 서기도 합니다. 우리가 던진 정의의 돌멩이가 누군가에게는 생존을 끊는 흉기가 되고 있는 셈입니다.
4. 상인의 마음을 지키는 ‘심리적 방패’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정의감 중독’의 파도 속에 상인들을 방치해야 할까요? 저는 상인들에게 세 가지 차원의 ‘심리적 방역’을 제안합니다.
첫째, ‘나’와 ‘가게’를 철저히 분리해야 합니다. 가게에 대한 비난이 사장님의 인격에 대한 사형 선고가 아님을 인지해야 합니다. 앞치마를 입었을 때의 ‘비즈니스 페르소나’를 강화하고, 퇴근 후에는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온전히 회복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둘째, 시스템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감정은 전염됩니다. 분노한 손님에게 감정으로 맞서면 결과는 파국입니다. AI 기술을 활용하든, 미리 준비된 매뉴얼을 따르든, 감정을 배제한 ‘건조한 대응’이 오히려 정의감에 중독된 공격자들의 화력을 떨어뜨리는 가장 강력한 방패가 됩니다.
셋째, 연대의 힘을 믿어야 합니다. 고립은 우울을 낳습니다. 상인들끼리 상처를 공유하고 서로를 다독이는 심리적 안전기지를 만들어야 합니다. “당신만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동료의 한마디는 그 어떤 경영 전략보다 강력한 치유제가 됩니다.
5. 맺으며: 더 따뜻한 정의를 꿈꾸며
정의(Justice)의 반대말은 불의가 아니라 ‘무관심’ 혹은 ‘무자비’일지도 모릅니다. 잘못은 지적되어야 하고 상도는 바로잡혀야 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연민이 사라진다면, 그것을 어찌 정의라 부를 수 있겠습니까.
상인 여러분, 당신들이 일궈온 땀방울은 별점 몇 개로 매겨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당신이 정성껏 내놓은 국밥 한 그릇, 깨끗이 닦아낸 테이블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위로였고 생명이었습니다. 온라인의 차가운 글자들에 당신의 고귀한 자존감을 내어주지 마십시오.
독자 여러분께도 부탁드립니다. 비난의 댓글을 달기 전, 잠시만 숨을 골라봅시다. 저 상인의 얼굴 뒤에 숨겨진 수많은 밤과 눈물을 단 1분의 영상으로 다 알 수 없음을 기억해 주십시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대를 파멸시키는 ‘사이다’ 같은 정의가 아니라, 잘못을 고치고 함께 살아가게 하는 ‘따뜻한 공정’입니다.
밥 한 끼의 온기가 세상을 버티게 하듯, 우리의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무너진 삶을 일으켜 세우는 기적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