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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광장에는 식탁이 없다 (인간은 숲을 원한다)
  • 진익준 작가
  • 등록 2026-01-11 20:2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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뻥 뚫린 공간이 개방감을 준다는 건 착각이다.
식사하는 사람에게 지나친 개방감은 '발가벗겨진 공포'일 뿐이다.
인간은 광장이 아니라, 몸을 숨길 수 있는 숲에서 밥을 먹고 싶어 한다.

"와... 진짜 크네요. 여기서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요?"


드림시티 쇼핑몰 지하 1층.


서은 씨는 압도적인 규모에 기가 질린 표정이었다. 300평. 축구장 반만 한 크기의 거대한 푸드코트가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내 눈에 비친 건 식당이 아니었다.


그곳은 거대한 수용소였다.


웅웅웅-


천장은 5미터가 넘게 높았고, 바닥은 딱딱한 인조 대리석이었다. 수백 명의 사람이 내는 말소리와 식기 부딪치는 소리가 천장에 반사되어, 마치 폭격음처럼 공간을 때리고 있었다.


사람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지쳐 있었다. 아이들은 시끄러운 소리에 놀라 울음을 터뜨렸고, 부모들은 아이를 달래며 밥을 입으로 넣는지 코로 넣는지 모르게 허겁지겁 먹고 있었다.


내 눈에 보이는 ‘중력장’은 아수라장이었다.


모든 사물과 사람이 회색 먼지처럼 공중에 떠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혼란], [소음], [불안].


공간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이건 식사가 아니야. 사료 공급이지."


내가 중얼거렸다.


이곳의 문제는 명확했다. '너무 넓다'는 것.


쇼핑몰 측은 '탁 트인 개방감'을 주기 위해 기둥과 벽을 최소화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 손님들은 사방이 뚫린 허허벌판에 덩그러니 놓이게 됐다. 이것은 인간의 '광장 공포증(Agoraphobia)'을 자극한다.


"저기 좀 보세요."


나는 서은 씨에게 매장 가장자리를 가리켰다.


중앙 테이블은 텅텅 비어있는데, 벽 쪽 구석 자리와 기둥 뒤쪽 자리는 만석이었다. 심지어 웨이팅까지 있었다.


"사람들이 다 구석에만 붙어 있네요?"


"당연하죠. 저기가 유일한 '피신처'니까요. 저 넓은 중앙에 앉으면 사방에서 쏟아지는 시선과 소음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합니다. 밥맛이 뚝 떨어지죠."


그때, 저 멀리서 익숙한 로고가 박힌 점퍼를 입은 무리가 보였다.


'The High'. 강민석의 직원들이었다. 그들은 레이저 줄자를 들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모자를 눌러쓰고 그들 근처로 슬쩍 다가갔다.


"팀장님, 여기 중앙에 샹들리에 달려면 천장 보강해야 하는데요?"


"그냥 진행해. 대표님 지시야. 바닥은 전체 이태리산 비앙코 카라라(하얀 대리석)로 깔고, 칸막이는 다 없애. 더 넓어 보이게 하래."


"네, 알겠습니다. 최대한 화려하게 가죠."


역시나.


강민석은 이 공간의 병명을 오진(誤診)했다.


지금 이곳은 '좁아서' 문제가 아니라, '너무 휑해서' 문제다. 그런데 칸막이를 더 없애고 번쩍거리는 대리석을 깐다고?


소음은 더 심해질 것이고, 사람들은 빙판 위에서 밥을 먹는 듯한 불안감에 시달릴 것이다.


'고마워라. 제 무덤을 파주네.'


나는 뒤돌아 서은 씨에게 윙크를 보냈다.


승산이 있다. 아니, 이건 질 수가 없는 게임이다.




창고 사무실로 돌아온 나는 곧바로 스케치북을 펼쳤다.


"이사님, 강 대표 쪽은 엄청 화려하게 한다던데... 우리는 어떻게 해요? 돈도 없잖아요."


"돈이 없으니까 머리를 써야죠. 서은 씨, 인간이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장소가 어디라고 생각해요?"


"음... 집? 침대?"


"그보다 더 원초적인 곳이요. 인류가 수백만 년 동안 살아온 곳."


나는 스케치북에 슥슥 선을 그었다.


"숲(Forest)입니다."


"숲이요?"


"네. 나무 그늘 아래, 적당히 시야는 가려지지만 바람은 통하는 곳. 인간의 유전자에는 녹색을 보면 심박수가 떨어지고 안정을 찾는 '바이오필리아(Biophilia, 생명 사랑)' 본능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나는 평면도 위에 동그라미를 여러 개 그렸다.


"강민석은 이곳을 '호텔 로비'처럼 만들려고 할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곳을 '실내 공원'으로 만들 겁니다."


내 계획은 이랬다.


300평의 텅 빈 공간을 벽으로 막는 대신, '식물'로 구획을 나누는 것이다.


  1. 그린 파티션 (Green Partition):


  2. 사람 키보다 조금 높은 1.5m 정도의 대형 관엽식물 화분들을 테이블 사이사이에 배치한다. 이것은 답답한 벽 대신, 자연스러운 시선 차단막이 되어준다. 옆 테이블 사람은 안 보이지만, 초록 잎 사이로 숨 쉬는 느낌.


  3. 소음 흡수 (Sound Absorbing):


  4. 식물의 잎은 훌륭한 흡음재다. 강민석이 깔겠다는 대리석은 소리를 반사시키지만, 숲은 소리를 먹는다. 웅웅거리는 푸드코트의 소음을 식물들이 잡아줄 것이다.


  5. 천장을 낮추는 마법:


  6. 높은 천장에는 행잉 플랜트(Hanging Plant)를 주렁주렁 매단다. 실제 천장은 높지만, 식물이 늘어진 라인이 '가상의 낮은 천장'을 만들어 아늑함을 준다.


"와... 상상만 해도 너무 좋은데요? 밥 먹으러 갔는데 소풍 온 기분이 들 것 같아요."


"그렇죠. 게다가 식물은 대리석보다 훨씬 쌉니다. 가성비 최고죠."


나는 마지막으로 도면 중앙에 거대한 원을 그렸다.


"그리고 여기에 초대형 고목(古木)을 하나 심을 겁니다. 가짜 나무라도 상관없어요."


"가운데에요?"


"네. 마을 어귀에 있는 정자나무처럼요. 그 거대한 나무가 이 넓은 공간의 '절대적 중심(Anchor)'을 잡아줄 겁니다. 사람들이 길을 잃지 않고, 그 나무를 중심으로 모여들게 만드는 거죠."


도면이 완성되었다.


강민석의 도면이 차갑고 날카로운 '직선의 감옥'이라면,


내 도면은 부드럽고 따뜻한 '곡선의 숲'이었다.


"서은 씨, 입찰 프레젠테이션 준비합시다. 이번엔 국밥이 아니라, '휴식'을 파는 겁니다."





드디어 결전의 날.


드림시티 대회의실에는 쇼핑몰 임원진과 심사위원들이 앉아 있었다.


강민석은 수십 명의 직원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그의 뒤에는 화려한 조감도가 그려진 패널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었다.


"이번 리뉴얼의 컨셉은 '럭셔리 팰리스'입니다."


강민석의 발표는 화려했다. 최고급 자재, 해외 유명 디자이너와의 협업, 압도적인 비주얼. 심사위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그는 나를 힐끔 쳐다보며 비웃음을 날리고 단상을 내려왔다.


"다음, '뉴-빌드'... 아, 아니 개인 자격이시네요. 차이현 씨."


사회자가 나를 호명했다.


나는 단출하게 USB 하나만 들고 올라갔다.


스크린에 첫 화면이 떴다.


아무런 그림도 없는, 검은 화면에 단 한 문장.


[당신의 푸드코트는 왜 시끄러운가?]


좌중이 웅성거렸다.


"심사위원 여러분. 방금 강 대표님의 화려한 디자인 잘 봤습니다. 멋지더군요. 하지만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나는 강민석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저 화려한 대리석 바닥 위에서, 아이가 숟가락을 떨어뜨리면 소리가 얼마나 크게 울릴까요? 그 쨍한 소리에 옆 테이블 손님은 얼마나 짜증이 날까요?"


나는 화면을 넘겼다. 현재 푸드코트의 웅웅거리는 소음 파동을 시각화한 그래프가 떴다.


"이곳의 문제는 '낡음'이 아니라 '공포'입니다. 소음의 공포, 시선의 공포. 강 대표님의 디자인은 그 공포를 '황금색'으로 칠했을 뿐,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심사위원 중 한 명이 안경을 고쳐 쓰며 물었다.


"그럼 차이현 씨의 대안은 뭡니까?"


"간단합니다. 벽을 세우지 않고 방을 만드는 법."


나는 다음 슬라이드를 띄웠다.


화면 가득, 푸르른 녹색이 채워졌다. 삭막했던 푸드코트가 숲속의 정원처럼 변해 있었다. 테이블마다 놓인 식물들이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고, 중앙의 거대한 나무가 묵직하게 중심을 잡고 있는 그림.


[Project: The Forest (도심 속의 숲)]


"식물은 소음을 30% 줄여줍니다. 그리고 사람의 스트레스 지수를 20% 낮춰줍니다. 쇼핑에 지친 고객들이 1시간 동안 가장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곳. 밥만 먹고 도망가는 곳이 아니라, 커피까지 마시고 싶어지는 곳."


나는 마지막 멘트를 던졌다.


"강 대표님은 '보여주기 위한 공간'을 만들었지만, 저는 '머물기 위한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매출은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머무는 시간에서 나옵니다."


심사위원석에서 작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강민석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해 있었다.


승부의 추가 기울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중력은, 언제나 무거운 쪽으로 흐르는 법이니까.





[차이현의 경영 인사이트]


Q. 왜 스타벅스와 백화점에는 식물이 많을까? (바이오필리아 효과)


최근 트렌디한 상업 공간들이 '플랜테리어(Plant+Interior)'에 목숨을 거는 이유는 단순히 예뻐서가 아닙니다. 식물이 가진 강력한 '상업적 효과' 때문입니다.


1. 체류 시간의 연장


미국 텍사스 주립대의 연구에 따르면, 매장 내에 식물이 있을 때 고객의 체류 시간이 약 1.5배 늘어났습니다. 인간은 녹색을 볼 때 뇌파(알파파)가 안정되며, 시간의 흐름을 느리게 인식합니다. 오래 머물면, 추가 주문 확률은 당연히 올라갑니다.


2. 자연스러운 파티션 (Zoning)


딱딱한 벽을 세우면 공간이 좁아 보입니다. 하지만 식물 화분을 두면 시야는 트이면서도 심리적인 경계선이 생깁니다. "여기는 내 공간"이라는 안정감을 주면서도 답답하지 않게 만드는 최고의 파티션입니다.


3. 소음 중화 (White Noise)


사람이 많은 공간의 웅웅거리는 저주파 소음은 뇌를 피로하게 만듭니다. 식물의 잎과 흙은 소리를 흡수하고 난반사시켜, 시끄러운 소음을 듣기 좋은 백색 소음 수준으로 중화시킵니다. 테이블 회전율이 너무 빨라 고민이거나, 손님이 금방 지쳐 나가는 가게라면 당장 화분부터 들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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